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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신윤재(칼럼니스트)
  • 입력 2021.09.09 10:41
  • 수정 2021.09.0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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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여정, 진정한 '하이클래스' 배우

사진제공=tvN
사진제공=tvN

배우 조여정을 떠올릴 때는 항상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는 하루를 등산이나 조깅으로 새벽부터 시작하며 수영이나 요가, 현대무용 등으로 자기관리를 하는데도 열심이다. 배우의 직업을 갖고 있지만 국제예술대 연기예술과의 겸임교수로 학생들과도 만나고 있다. 독서광이고 메모광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을 다 차치하고서라도 조여정의 부지런함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그의 필모그래피다. 그는 작품을 쉬지 않는다. 최근 필모그래피의 타임라인을 봐도 이는 잘 알 수 있다. 넉넉잡아 2015년부터 봤을 때 그는 SBS 드라마 ‘이혼변호사는 연애중’, 2016년 KBS2 ‘베이비시터’, 2017년 tvN ‘완벽한 아내’에 출연했다. 아마 영화 ‘기생충’을 찍었을 2018년을 뛰어넘어 보면 2019년 JTBC ‘아름다운 세상’, 2020년 KBS2 ‘99억의 여자’, 2021년 KBS2 ‘바람피면 죽는다’에 출연했다.

그 사이에 ‘기생충’의 세계적인 인기로 칸 국제영화제를 포함한 세계 숱한 국제영화제를 돌았던 것은 물론이다. 재미있는 것은 ‘기생충’ 이후의 필모그래피인데, 보통 배우가 작품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타는 영예를 얻으면 이후 필모그래피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조여정을 제외한 다른 ‘기생충’ 배우들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조여정은 쉬지 않는다. 계속 한 작품을 끝내면 다음 작품을 시도하고, 또 한 작품을 끝내면 다음 작품에 도전한다.

그가 이번에 도전한 작품은 tvN 월화극 ‘하이클래스’다. JTBC ‘스카이캐슬’이나 SBS ‘펜트하우스’와 비교되면서 또 한 번 사회 상류층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1, 2회가 방송됐다. 조여정이 맡은 송여울은 남편의 의문스러운 죽음? 실종? 그 이후에 실의에 빠진 채 제주에 내려와 아들이라도 국제학교에 보내 잘 살아보려 하는 변호사다. 

작품은 거의 조여정의 여력으로 굴러간다. 조여정이 남지선(김지수)으로 대표되는 국제학교 엄마들의 커뮤니티에 들어가기 위한 분투가 주 줄거리이며, ‘치정 미스터리’로 소개된 극의 긴장감 역시 조여정이 죽은 남편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감정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카메라는 조여정의 얼굴을 담고 조여정은 그 안에서 당황하고, 놀라며 때로는 차가운 눈빛으로 복수를 다짐한다.

조여정, 사진제공=tvN
조여정, 사진제공=tvN

조여정의 작품 욕심은 대단했다. 의류모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고 이렇다 할 인기작이 없었을 때 그는 다른 여배우들이 고민했을 법한 작품인 영화 ‘방자전’과 ‘후궁:제왕의 첩’에 거푸 출연하며 갈증을 풀었다. 그에게는 세간에 화제가 되는 노출 역시 연기에 꼭 필요하다면 당연히 거쳐야 할 수순에 불과했다. 노출에 방점을 찍지 않고 자신의 입지에 집중한 조여정의 연기는 이내 많은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게 됐다.

여기까지가 조여정이 원래 갖고 있는 욕심 또는 열정 또는 천성이라고 표현한다면 이제 40대에 접어든 조여정은 조금씩 여유를 갖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여유는 극의 긴장감에서 시청자로 하여금 한 숨을 돌리게 하는, 극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수준에까지 올라갔다.

그의 존재감이 빛났던 장면은 ‘하이클래스’에서도 존재했다. 당연히 첫 회 가장 첨예했던 장면은 극중 이전 대치동의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부딪쳤던 세준의 어머니로 출연한 박은혜와의 장면이었다. 학부모 면접이 있던 날 만찬자리에서 앙숙을 다시 만난 세준의 어머니는 송여울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시비를 건다. 송여울은 이를 피해나가려 하지만 세준의 어머니는 송여울의 아킬레스건인 남편의 사망을 물고 늘어진다.

송여울 역시 세준의 아버지 성추행 의혹으로 맞불을 놨으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세준 어머니였다. 결국 ‘남편을 죽인 여자’라는 구설수가 송여울에게 덧씌워진다. 여기서 주목했던 것은 조여정의 연기였다. 다른 작품이었다면 대놓고 분노하고, 대놓고 소리를 질렀을까. 조여정은 일단 차오르는 당황과 황망의 감정을 눈으로 추스르고 버티고 있었다.

사진제공=tvN
사진제공=tvN

수근대는 인파를 거쳐 밖으로 나온 조여정은 홀의 문을 닫고 다시 감정의 수렁에 빠진다. 여기서 그의 연기는 사력을 다해 자신에게 다가온 불행의 운명을 버텨내려는 인간의 버둥거림이었다. 조여정의 눈빛과 표정은 슬픔이 차오르고, 삭는 찰나의 파고를 여유있게 소화한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그 여유 아래에서 송여울의 감정에 따라온다. 이는 다른 치정극에서는 볼 수 없는 한층 부드러우면서도 공감대를 넓히는 연기였다.

이는 조여정이 그동안 수많은 현장과 실전을 통해 스스로를 갈고닦았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예술에서는 부지런함이 타고난 재능의 벽을 넘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연기도 기술인지라 끊임없이 날을 다지고 벼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연기의 날이 장면을 가장 잘 재단할 때, 시청자들은 명품 드라마를 볼 수 있다.

40대가 된 조여정에게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가능성이 더욱 진폭을 넓히면 ‘하이클래스’의 급도 덩달아 하이클래스급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 드라마를 지켜봐야 할 이유가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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