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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윤준호(칼럼니스트)
  • 입력 2021.09.03 10:40
  • 수정 2021.09.0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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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세월도 역류시킨 연기고수가 만든 '기적'

영화 '기적',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적',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연기 잘했다’보다 ‘잘생겼다’는 말 듣고 싶어요."

어떤 배우가 이런 말을 했다. 이를 접한 대중은 어떤 생각을 할까? 10명 중 9명은 "배우가 연기를 잘 해야지, 생각이 틀렸다"고 타박할 것이다. 

하지만 ‘누가’ 이 말을 했냐가 중요하다. 바로 박정민이다. 영화 ‘기적’(감독 이장훈, 제작 블러썸픽쳐스)으로 복귀하는 그는 2일 방송된 SBS 파워FM ‘김영철의 파워FM’에 출연했다. DJ 김영철이 "‘잘생겼다’와 ‘연기 잘했다’ 중 어떤 소리를 더 듣고 싶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런 농담을 편하게 주고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박정민은 연기를 잘한다’는 전제가 깔려야 있다. 연기를 못하거나 애매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이런 농담을 입에 담았다가는 욕먹기 십상이다. 요즘 자주 쓰이는 표현을 빌리자면, 박정민은 ‘잘생김을 연기하는 배우’다. 동급 최강이라 불릴 만한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매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정민의 연기는 매번 도전이었다. 쉬운 적이 없었다. 데뷔작인 2011년작 ‘파수꾼’에서도 교우 관계 속에서 고뇌하는 고등학생을 연기했다. 이 영화를 통해 이제훈이 먼저 빛을 봤고, 박정민이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중과 평판의 찬사를 받기 시작한 시점은 2015년작인 이준익 감독의 ‘동주’가 공개된 직후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이자 타이틀롤인 윤동주가 주인공이다. 대다수 관객이 그렇게 생각하고 접근했다. 하지만 ‘윤동주를 보러 갔다가 송몽규를 발견했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윤동주 역을 맡은 배우가 누구던가? 연기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강하늘이었다. 강하늘의 연기력이 모자랐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몽규 역을 맡은 박정민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가 넘치는 연기력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 박정민은 어려운 역할을 ‘골라서’ 했다. 게다가 잘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천재 피아니스트 오진태를 연기했다. 극 중 대역 없이 신들린 듯 피아노 연주를 하는 박정민의 모습은 메소드 연기 그 자체였다. 당시 박정민은 언론 인터뷰에서 "100% 제가 쳤어요. 하지만 피아니스트처럼 완벽하게 연주할 수는 없고 싱크를 맞추는 연기를 했죠. 제가 비슷한 자세로 건반을 누르지 않으면 핸드 싱크가 안 맞았어요. 실제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피아니스트의 동영상을 봤는데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피아니스트의 동작과는 달랐어요. 엉뚱하고 웃음이 날 때도 있었죠. 다양한 특징 중 진태에게 가지고 올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살펴봤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상대역은 이병헌과 윤여정이었다. 존재감 만으로도 상대를 위축시킬 만한 고수들이다. 하지만 박정민은 그 안에서도 돋보였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박정민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 다시금 이준익 감독의 부름을 받고 촬영한 영화 ‘변산’에서는 래퍼로 분했다. 이 역에 어울리는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 귀를 뚫고, 타투를 했다. 원래 가진 연기력도 출중한데 여기에 노력까지 더하니 ‘노력하는 연기 천재’라 불렸다. 이후에도 그는 ‘사바하’, ‘타짜:원 아이드 잭’ 등 굵직한 작품을 통해 필모그래피를 탄탄하게 쌓아올렸다. 스포일러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그가 출연 사실조차 감췄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는 트랜스젠더를 꿈꾸는 게이 유이 역을 물흐르듯 소화해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영화 '기적',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적',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이런 박정민은 15일 개봉하는 영화 ‘기적’에서 또 한 번의 도전에 나선다. 1987년, 올해 나이 34세인 그는 극 중 고등학생 역을 맡았다.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에 간이역 하나 생기는 것이 유일한 인생의 목표이자 4차원 수학 천재인 준경을 연기했다. 그의 인생을 반으로 접어야 닿을 수 있는 나잇대의 역할이다. 데뷔작인 ‘파수꾼’ 속 배역의 시절로 돌아간 셈이다. 하지만 연기력이 더욱 무르익은 그에게 나이 따위는 별다른 장애물이 아니었다.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기적’ 속 박정민의 모습은 때묻지 않은 고교생 그 자체였다. 

그는 "고등학생 역할이 굉장히 부담됐다, 감독님 하고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처음에 미팅할 때도 내가 과연 이제, 더 이상, 고등학생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말씀을 드렸고 그런 것에 대해 상의를 많이 했었다"면서 "감독님께 교실에 나오는 연기자들, 반 친구들, 운동장에 서 있는 반 친구, 학교 친구들을 모집하실 때 실제 고등학생을 모집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 괜찮을 수도 있다고 했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박정민에게는 ‘리틀 황정민’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그가 영화 ‘전설의 주먹’에서 황정민의 아역을 맡거나, 같은 소속사에 몸담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연기력은 출중하나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하던 황정민이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눈에 띄는 조연을 맡아 수면 위로 올라온 것처럼, 박정민 역시 유수의 작품에서 ‘주연 잡아먹는 조연’으로 인정받은 모습이 썩 닮았다.

영화계에서는 박정민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오르내린다. 촬영 현장에서 항상 올곧은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동시에 주연 배우로서 주변 동료와 스태프들까지 챙긴다. 이는 황정민의 모습과 흡사하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결국 공동의 작업인 터라, 전체의 조화와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박정민은 익히 알고 있다.

박정민은 언론 인터뷰에서 황정민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황정민 선배님은 뜨거워요. 열정 가득한 매력이 있죠. 아무래도 식구로 지낸 지가 꽤 됐으니 그분만의 애정표현이 있어요. 가끔은 아버지처럼 혼내시기도 하고, 가끔은 힘드냐고 묻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 제가 일을 쉬지 않고 해오며 고비가 있었어요. 툭 치면 무너질 것 같았죠. 그때 어떻게 아시고 전화를 주셔서 자기 경험에 비춘 조언들을 해주셨죠. 그 이야기를 듣고 영화 촬영 현장에서 제 태도가 많이 바뀌었어요." 

박정민은 분명 좋은 선배를 뒀다. 그가 또래 배우들보다 더 성숙한 모습으로 앞질러 나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좋은 선배가 좋은 후배를 낳는 충분 조건은 아니다. 결국 박정민도 좋은 후배다. 더 나아가 좋은 배우다. 그의 다음 작품과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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