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켓소년단',막장 바이러스를 치료할 힐링 백신

2021.06.10
사진제공=SBS

SBS에서 지난달 31일 방송을 시작한 월화드라마 ‘라켓소년단’은 많은 이전 작품들이 비쳐보인다. 드라마는 단순한 줄거리다. 배드민턴 코치로 도시에서의 쪼들린 살림을 견디다 못해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을 찾은 아빠 윤현종(김상경)과 중학생 아들 윤해강(탕준상), 유치원생 딸 윤해인(안세빈) 세 가족과 이미 해남에 터를 잡은 엄마 라영자(오나라) 그리고 극의 배경이 되는 해남서중 배드민턴부의 성장담이다.

이 드라마에는 우리가 스포츠드라마 또는 귀촌드라마 또는 청소년의 성장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코드들이 집대성돼 있다. ‘대투수’ 양현종을 좋아해 야구선수의 꿈을 갖고 있는 윤해강은 원래 전설의 초등학생 배드민턴 선수였다. 야구가 더 인기가 많고 성공할 확률이 높아 골랐지만 해남에 내려와 접한 배드민턴의 재미에 어릴 때의 욕심이 다시 자라난다. 승부욕만 있고 앞뒤 가리지 않는 열혈중학생인 윤해강은 배드민턴과 배드민턴부 동료들을 통해 우정과 꿈의 의미를 새긴다.

그리고 해남의 풍경과 시골의 정도 드라마의 큰 얼개다. 처음 찾은 해남의 집은 남루하기 그지없었지만 배드민턴부에 엄마 라영자가 데리고 있는 해남제일여중 배드민턴부까지 합세하면서 사람냄새가 가득해진다. 와이파이도 없고 PC방도 없어 불편했던 마을의 모습과 무섭거나 낯설기만 했던 어르신들의 모습은 그들의 속정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훈훈함으로 윤색된다. 

사진제공=SBS

이 드라마는 만약 조기종영의 비운을 맞았던 ‘조선구마사’가 끝까지 방송됐다면 그 다음 드라마로 편성됐을 작품이었다. 같은 방송사에서 ‘펜트하우스’ 등의 드라마가 방송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드라마는 청량함과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다. 드라마에는 우리가 ‘워터보이즈’나 ‘태릉선수촌’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봤던 꾸밈없는 운동에 대한 열정에 ‘모던 파머’나 ‘동백꽃 필 무렵’ 등에서 봤던 정겨운 시골의 이웃들 그리고 ‘반올림’이나 ‘학교’ 시리즈에서 주로 봐오던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 갈등과 시련 등이 이어진다.

작품은 2017년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집필했던 정보훈 작가의 차기작이다. 과연 구치소를 배경으로 어떤 이야기를 펼칠 수 있을까, 당시에는 많은 의문부호가 달렸다. 이때 정 작가가 많은 우려를 돌파하기 위해 썼던 방식은 구치소에 온 여러사람들의 사연을 자연스럽게 엮어가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포츠물, 귀촌물, 청소년 성장물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이 드라마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사람들의 모습을 병렬하면서 결국 삶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라켓소년단’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였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시류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보였던 배드민턴부 배 감독(신정근)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전설적인 지도자 ‘하얀 늑대’였고, 무섭게만 보였던 오매할머니(차미경)는 알고 보니 손녀와의 만남을 만날 그리고 도시의 정신없는 풍경에 나약해지고 마는 노인의 애로를 보였다. 또한 삶의 희망을 잃고 귀촌했던 부부(정민성·박효주)는 알고 보니 죽을 자리를 찾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무심코 베푼 친절에 삶의 기운을 얻는다.

결국 드라마는 스타도 없고, 인기도 없지만 우리 주변에 누구든 열심히 하고 있는 배드민턴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안에 남은 모르는 비범함이 담겨있고, 이를 알아봐주는 눈이 결국 관심이고 사랑이고 우정임을 역설한다. 물론 아직 16부작의 초반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줄거리가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아마 야구와 배드민턴 사이에서 갈등하며 결국 훌쩍 크는 윤해강의 성장담이 큰 줄기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사진제공=SBS

이런 스타일의 드라마는 재미있게도 신진작가들이 큰 이름으로 성장하는 디딤돌로 쓰곤 했다. 일단 많은 인간군상을 마을이라는 공동체 안에 늘어놓을 수 있어 작가가 캐릭터플레이를 하는데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2017년 ‘쌈, 마이웨이’를 거쳐 2019년 ‘동백꽃 필 무렵’으로 이름을 알렸던 임상춘 작가도 시작은 2016년 한 외딴 섬을 배경으로 인간군상들이 나타나는 4부작 ‘백희가 돌아왔다’가 시작이었다.

2018년 ‘으라차차 와이키키’의 김기호 작가 역시 2014년 ‘모던 파머’를 통해 이러한 작법을 익혔다. '전우치’ ‘광개토태왕’의 조명주 작가도 2006년 ‘포도밭 그 사나이’로 귀촌과 로맨스를 버무리면서 작품의 폭을 넓혔다.

무엇보다 ‘라켓소년단’에는 지긋지긋하게 안방극장에서 우리를 괴롭히던 ‘빌런’ 즉 악역이 없다. 듣기만 해도 정색을 해버리고 마는 떠난 친구의 존재도 결국 짜장면 한 그릇으로 툭툭 털 수 있고, 서로를 무시하기 일쑤이던 윤해강과 전교 1등 정인솔(김민기)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서로를 감싸고 만다. 우리의 삶이 복수와 핏빛 치정만 있을까. 더위가 찾아오면서 청량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진 요즘, 착한 드라마 ‘라켓소년단’의 가치는 오르는 기온만큼이나 올라갈 듯하다.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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