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데이트

'크루엘라’, 우리 디즈니가 달라졌어요

디즈니 동화의 흑화! 엠마 스톤의 명불허전 연기

2021.05.27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완벽한 악녀'가 탄생했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의 대명사였던 디즈니가 제대로 흑화했다. 어른들의 사정 속에, 또는 사회의 기준에 따라 에스텔라가 크루엘라의 본능을 억누르고 살아왔던 것처럼, 디즈니 또한 오랜 시간 자신들의 욕망을 감추고 있었던 걸까? 그만큼 ‘크루엘라’는 디즈니가 그려낼 수 있는 빌런이란 어떤 것인지, 흑과 백으로 양분된 헤어 컬러처럼 파격과 혁신으로 무장한 채 우리 앞에 당당하게 등장했다.

주인공 ‘크루엘라 드 빌’의 이름이 생소하다면,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강아지 가죽으로 옷을 만들겠다던 악마 같은 여자는 기억할까? 바로 그 무시무시한 발상의 빌런이 바로 크루엘라다. 디즈니는 자신들의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라이브 액션 프로젝트를 통해 ‘말레피센트’에 이어 다시 한번 원작의 빌런을 재해석했다. 의상 디자인의 재능은 있지만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던 에스텔라(엠마 스톤)가 일류 디자이너 남작 부인(엠마 톰슨)을 만나면서 런던 패션계의 혁신을 이끄는 크루엘라로 변모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러닝 타임 내내 ‘크루엘라’를 향한 디즈니의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크루엘라 드 빌은 데빌(악마) 같은 여자였습니다’로 귀결됐던 원작이지만, 디즈니는 크루엘라에게 ‘왜?’라는 질문을 들이댔고, ‘어떻게’라는 과정을 이야기로 선물한다. 다크 히어로 장르에 관객들을 초대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서사다. 그들의 사정에 관객들이 공감해야 일탈과 범죄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법. 하여 영화는 크루엘라의 내레이션을 시작으로 마치 어린 시절 디즈니의 동화책을 읽듯 그의 인생을 쫓아간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독특한 헤어 컬러와 성격으로 순탄치 않았던 어린 학창 시절, 엄마와의 이별에 따른 트라우마, 소매치기와 도둑질로 점철됐던 청소년기, 그때 만난 친구들과의 우정, 가난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패션 디자이너를 향한 열정, 그리고 바로네스 남작 부인과의 갈등과 대립, 출생의 비밀까지 크루엘라의 인격 형성을 이해할 수 있는 과정들이 경쾌한 리듬 속에 화려한 비주얼로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크루엘라’는 재미를 추구하는데 있어 장르의 경계를 해제하며 관객의 133분을 순식간에 훔쳐 낸다.크루엘라가 친구들과 바로네스 남작 부인을 침몰시키는 과정은 한 편의 케이퍼 무비이며, ‘하우스 오브 바로네스’에 입사해 에스텔라로 살아가는 모습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연상케 한다. 다크 히어로가 품고 있는 내면의 한 조각을 살펴보는 건 마치 ‘조커’의 다른 옷을 입은 듯하며, 여성 빌런의 거침없는 질주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게 기대했던 그 이상을 보여준다. 나아가 227벌이라는 의상의 물량 폭탄은 화려한 패션쇼를, 비틀스, 퀸, 도어스, 블론디 등 70~80년대를 풍미했던 음악들의 향연으로 비주얼 콘서트를 선물한다.

수많은 즐거움을 품고 있지만 그중 최고는 바로 엠마 스톤이다.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흔한 문구를 다시 한번 꺼내 드는 건 매번 자신의 한계치를 새로이 갱신하는 그의 능력 탓이다. ‘버드맨’ ‘라라랜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등 여러 작품에서 노래, 춤, 스포츠까지 다양한 매력을 펼쳐왔던 엠마 스톤은 끊임없는 감정선의 변주로 ‘입체적 캐릭터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크루엘라에 완벽하게 빙의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빛나고 있는 배우가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났을 때 어떤 모습이 펼쳐지는지, ‘크루엘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마 2021년 핼러윈 데이엔 너도나도 크루엘라의 코스프레가 거리를 가득 매울 거라 감히 예상해 본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더불어 또 다른 엠마, 바로네스 남작부인 역의 엠마 톰슨의 연기력 역시 ‘크루엘라’를 단단하게 받치는 기둥이다. 이미 ‘하워즈 엔드’와 ‘센스 앤 센서빌리티’로 2번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러브 액츄얼리’ ‘맨 인 블랙’ ‘해리포터’ 시리즈까지 장르 불문 견고한 연기 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는 배우다. 만약 빌런의 빌런이라 할 수 있는 남작부인의 탐욕이 흔들렸다면 크루엘라의 거침없는 행보는 그저 치기 어린 행동으로 폄하될 수 있던 부분이다.

여러모로 ‘크루엘라’는 디즈니의 새로운 도전이다. 특히 광기라는 것을 순순히 수용하는 것이 낯설기까지 하다. 그만큼 디즈니의 고전 동화들은 선과 악의 경계가 명확했다. 의붓딸을 집요하게 찾아내 – 자신보다 예쁘다는 이유로 – 독살하는 왕비가 있었고, 밀림의 왕이 되기 위해 형을 절벽에서 떨어트린 사자도 있었다. 악은 그저 악일 뿐, 권선징악에 있어 여지를 주지 않았던 디즈니였다. 
 
최근의 디즈니는 영화 미디어에 있어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데 가장 거침이 없다. 화이트 워싱에 대한 경고를 받아들이고, 다양한 인종의 스토리텔링을 추구하고 있으며, 젠더의 경계를 허물고자 노력 중이다. ‘크루엘라’ 역시 여성 다크 히어로를 중심으로 원작의 백인 캐릭터를 흑인으로 교체하는 등 자신들의 가치관을 영화적으로 풀어냈다. 그리고 ‘크루엘라’는 디즈니가 찾은 또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결국 모든 갈등은 사회가 강요하는 기준과 편견에서 시작됐다는 것. 크루엘라가 잔인한 세상을 향해 들이대는 삐딱한 행동은 디즈니가 추구하는 동화의 흑화이자 진화인 셈이다. 

끝으로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101마리 달마시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몰라도 ‘크루엘라’의 매력을 느끼는 데 큰 장애는 없다. 당초 캐릭터의 설정만 뽑아온 셈이니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 없다는 것. 허나 원작 팬이라면 알아챌 수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됐으니 모든 재미를 즐기기 위해선 원작을 찾아보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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