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생성하는 봄, 내 마음에 '멸망'이 들어오다

2021.05.26

사진제공=tvN

영원불멸의 신 도깨비, 망자들에게 길을 인도하는 저승사자, 죽은 자들이 머물다 가는 호텔의 주인까지, 존재할 것 같지만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를 여러 차례. 이보다 더 특별한 존재는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등장했다. 그 이름은 바로 ‘멸망’. 2021년 봄, 만물이 소생하는 이 계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멸망’이 주는 설렘에 퐁당 빠졌다.

 

열성 팬을 양성하며 화제리에 방송 중인 tvN 월화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이하 ‘멸망’, 극본 임메아리, 연출 권영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탁동경(박보영)이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이유가 되는 존재 멸망(서인국)과 목숨을 건 계약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중 박보영이 연기하는 동경은 10살 되던 해 교통사고로 부모를 동시에 잃고도 눈물을 참았다. 그 탓인지 28살 어느 날 마른 하늘에서 갑자기 내리치는 벼락처럼 뇌종양을 선고받는다. 설상가상으로 3개월 사귄 남자친구의 아내로부터 물벼락을 맞고, 그로 인해 불륜녀로 온라인에 박제된다. 최악의 상황이 쓰나미처럼 몰아친 하루를 보낸 동경은 까만 밤하늘을 향해 “세상 다 망해버려”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이 한마디는 멸망과 함께하는 100일의 시작이 된다.


사진제공=tvN


서인국이 연기하는 멸망은 무언가를 멸망시키는 운명을 가지고 빛과 어둠 사이에 태어난 존재다. 신이 만든 가장 완벽한 중간관리자로 불리며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한 세기를 넘거나, 한 문명을 넘겨야 찾아오는 자신의 생일에 단 한 명의 인간을 선정해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데. 모럼 찾아온 생일에 세상의 멸망을 바라는 동경의 소원이 들린다. 멸망이 이를 이뤄주기 위해 소원의 주인 동경을 찾아가면서 설렘 가득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이들의 이야기. 동경은 우연히(?) 뱉은 자신의 말 한마디를 이뤄주겠다며 찾아온 멸망이 무섭기도, 부담스럽기도 하다. 무엇보다 동경의 소원이 철회되는 방법은 동경이 사랑하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뿐. 유일한 혈육인 동생 선경(다원)을 잃을 수 없던 동경은 새로운 사랑의 상대를 찾아 나서고, 그런 동경에게 멸망은 자신을 사랑하는 최초의 인간이 될 것을 제안한다.

 

죽지 못하는 불멸의 존재이기에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던 멸망은 동경의 소원을 핑계로 '소멸'을 꿈꾼다. 이와 함께 동경의 소원을 철회하고, 죽음으로부터 동경도 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동경은 멸망이 소멸한 뒤 자신이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다며 제안을 거절한다. 대신 “네가 날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멸망은 이를 들어줄 수 없다고 거절하지만, 이내 애틋한 키스로 화답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입맞춤 직후 멸망이 사라지고, 그를 탄생시킨 소녀신(정지소)의 내레이션이 더해지며 다음 이야기를 궁금케 했다.


사진제공=tvN


‘멸망’을 쓴 임메아리 작가는 이른바 ‘김은숙 키즈’로 불리는 인물 중 하나다. 김은숙 작가 밑에서 보조작가로 실력을 쌓아 메인 작가로 데뷔한 것. 첫 작품이었던 SBS 드라마  ‘뷰티인사이드’는 광고, 영화로 이미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같은 소재가 임 작가의 손을 거치면 전혀 다른 연주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멸망’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로맨스를 기본 설정으로 하되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의 중간관리자, 이를 단어에 지나지 않았던 멸망으로 명명하고 탄탄한 세계관을 구축해 극적 재미를 배가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TV에 고정시키는 집필력을 자랑한다.

 

임 작가가 만든 ‘멸망’의 세계관은 ‘로코(로맨스 코미디)’의 장인이라 불리는 박보영과 서인국의 탄탄한 연기를 만나 새롭고도 흡입력 강한 이야기가 됐다. 다수의 작품에서 증명된 박보영의 거부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은 ‘멸망’에서도 빛을 발한다. 날카로운 눈빛에 녹아있는 서인국 특유의 츤데레(까칠한 행동과 달리 속마음은 따뜻한) 매력은 자칫 높게 느껴질 수 있는 판타지 로맨스의 장벽을 허문다.

 

보는 사람에 따라 겉모습은 물론 나이, 성별까지 달리 보인다는 멸망. 그의 진짜 모습은 동경만이 알고 있다는 설정은 아직까지 이들 사이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음을 짐작게 한다. 사라진 멸망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홀로 남아 망연자실하던 동경은 무엇을 알고 있을까. 회를 거듭할수록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힘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숨을 불어넣은 대본에 있다. 또한 이를 차지게 형상화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어색할 수 있는 설정들을 거부감 없이 볼 수 있게 만드는 세련된 연출도 한몫한다.  그 덕에 6회까지 방송된 지금. ‘멸망’ 본방송을 본 후 다시 관람하고 다음주 월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시청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시청자들이 기묘한 중독성에 '멸며들고' 있다. 

 

조이음(칼럼니스트)





목록

SPECIAL

image 슬기로운 의사생활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