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데이트

윤여정과 함께 오스카를 빛낼 노장의 힘

'더 파더' 안소니 홉킨즈-'노매드랜드' 프랜시스 맥더먼드 주연상 타나?

2021.04.21
아카데미상 유력한 남녀 주연상 후보로 떠오르는 '더 파더'의 안소니 홉킨스(위)와 '노매드랜드'의 프랜시스 맥도먼드. 사진제공='더 파더'(판씨네마), '노매드랜드'(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임박했다. 4월 25일(한국 시각으로 4월 26일 오전 9시부터) 열릴 이 ‘로컬 영화제’에 한국인의 관심이 쏠리는 건 ‘미나리’의 윤여정 때문일 거다. 미국 배우 조합상(SAG)과 영국 아카데미 등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쓴 1947년생 윤여정의 수상 가능성은 독보적인지라, 내 관심은 남우주연과 여우주연에 쏠려 있다. 정확히는 1937년생으로 최고령 후보에 오른 ‘더 파더’의 안소니 홉킨스와 ‘노매드랜드’로 세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노리는 1957년생 프랜시스 맥도먼드에게 눈길이 간다. 

안소니 홉킨스와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아카데미 도전은 윤여정의 도전에 비해 식상해 보일 수 있다. 이미 ‘양들의 침묵’으로 1992년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안소니 홉킨스요, 1997년 ‘파고’와 불과 3년 전인 2018년 ‘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아닌가. 이들의 연기가 출중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그들 또한 충분히 영광을 누렸으니 다른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파더’와 ‘노매드랜드’를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인생은 60부터’라더니, 그 말을 실감하게 만드는 농익은 연기가 관객을 압도하거든. 

먼저 ‘더 파더’의 안소니 홉킨스.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 6개 부문에 후보를 낸 ‘더 파더’는 동명의 연극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연극의 각본과 연출을 담당했던 플로리안 젤러 감독이 영화화 단계에서 처음부터 떠올린 얼굴이 안소니 홉킨스였기에, 캐릭터 이름과 생년월일 또한 그에게서 따 왔다. 80대 노인 ‘안소니’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화는 스릴러의 외피를 둘러 시종일관 긴장감 넘친다. 런던의 고급 아파트(flat)에 거주하며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안소니에게 요즘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나날이다. 간병인을 내쫓아 딸에게 한 소리를 듣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기억력은 짱짱한 것 같은데, 걸핏하면 아끼는 손목시계가 사라지고, 낯선 남자가 딸의 남편이라며 집안에 떡하니 앉아 있고, 가끔 딸이 했던 말은 물론이거니와 얼굴까지 낯설다. 자신의 아파트를 노리고 딸이 모두와 작당해 음모를 꾸미는 게 아닌가 싶다. 

'더 파더', 사진제공=판씨네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지금의 시간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결국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면서 안소니는 까탈을 부리다 고함을 지르고 너스레를 떨다가 급기야 눈물을 내비치며 오열한다. 이 모든 원인은 차츰 기억을 잃게 하는 치매 때문. 안소니 홉킨스는 이 혼란 속에서 시시때때로 격앙되는 안소니가 되어 극단적 감정의 파고를 압도적으로 소화해낸다. 내 아파트에서 절대 떠날 수 없다며 버럭 화를 내던 안소니가 벼락 같은 상황을 맞곤 우두망찰 서 있는 모습을 보라. ‘양들의 침묵’에서 단 16분의 출연만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한니발 렉터’는 29년의 세월이 지나 여전한 강렬함은 물론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의 여린 감정까지 유려하게 오간다. 관객들은 그의 연기에 경도되는 것은 물론 초반부터 안소니의 감정에 이입해 혼란을 느끼는 경험을 맛보게 된다. 

안소니 홉킨스가 자신의 감정을 관객에게 압도적으로 발산한다면, ‘노매드랜드’의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자연의 일부분이 된 듯 먼 거리에서 지켜보게 만드는 연기를 선보인다. 논픽션 ‘노매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를 원작으로 한 ‘노매드랜드’는 ‘유목민들의 땅’이란 뜻의 제목처럼 미국의 현대 유목민들의 삶을 마치 다큐처럼 담아낸 영화. 주인공 ‘펀’을 맡은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데이비드’ 역의 데이비드 스트라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실제 유목민의 삶을 사는 비전문 배우인 것도 생생한 날것의 느낌에 한 몫 한다. 자연히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연기 또한 다큐의 그것과 흡사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석고 공장이 즐비하던 네바다 주 엠파이어는 우편번호마저 없어진 유령 도시가 되고 만다. 그곳에서 펀은 남편을 병으로 떠나보낸 뒤 밴을 타고 떠도는 삶을 택한다. 일거리를 찾아 아마존 물류센터와 사탕무 농장, 관광 명소의 레스토랑을 전전하고, 밤에는 아버지가 어릴 적 선물해준 접시 세트까지 꾸역꾸역 담긴 밴에서 잠을 청하는 삶이다. 

'노매드랜드',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펀에게 지붕 있는 안락한 삶을 살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혈육인 언니도 함께 지내자고 말해주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길 위를 유랑하다 자식의 집으로 돌아간 데이비드도 함께 살자고 권유한다. 그러나 떠나온 삶의 터전과 남편의 기억을 안고 사는 펀에게 그곳들은 자신의 집이 될 수 없다. 자신을 홈리스(Homeless)로 보는 사람들에게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 정정할 만큼 ‘노매드’의 삶에 익숙해지는 펀. 길 위를 유랑하고,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느슨한 연대를 맺고, 길 위에서 지켜보는 압도적인 자연을 실감하며 자신의 삶을 사는 방식을 만들어간다. 

몇 개월간 실제 노매드처럼 생활하며 한 업체에게 일자리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만큼 노매드의 삶을 체화한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표정의 변화가 적은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그 안에 내밀하게 희로애락을 담아낸다. 조용한 강렬함이랄까, 서서히 스며들어 어느 순간 관객의 내면에서 폭발하는 울림을 일으키는 연기다. 안소니 홉킨스의 그것과는 정반대의 결이지만 묵직함의 강도는 비교 불가하다. 연기 스타일뿐 아니라 집에 집착하며 실내 공간에서 주로 활동하는 ‘더 파더’의 안소니와 이동하는 밴을 타고 유랑하는 ‘노매드랜드’의 펀은 묘하게 대조적으로 보인다. 기억을 잃어가는 남자와 떠나간 자의 기억을 붙들고 사는 여자라는 점도 마찬가지. 연극을 기반으로 한 작품과 논픽션을 기반으로 한 작품의 차이도 선연하다. 

‘더 파더’와 ‘노매드랜드’는 ‘미나리’와 마찬가지로 미국 아카데미 6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었다. 여우조연상으로는 ‘미나리’의 윤여정이 강세라지만,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 후보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29년 만에 오스카를 노리는 안소니 홉킨스는 지난해 세상을 떠나 유작이 된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에 출연한 채드윅 보즈먼과 경쟁해야 한다.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프라미싱 영 우먼’의 캐리 멀리건과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의 비올라 데이비스와 각축을 벌여야 한다. 

지난 4월 11일 있었던 영국 아카데미에서는 안소니 홉킨스가 남우주연상,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여우주연상, 그리고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과연 미국 아카데미에서도 이 모습이 재현될까? 확실한 건 평균 연령 70대 중반의 이 세 배우가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된다면, 재기 넘치는 젊은 천재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이 밀려올 거라는 거. 인생은 60부터라는 진리(?)를 이들의 모습에서 확인하고픈 40대 꼬꼬마의 바람을 실어 본다. 

정수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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