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데이트

'낙원의 밤', 다 알면서 촌스럽게 왜 이래?

2021.04.06

사진제공=넷플릭스


‘낙원의 밤’에 주목한 이유는 단 하나, 박훈정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 시나리오로 단숨에 충무로의 관심을 휘어잡은 박훈정 감독은 ‘신세계’를 선보이며 한국형 누아르란 무엇인지를 톡톡히 보여준 바 있다. 수많은 언더커버 영화들이 나왔지만 여전히 한국 최고의 언더커버 영화로 ‘신세계’를 꼽는 이들이 많을 정도다. 


‘낙원의 밤’은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유일하게 초청된 한국영화(비경쟁 부문)로도 기대를 모은 바 있다. 극장 개봉에서 넷플릭스 공개로 바뀌면서 전 세계 190여 개 국가에 박훈정표 누아르를 선보이게 됐다. 4월 5일 프레스 스크리닝으로 선공개된 ‘낙원의 밤’은 ‘신세계’ 같은 누아르를 기대했던 이들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조직의 타깃의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 낙원이라 불리는 제주도에서 일주일이란 시간을 함께하게 된 남녀를 중심으로 칼부림과 총격, 사방에 피칠갑을 하는 복수가 난무한다. 전형적인 누아르인데, 누아르를 설명하는 방식과 곳곳에 박힌 개그 포인트가 도드라진다. 


박태구(엄태구)는 양 사장(박호산)파 조직의 에이스. 라이벌 조직 북성파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북성파 보스에게 복수를 감행하고 해외로 도피하기 전 제주도로 온다. 무기상 쿠토(이기영)와 그의 조카 재연(전여빈)이 사는 곳에서 일주일간 몸을 의탁하면서 자신처럼 조직에게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아픔이 있는 재연과 스멀스멀 감정을 쌓아간다. 그 사이 ‘계산’을 하기 위해 태구를 쫓는 북성파 2인자 마 이사(차승원)를 필두로 슈트 차려 입은 많은 조직원들이 제주도로 향한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낙원의 밤’이 예상과 다르게 느껴지는 지점은 주인공인 태구와 재연, 심지어 마 이사까지 여느 누아르와 다른 결로 그려내는 순간에 있다. 태구가 양손을 흔들며 ‘조카 바보’의 면모를 보일 때나 거침없는 행보의 재연에게 머쓱해하는 모습, 삶의 의지가 없어 봬는 처연한 표정을 하다가도 물회에 진심을 보이는 재연, 나름 의리 있는 조폭 같으면서도 어딘가 장황하고 웃긴 구석이 있는 마 이사 등 ‘낙원의 밤’의 주연들은 모두 기존의 누아르와 다른 포인트가 있음을 대놓고 보여준다. 


문제는 ‘낙원의 밤’이 그리는 서사가 기존 누아르와 다를 것이 없다는 거다. 누아르 클리셰를 충직하게 따라가다 보니, 인물들에 부여한 독특한 포인트가 서사와 착 감기지 않는다. 영화 속 대사처럼 ‘쌍팔년도도 아니고 대명천지 21세기’인데, 이런 서사는 다소 촌스럽게 느껴진다. 마지막 10분을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게으른 서사를 전복하려 들지만, 그 10분을 위해 너무 오랜 시간 촌스러움을 감내해야 한다. 또한 누아르를 기대한 이들에게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 감성과 곳곳에 박힌 개그 요소는, 그것이 제대로 스며들었느냐 아니냐를 떠나 당황스러울 것이다. 


‘낙원의 밤’에도 빛나는 구석은 있다. 독특한 목소리 톤과 인상적인 연기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했던 엄태구가 그려낸 박태구는 시간이 흐를수록 묘하게 그의 감정에 동조하게 만든다. 엄태구라는 배우가 지닌 힘이다. 오랜 시간 누아르는 물론 액션과 코미디에 일가견을 보였던 차승원이 연기한 마 이사는 그의 이력을 압축한 듯한 캐릭터를 입고 기묘한 분위기를 생성해낸다. 그리고 전여빈. 독립영화는 물론 최근 드라마 ‘빈센조’에서 변화무쌍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전여빈은 ‘낙원의 밤’에서 무표정한 얼굴부터 깨알 같은 개그 연기, 냉혹한 폭주까지 극과 극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오간다. 박훈정 감독의 전작 ‘마녀’의 자윤을 잇는 신선한 여성 캐릭터의 발견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일관된 블루 톤의 영상으로 담아낸 영상미도 돋보인다. 일을 마친 조직 패거리들의 차량이 줄줄이 사려니숲길 코스를 통해 나올 때, 방금 전 있었던 피 튀기는 살육전과 대조되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비장함을 강조하는 효과를 보인다. 코로나19로 안 그래도 인기였던 제주도가 한층 더 사랑받는 중인데, ‘낙원의 밤’에서는 주인공들의 비극을 강조하는 낙원의 모습으로 설정되어 묘한 여행 욕구를 당기게 한다. 


영화에서 주연만큼 스토리텔링이 강조된 물회는 의외의 승자. 4월 9일 넷플릭스에 ‘낙원의 밤’이 공개되고 나면 물회와 한라산 소주 마시러 제주도에 가고 싶은 충동이 드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어쩌면 물회와 소주를 곁들이며 영화를 봐야 더 감칠맛이 날 수도. 


정수진(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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