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래퍼4ㅣ착한 경쟁의 힘 ①

2021.04.07

사진출처=엠넷 '고등래퍼4' 방송화면

“홀리십 드랍 더 비트!”

어린 힙합인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이 한 마디. 비트가 시작되고 분위기가 고조되면 고등래퍼들은 앞다퉈 제 목소리로 큰 무대를 채워간다. 두려움과 긴장도 공존하지만 화면 너머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 꿈을 실현하는 이들의 벅찬 설렘이다.

현재 Mnet에서 방송 중인 ‘고등래퍼4’는 예비고1부터 고3까지 나이 제한을 둔 10대들의 랩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쇼미더머니’의 스핀오프인 만큼 진행 방식도 비슷한데, 랩을 통해 매 미션을 수행하고 멘토들과 팀을 이뤄 결승을 치른다. 이 과정에서 실력으로 거취가 결정되는 방식은 여느 경연 프로그램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심사위원 역할을 하는 멘토나 경연에 임하는 고등학생 참가자들의 태도는 타 서바이벌과는 확연히 다르다. 물론 10대 참가자가 등장하는 만큼 성장이 주 포커스일 수밖에 없지만 이 프로그램이 더 특별한 건 배려와 화합의 장면들이다. 매운 서바이벌이 특기인 Mnet의 별종 같은 존재이자, 경쟁으로 훈훈함을 그리는 유일한 서바이벌이다.

지난달 19일 첫 방송을 시작해 어느덧 7화까지 방영된 ‘고등래퍼4’는 총 여섯 차례의 미션이 공개됐다. 계급장 떼고 랩으로만 도장깨기에 나섰던 ‘출석체크: 랩 탐색전’을 시작으로 ‘학년대항 싸이퍼’, ‘조별 평가’, ‘1대 1 주제 배틀’, ‘팀대항: 단체전’, ‘팀 대항: 교과서 랩 배틀’ 등이 펼쳐졌다. 지난 시즌들과 비교해 진행 방식엔 큰 변화가 없다. 다만 MC부터 멘토, 참가자들까지 전체 출연진들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작정하고 착해졌다. 일각에선 이로 인해 재미가 반감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교훈적 메시지는 더욱 뚜렷해졌다. 이것만으로 '고등래퍼'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사진출처=엠넷 '고등래퍼4' 방송화면

#참가자들의 실력-인성 모두 ‘상향평준화’

3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모인 40인인 만큼 기본적인 랩 스킬과 스타일은 개성이 잘 묻어났다. 탄탄한 하드웨어가 돋보였던 김우림(디아크) 이승훈(트레이드엘) 이정운, 감성적인 싱잉랩을 선보인 김재하 강요셉 이상재, 독특한 바이브의 황세현 추현승 김진혁 등 ‘상향평준화’된 참가자들의 대거 출연으로 귀가 즐거웠다. 한때 목소리 큰 래퍼가 큰 인기를 끌며 참가자들의 스타일이 단조로웠던 때에 비해 이번 시즌엔 목소리의 높이보단 깊이에 초점을 둔 모습으로 다양성을 더했다. 그렇다보니 실력이 아닌 취향 차이라는 멘토들의 말이 새삼 더 와닿는 시즌이다. 싱잉랩, 붐뱁, 트랩 등을 모두 아우르는 고등래퍼의 모습은 확실히 감상하는 재미가 많아졌다. 깨물어주고 싶은 10대의 귀여움을 담아낸 김다현 박현진의 'WORK!'나 성숙한 무드로 제 나이를 의심케 한 노윤하 강요셉의 '녹아줄게' 등 더욱 다양한 색깔의 곡들이 탄생할 수 있던 이유다.

이들의 진화는 랩 실력뿐이 아니다. 경연에 임하는 태도 역시 달라졌다. 지난 시즌의 선행 학습 덕인지, 아니면 쿨한 태도가 유행인 건지 몰라도 치열함보단 도전 자체에 의의를 두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타인의 실수가 기회인 서바이벌에서 기꺼이 재도전의 기회를 주고, 격하게 호응하며 타 참가자에게 용기를 북돋워준다. 싸이퍼를 앞두고 주저하는 친구를 위해 "기회가 아깝잖아"라며 따뜻하게 격려하던 황세현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물론 "내가 제일 잘해"라고 말하거나, "난 좀 별론데?" 등의 평가어린 시선들도 있지만 이번 고등래퍼들은 확실히 그 정도를 아는 모습이다. 거슬림없이 귀여운 수준에서 그친다. 방송에서 모나 보여선 얻을 게 없다는 걸 깨우친 듯 영리해진 고등래퍼들의 모습은 마냥 호감을 그린다.

사진출처=엠넷 '고등래퍼4' 방송화면

#각양각색 9인 멘토, 확실한 캐릭터로 제 역할 톡톡

9인의 멘토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염따&더콰이엇, 창모&웨이체드, 사이먼 도미닉&로꼬, 박재범&우기&피에이치원 등 4팀으로 나뉜 멘토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침과 기회를 제공한다. 거친 말투과 달리 따뜻한 속내로 아이들의 멘탈을 잡아주는 염따&더콰이엇 팀, 형처럼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내적인 교감을 이루는 창모&웨이체드 팀, 부모님처럼 아이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사이먼 도미닉&로꼬 팀, 아낌없는 칭찬과 적극적인 서포팅으로 아이들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박재범&우기&피에이치원 팀까지. 가르침의 방식은 달라도 성장을 이루는 결과는 같다.

특히 이들의 존재 이유가 확실했던 장면이 있다. 싸이퍼 대결 때 김다현 군이 가사 실수로 무대를 포기하려 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지르던 박재범의 모습이다. 다현 군의 실수에 박재범은 굉장히 다급한 목소리로 "야! 다시해 다시!"를 외쳤고, 다현 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준비한 랩을 완벽히 소화했다. 이는 '고등래퍼'의 상징적 장면이다. 다른 프로그램에선 있을 수 없는 편파적인 행동이지만, '고등래퍼'에선 감동이 되는 명장면이다.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무한해야 하고, 어른의 역할은 바로 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이는 박재범뿐 아니라 모든 멘토들이 강조하는 공통적 자세다.

사진출처=엠넷 '고등래퍼4' 방송화면

#역대 시즌 중 시청률은 최저, BUT

다만 이번 시즌은 유독 성적이 아쉽다. 발표된 음원은 실시간차트에서 종적을 감췄고, 시청률도 0%대에 머물고 있다. 시즌제를 거듭하며 당면한 소재의 진부함은 '고등래퍼'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변화를 꾀하려 해도 출연진이 십대인 만큼 Mnet의 특기인 자극적인 장면 연출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아예 작정하고 착한 길을 택했지만, 자극적인 서바이벌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는 모양새다. 그 공백을 채우려면 확실한 개성파가 있어야하지만 시즌1의 오션검(최하민)이나 시즌2의 HAON(김하온), 시즌3의 이영지 소코도모(양승호) 같은 독보적인 캐릭터가 부재하는 것도 아쉽다. 모두가 착해진 만큼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고, 실력은 있으나 뚜렷한 음악관을 가진 친구들도 없다. 풍요 속 빈곤 상태다.

하지만 다른 시즌과 달리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바로 출연진의 화합과 단합이다. 실수한 친구에게 "다시해!"라며 격려의 환호를 쏟고, 유아독존이던 김우림 군이 "팀워크가 최고"라고 말하며 내적 성장을 그렸던 모습들 말이다. 이번 시즌은 화합에 포커스를 맞춰야 비로소 재미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1~2회만 보고는 크게 재미를 느끼기가 어렵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그리는 우정의 진화는 나름의 재미가 확실하다. 남은 회차에서 대폭적인 시청률 반등은 쉽지 않겠으나 10~20대 사이에서 높은 시청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만큼 젊은 청춘에게 주는 울림에 시선을 맞춰야 한다. 나의 꿈은 때론 너의 꿈이 되고, 청춘의 꿈의 목도하는 것만큼 가슴 설레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한수진 기자 han199131@iz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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