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드라마를 만들 때 잊지 말아야 할 5가지 원칙

'조선구마사' 폐지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2021.03.29
'조선구마사', 사진제공=SBS

논란의 드라마 SBS ‘조선구마사’(극본 박계옥, 연출 신경수)가 방송 2회 만에 폐지됐다. 초유의 사태다. 하지만 사안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폐지 외에는 답이 없었다는 반응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핵심은 역사왜곡이다. 여기에 중국식 소품과 음식 등의 소품이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최근 한복과 김치마저 자국의 문화라 우기는 중국의 ‘신 동북공정’으로 극도로 화가 난 대중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탓이다. 

‘조선구마사’로 촉발된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팩션 드라마'라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시대극인 ‘설강화’를 비롯해 중국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 더 나아가 사극과 시대극 전체를 검증의 대상으로 삼을 모양새다. 이같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

#함부로 시대를 특정 말라!

사극과 시대극의 묘미는 역사책으로 접하던 과거의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진다는 것이다. 해당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시청자나 관객들은 해당 작품을 통해 그 시대를 본다. 그러니 대중적 영향력이 높은 콘텐츠의 고증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자칫 잘못된 고증은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주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는 통상 ‘아주 먼 옛날∼’로 시작된다. 시대를 특정짓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다. 가상의 공간에서는 무엇이든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를 특정 짓는 순간 표현의 제약이 많아진다. ‘조선구마사’ 역시 ‘조선’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보다 많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려 했으나 오히려 독이 됐다. "조선의 역사를 왜곡할 거면 왜 굳이 ‘조선’을 제목에 넣었냐"는 일침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함부로 실존 인물을 쓰지 말라!

‘조선구마사’에는 충녕대군과 양녕대군 등 역사 속 실존인물이 등장한다. 충녕대군이 목조(이성계의 고조부)에 대해 "기생 때문에 삼척으로 야반도주하셨던 분이셨다. 그 피가 어디 가겠느냐"라고 말하는 대목은 조선 왕조를 비하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태종은 환영을 본 후 백성을 학살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충녕대군은 훗날 세종이 되는 성군이다. 그러니 역사학자 뿐만 아니라 대중 역시 ‘조선구마사’의 설정에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조선구마사’를 집필하는 박계옥 작가는 전작인 ‘철인왕후’에서 "조선왕조실록도 한낱 찌라시"라는 대사로 역사왜곡 논란을 겪었던 터라 시청자들이 느끼는 거부감은 더 컸다.

역대 한국 영화 중 최다 관객을 모은 ‘명량’은 개봉 직후 배설 장군의 후손들로부터 피소당한 바 있다.극중 배설 장군의 탈영과 참수과정이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였다. 당시 경주 배씨 비상대책위원회는 제작사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형사소송을 제기했다. 실존 인물을 그리는 것이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라는 의미다.

역사는 풀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역사서마다 평가가 다른 인물도 있다. 그래서 학계에서조차 이견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영화나 드라마 옮기는 과정에 특정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영화 ‘덕혜옹주’와 ‘청연’이 개봉됐을 때도 주인공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실존 인물을 다룰 때는 더욱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반대 의견이 제기됐을 때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사적 사료는 챙겨놔야 한다. 하지만 ‘조선구마사’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왜곡과 비하, 그 이상은 없었다. 

사진제공=tvN

#철저히 고증하고 주의하라

역사를 다루는 작품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과정은 ‘고증’이다. 2013년 한국과 중국어권에서 큰 인기를 모은 MBC ‘기황후’는 기황후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인물들을 실제와 다르게 그렸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실존 인물인 충혜왕의 해석에 대한 반대 의견이 거세지자 가상의 인물인 ‘왕유’로 대체했다. 당시 장영철 작가는 "역사 논란 부분에 대해서는 귀를 크게 열고 듣겠다"고 밝혔다.

2018년작인 tvN ‘미스터 션샤인’은 구동매라는 캐릭터가 도마에 올랐다. 그는 백정 출신으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데 겐요샤(흑룡회)소속의 한성지부장이 됐다는 게 초반 설정이었다. 그런데 겐요샤는 실제 존재했던 일본의 극우단체이며 심지어 명성황후를 시해했던(을미사변) 주범 단체이기도 하다. 이에 제작진은 사과의 뜻을 밝히며 ‘겐요샤’가 아닌 ‘무신회’라는 허구의 단체로 구동매의 소속을 변경했다. 이 모두, 역사를 다루는 과정에서 고증과 접근방식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시간과 돈을 들여라

사극과 시대극은 제작자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콘텐츠다.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공간을 창출해내는 것만으로 대중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극과 시대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고증을 위해서는 세트와 의상, 소품 등을 준비해야 하니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다. 사극 등이 현대극에 비해 제작비가 더 높은 이유다. 

아울러 사료를 체크하는 시간도 더 많이 써야 한다.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상정하더라도, 작품 속에 담기는 시대에 대한 기본적인 정서와 정보는 제공해야 한다. 또한 역사 전문가를 통해 완성된 대본을 감수하는 과정 또한 반드시 거칠 필요가 있다. 

콘텐츠에 투입된 시간과 돈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잘된 고증으로 손꼽히는 영화 ‘암살’을 연출하며 최동훈 감독은 국내 최대 규모 오픈세트를 제작하고 당시 경성과 상하이의 스타일을 섬세하게 재현해낸 의상을 만들었다. 여의도 면적의 약 3분의 2 크기의 상하이 처둔 세트장에서 명치정(명동) 거리와 미츠코시 백화점을 대규모로 재현해냈고, 당시 사용했던 옷감과 의상 제작 방식을 고스란히 활용해 의상 4500벌을 제작했다. 또한, 1930년대 실제 사용되었던 클래식카와 51정의 총기를 활용했다. 

결국 단순히 시청자의 관심을 모으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를 다뤘다가는 철퇴를 맞기 십상이다. 역사는 가벼이 다룰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라 

‘조선구마사’는 1회가 방송되지마자 충녕대군이 서역 무당 요한에게 접대하는 장면이 질타를 받았다. 해당 장면에는 중국 음식 월병과 피단, 중국식 만두 등이 등장한 것을 문제삼자 제작진은 "중국 국경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 서역의 구마 사제를 데려와야 했던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의주 근방(명나라 국경)’ 이라는 해당 장소를 설정하였고, 자막 처리했다"며 "명나라 국경에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중국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력을 가미하여 소품을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이때만 해도 제작진은 사태의 심각성은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역사왜곡 논란에 대해 백배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순서였으나 변명하기 바빴다. 이는 성난 민심에 더 기름을 부었다.

과거 ‘대중’(大衆)은 우매한 무리라는 의미를 포함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SNS가 보급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대중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는다. 그 대중 안에는 역사학자도 있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도 있고, 자녀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주고 싶은 부모도 있다. 그들은 절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묵과하지 않는다. 그러니 콘텐츠 제작자들은 더욱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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