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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은 참 힘이 세구나, ‘자산어보’

2021.03.24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자산어보’는 조선시대 정조 승하 후, 흑산도로 귀양을 간 정약전이 쓴 책이다. 누구나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외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정약용은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정약용의 형 정약전은 ‘자산어보’ 이런 식으로. 그때도 설핏 궁금했다. 동생은 사대부답게 나라의 관리가 국가를 경영하고 백성을 제대로 다스리기 위한 책들을 썼는데, 형은 왜 물고기와 갑각류, 조개류 등 해양 생물을 관찰한 책을 썼을까. 정약전은 요즘 말로 ‘물고기 덕후’였던 걸까?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용보다 덜 알려진 형 정약전(설경구)과 그의 저서에 짧게 기록된 어부 창대(변요한)를 주인공으로 한다. 창대는 흑산도에 살던 어부이니 알려진 기록이 없지만, 정약전의 생애는 기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정조 치하에서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은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정약용은 형보다 일찍 벼슬길에 나가 정3품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고, 정약전은 동생보다 늦게 출사했으나 정조가 “약전의 준걸한 풍채가 약용의 아름다운 자태보다 낫다”고 칭찬할 만큼 군주의 눈에 띄었다. 이들 형제가 박해 받을 것은 영화 초반 정조(정진영)의 입에서부터 암시된다. 약전 형제가 서학(천주교)를 가까이하는 것을 알고 있다며, 벼슬한 선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버티는 것임을 일러주는 것이 정조이기 때문.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 1년(1801년)에 대규모 천주교 박해인 신유박해가 일어나며 정약전과 정약용(류승룡) 형제는 유배를 떠난다. 임금의 총애를 받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약전은 망망대해를 건너 흑산도에, 약용은 머나먼 남녘 땅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된 거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정쟁으로 귀양 떠나는 일이 잦았다지만 절해고도에서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낸는 건 심지 굳건한 이들도 쉽지 않은 일. ‘자산어보’에서 그려내는 정약전의 태도는 사뭇 남다르다. 생전 처음 섬에 살게 된 그는 실의는 접어두고 뭍에서 먹어보지 못한 홍어회의 맛에 감탄하고, 말미잘(홍미잘)의 습성과 맛을 궁금해한다. 성호 이익의 학설을 배운 실학자답게 그는 섬에서 접하는 물고기 및 해양 생물에 대한 책을 쓰기로 한다. 현실과 괴리된 학문이 아닌, 자명하고 명징한 사물 공부로 눈을 돌린 것이다.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학문이 뛰어나고 호기심과 관찰력이 왕성한 정약전이라지만 생전 처음 보는 물고기와 해양 생물들을 혼자 탐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흑산도의 젊은 어부 창대는 그래서 정약전에게 소중하다. 뭍에 사는 양반 아버지를 둔 서자 출신 창대는 어릴 적부터 글을 읽고 배움의 열망이 크지만 섬의 특성상 책을 쉬이 구할 수 없고, 깨우침을 줄 스승이 없어 지식이 짧다. 하지만 영민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덕에 창대는 동해에서 잡히는 청어와 서해에서 잡히는 청어의 차이를 명확히 알고, 홍어와 가오리의 특징도 확연히 구분한다. 그도 당연한 게, “물고기를 알아야 물고기를 잡기” 때문이다. 창대의 생각은 약전에게 뜬구름 잡는 학문보다 현실적이고 유익하게 다가온다. 아버지의 눈에 들고, 사람 노릇 하며 살고 싶은 창대는 사학죄인인 약전을 멀리 하려 들지만 “내가 아는 지식과 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는 거래 제안은 매혹적이다. 신분도, 나이도, 가치관도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스승이 되고 벗이 되는 시작이었다.

도통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지식과 우정을 나눈다는 면에서 ‘자산어보’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섬의 임시 우체부 마리오의 교감을 다룬 영화 ‘일 포스티노’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자산어보’의 정약전과 창대는 다소 일방적인 네루다와 마리오보다 한결 짙게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관계다.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자 제자이며, 애초부터 성리학이 바로 서야 조선이 바로 선다는 생각을 지닌 창대는 훗날 ‘자산어보’보다 약용의 ‘목민심서의 길’을 따르겠다며 떠날 만큼 주체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이준익 감독은 해양 생물을 다룬 ‘자산어보’, 소나무 벌채 정책을 비판한 ‘송정사의’, 오키나와와 필리핀까지 표류했다 돌아온 어부 문순득의 이야기를 기록한 ‘표해시말’ 등 동생 약용과 사뭇 다른 결의 책을 집필한 정약전을 ‘동생보다 한층 위험한’ 사상을 지닌 인물로 해석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다”라는 약전의 말은 얼마나 현대적인가. 물고기에 집착한 약전의 유배 생활이 단박에 설명이 되는 그럴 듯한 해석이다. 그의 물고기 집착은 단순히 ‘물고기 덕후’여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사람들이 잡고 먹는,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엇보다 중한 약전의 사상이 ‘자산어보’로 표현된다. 여기에 “임금 품에 들어야 백성을 위할 수 있으니 출세하겠다는 창대를 붙이며 영화는 중반 이후 두드러진 대조를 보인다.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미 이준익 감독은 ‘동주’의 윤동주와 송몽규, ‘박열’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등 상호보완하면서도 극명히 대조되는 듀오를 그려내는 데 일가견을 발휘한 바 있다. 시대극 안에서 사람에 집중하는 것 또한 그의 특기. ‘자산어보’는 정약전과 창대 듀오를 내세워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인 영화다. ‘목민심서’와 성리학을 따라 위에서부터 기본을 좇아 변화해야 한다는 창대와 성리학이든 서학이든 뭐든 사람(백성)의 삶에 들어가 실질적인 것부터 알아야 한다는 약전의 가치관은 누가 옳고 그르냐를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지금 이 시대에 창대(정약용)와 정약전 중 누구의 가치를 따르냐는 비교적 명약관화해 보인다.

사극이 처음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설경구와 그에 밀리지 않는 변요한, 분량은 크지 않지만 그 틈새를 절묘히 파고드는 이정은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을 발한다. ‘동주’에 이어 두 번째 흑백영화인데, 그 어떤 컬러보다 깊은 농담(濃淡)을 담아낸 화면도 시선을 끈다. 이준익 감독 특유의 풍자와 해학도 여전하다. 담아내는 메시지는 여유 있으면서도 한결 진해졌고, 사람을 위로하는 따스함 또한 강해졌다. 그러니 3월 31일 개봉하는 ‘자산어보’를 굳이 극장까지 가서 볼 이유는 충분하다. 영화에서 약전은 “주자는 참 힘이 세구나”라고 탄식하지만, 지금 ‘자산어보’를 보는 관객들은 이렇게 내뱉지 않을까. 이준익 감독은 참 힘이 세구나.

정수진(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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