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데이트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난세에 화합의 비를 내려요

2021.03.08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디즈니가 코로나19로 신음하는 현재에 따스한 희망을 제시한다.

디즈니의 신작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어둠의 세력에 의해 분열된 쿠만드라 왕국을 구하기 위해 전사로 거듭난 ‘라야’가 전설의 마지막 드래곤 ‘시수’를 찾아 위대한 모험을 펼치는 판타지 액션 어드벤처. 세계 최고임을 자부하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또 다른 도전과 비전을 제시하는 디즈니가 다시 한번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섰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그간 디즈니가 꾸준히 추구해온 가치관의 집성체다. 반(反) 화이트 워싱의 선두주자답게 이번엔 디즈니 작품 최초로 주인공과 배경을 동남아시아로 선택했다. 또한 늘 여성 중심의 서사를 중시했던 만큼 
이번에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상을 구하는 ‘라야’를 통해 진취적인 여성상을 제시한다. ‘겨울왕국’의 엘사가 얼음 마법을 쓰는 마법사 캐릭터였다면, 라야는 검술과 체술로 무장한 전사 캐릭터로 스크린을 종횡무진한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 품은 메시지는 믿음과 화합이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등 차별과 혐오로 얼룩졌던 2020년의 미국을 생각하면 디즈니가 필연적으로 내세워야 했던, 현 사회에 가장 필요한 주제다. 더불어 코로나19에 신음하는 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기도 하다. 드룬에 의해 잠식된 쿠만드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코로나19로 인해 예전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와 닮아 있다. 살짝 닿기만 해도 사람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드룬과 무시무시한 전염력으로 무장한 코로나19는 말 그대로 팬데믹, 공포와 같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물을 두려워하는 드룬을 피해 강과 운하의 힘을 빌어 삶의 방식을 재편한다. 현실의 우리 역시 마스크와 거리두기 등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당장이 너무 힘들고 예전의 생활이 그립지만, 현재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며 언젠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기도하며 버티고 있다.

작품의 시작이야 팬데믹 이전이었지만, 현 시국의 중심에서 제작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게 있어 코로나19는 피할 수 없는 숙제였을 터. 돈 홀 감독은 “마치 영화 속 모습처럼 팬데믹 현실 세계에서 생존의 위협을 마주했고 그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불신이 커져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당장 백신이 개발되고 접종이 시작된 지금에도 백신의 물량 보급을 놓고 여러 나라들이 계산기를 두들기며 자국민의 이익을 먼저 헤아리고 있다. 서로의 잇속을 추구하다 수호석 드래곤잼을 파괴했던 쿠만드라의 다섯 부족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그렇기에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 말하는 믿음과 화합의 메시지는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동남아시아 문화를 구현하고자 했던 제작진의 섬세한 노력 또한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마주하는 디즈니의 자세가 고스란히 반영된 지점. 지난해 개봉하며 그릇된 오리엔탈리즘으로 여러 논란만 야기했던 실사판 ‘뮬란’과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았다. 제작진은 인류학자, 건축가, 댄서, 언어학자, 음악가들로 구성된 일명 ‘라야 동남아시아 스토리 트러스트’를 구축, 5개로 쪼개진 쿠만드라에 지금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특징을 하나씩 소분하여 담았다. 빨간 홍등이 어여쁜 국가는 베트남의 호이안을 연상시키며, 배를 타고 이동하는 수상마을은 캄보디아와 닮아있다. 웅대하고 장엄한 사원은 태국을, 아름다운 자연과 바위산은 라오스와 말레이시아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또한 배경 외의 다양한 설정과 소품에도 동남아시아의 향기를 더했다. 라야의 여행 동반자이자 친구이며, 이동수단인 ‘툭툭’은 태국의 교통수단 중 하나인 삼륜차의 이름. 쿠만드라를 하나로 만들어 주는 수프는 ‘똠양꿍’이다. 새우 경단부터 레몬그라스, 죽순까지 똠양꿍의 레시피를 하나하나 제대로 구현했다. 더불어 판타지 액션 어드벤처인만큼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액션에도 신경 썼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펜칵 실랏과 필리핀의 칼리 아르니스, 태국의 무에타이 등 현지 무술을 조합해 액션 시퀀스를 완성했다.

작품 서사의 한 축인 드래곤의 묘사도 같은 맥락이다. 예로부터 용과 드래곤은 같은 의미로 해석되지만 동양과 서양의 드래곤은 엄연히 다른 존재다. 서양의 드래곤이 입에서 브레스를 내뿜고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크리처이자 두려움의 상징이라면, 동양의 용은 인간사에 복을 내려주는 신격화 된 존재로 추앙받는다. 작품 속 드래곤은 뱀과 같은 형상과 함께 물과 비, 그리고 평화를 내리는 동양의 용을 그려냈다. 

작품이 내포한 메시지가 사뭇 의미 깊다 하여 영화적 재미를 놓칠 리 없는 디즈니다. 판타지 액션 어드벤처를 표방한 만큼 주인공과 빌런의 구도 속에 새로운 영웅과 동료들의 활약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액션과 스릴, 더불어 코미디까지 재미라면 놓치고 가는 구석이 없다. 특히 서사의 흐름에 군더더기가 없고, 전체적인 리듬이 실로 경쾌하다. 또한 애니메이션 특유의 캐릭터성도 잊지 않았다. 이번 작품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3명의 캐릭터가 있으니 (주인공 라야에겐 미안하지만) 공벌레와 퍼그를 합친 듯한 툭툭과 엉기사기단의 꼬마 리더 노아, 그리고 마치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 같은 매력의 드래곤 시수다. 셋 다 심쿵 저격의 귀여움과 매력으로 강력하게 무장했다. ‘겨울왕국’의 엘사가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 심쿵했던 부모들은 이번에도 강력한 적수를 만났다. 그것도 무려 세 명 혹은 세 마리다. 지갑 속 총알 충전의 때가 다시 돌아왔다.

권구현(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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