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영화 '미나리'의 힘은 어디서 나왔나?

2021.03.08

사진제공=판씨네마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극장가에 ‘미나리'(감독 정이삭)’ 훈풍이 살랑살랑 불고 있다.


3일 개봉한 영화‘미나리’는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20만명을 넘어섰다. 또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지금껏 총 78개 영화상 트로피를 차지했다. 지난해 미국영화연구소(AFI) ‘올해의 영화’ 10편에 꼽히기도 했다.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민 간 한인가족의 정착기를 그린 영화다. 한국계 미국인인 정이삭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배우 스티븐 연(제이콥역), 한예리(모니카역), 윤여정(할머니 순자)과 두 아역배우 앨런김(데이빗역)과 노엘 조(앤역),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서 자주 본 미국 배우 윌 패튼(폴 역)이 조연으로 출연한다. 출연자들도 아주 단촐하고 예산도 20억원 안팎이며, 이야기 또한 아주 소소하고 잔잔하고 담백하다.

 

영화가 막을 내리고 극장에서 일어설 때에도 “아 통쾌해 시원해"라는 말들은 나오지 않는다. 엔딩도 끝이 아닌 것 같은, 다음 장면 또 이어질 것 같은 중의적인 엔딩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큰 사건 하나 없이, 아주 작고 소소한 일상들로 채워져 있다. 마치 매일매일 기록해 놓은 일기장이나 수필집을 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묘한 매력이 있다. 젊은 시절 치열하게 사셨던 부모님, 할머니가 생각나며 뭉클한 감정이 일어난다.  

 

이 소소하고 단촐하고 작은 이야기가 지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은 오스카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대체 이 작은 영화의 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시작된 영화 미나리 열풍의 원인을 생각해보았다.


사진제공=판씨네마


첫째, 미국적인 배경에 녹아 든 대단히 한국적인 정서가 미나리를 특별하게 만든 점인 것 같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스케일이 크고 플롯 중심이다. 즉, 커다란 사건을 빵빵 터트리며 사건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가 많다. 감정이나 정서를 다룬 영화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미국영화들을 보면 볼거리는 많은 데 감정의 디테일들이 좀 떨어지거나 일부러 무시하고 건너뛴 영화들이 많다. 그래서 미국영화나 드라마들은 ‘쿨’하다. 감정을 진하게 보여주지 않고, 넘어가니까. 사건이 빨리 진행되니까 재미가 있고 시원, 통쾌하다. 


‘미나리’는 반대다. 그런데 미나리가 특별해 보이고 눈에 띄는 점은 얼핏 연출을 보면, 커다란 농장과 들판의 배경이 마치 서부영화를 연상시킨다. 총잡이가 나와서 땅땅 총을 쏘고 커다란 사건을 일으킬 것 같은 기대를 주는 배경이다. 그런데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나올 법 한데도, 일부러 감정에 집중한다. 영화 초반 제법 큰 사건인 토네이도가 가족을 위협하는 사건도, 집 내부의 가족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가족의 갈등을 보여주고, 다음 날 TV뉴스 화면으로 토네이도가 컨테이너집들을 다 날려버렸다는 걸 아주 잠깐 보여주는 것으로 끝. 물론 저예산인 관계로 블록버스터같은 장면을 찍거나 C.G를 쓰는 게 불가능 했겠지만, 그 덕에 인물의 감정의 촘촘한 디테일이 더 잘 살아나 다른 영화들과 차별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러면서 세계 최강국 미국의 근원이 '이민자의 나라'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이런 점이 미국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 아닌가 싶다. 황무지를 개간하며 자식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다는 꿈을 꾸는 제이콥-모니카 부부의 모습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에 이민 온 모든 인종, 민족들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든다. 지금의 안락한 삶은 처음에 이민 온 부모와 할머니 세대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사진제공=판씨네마

 

둘째, 일상적이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장면들. 아주 잔잔한 일상을 담고 있지만, 모든 장면들이 다 특별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클리셰는 단 한 장면도 없다. 할머니가 밤을 까서 입에 넣었다가, 손주에게 먹여주려고 하는 장면이라든가, 숲 속에서 커다란 뱀이 나왔는데도, 할머니가 손주를 안고 피신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게 더 위험하다"며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장면 등, 아주 일상적인 장면인데, 절대 식상하지 않고 특별하게 마무리를 한다. 그래서 매 장면 인물들이 모두 입체적으로 잘 살아있고, 감정의 진정성이 깊게 이어져간다. 

 

셋째, ‘미나리’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인들의 뿌리의식을 보여주는 영화다. 지금까지 본 미국영화에 할머니가 등장하면 늘 가족들을 즐겁게 하고 할머니를 통해 화합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는 씩씩하게 가족을 리드하고 즐겁게 해주는 미국할머니가 아니다. 결말부에는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순자가 한국에서 가져 간 미나리는 ‘뿌리’를 상징한다. 제이콥도 영화  내내 미국에 뿌리내리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어딘가에 정착하고 뿌리내리는 게 가장 중요한 건 한국인들의 정서다. 영화 내내 가족들은 뿌리내리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데, 주변 환경은 계속 방해한다. 바퀴 달린 컨테이너도 뿌리 내리지 못한 불안한 환경을 상징한다. 토네이도가 바퀴 달린 집을 흔들고, 농작물이 망해서 농장에 뿌리내리려는 제이콥의 꿈을 박살내고, 심지어 화재가 나서 모든 걸 태워버린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건 할머니가 한국에서 가지고 간 미나리. 미나리는 어느 곳에서도 잘 뿌리내리고 억세게 살아남는다.  


제목처럼 영화 '미나리'는 정말 강하게 미국에서 뿌리내렸고,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더 강력하게 살아남아 아카데미까지 뿌리내리길 기원해본다. 


고윤희(칼럼니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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