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파더'가 끝나도 요린이의 도전은 계속된다

2021.03.03

사진출처=방송캡처

언젠가 이런 광고 문구가 있었다. “운전은 한다, 차는 모른다.” 


이보다 와닿는 말이 또 있을까? 딱 내 경우다. 그런데 이 말은 여러 가지로 응용이 가능하다. “컴퓨터를 쓴다. 컴퓨터는 모른다.” “남자랑 산다. 남자는 모른다.” 등등. 그리고 요즘 나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음식은 먹는다. 요리는 모른다.”

 

슬프게도 나는 먹는 데 진심인 데 반해, 요리는 잘 못 한다. 무엇이든 한 가지를 오래,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된다는 격려성 문구는 적어도 내 요리에만큼은 통하지 않는다. 내가 한 음식이 너무 맛이 없어 남편에게 그만 먹자고 한 적도 있는 신혼 시절을 지나, 아이 셋을 키우며 끊임없이 요리하고 있지만, 늘어가는 것은 뱃살뿐 요리 실력은 거의 제자리다. 그나마 이제 못 먹을 정도까진 아닌 것이 다행이랄까.

 

미디어에 넘쳐나는 요리 콘텐츠 덕분에 엇비슷하게 흉내는 내지만, 대개 돌아오는 평은 ‘뭔가 살짝 부족한데~’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그래 이 맛이야’라든가, 초록보다 연한 색이름 등의 조미료나 설탕 쓰는 것을 마다해서일 수도 있다. 정확히는 선천적으로 미각이 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웬만한 음식은 다 맛있다. 그러니 신혼 때 얼마나 맛없는 음식을 했다는 말인가).


그래서 요리 프로그램도 열심히 본다. 그중 요즘 즐겨본 것은 ‘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였다. 솔직히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을 눈여겨보진 않았다. 그래도 요리 경력이 있지, 차마 스스로를 ‘요린이’로 격하시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다. 요리에 A부터 Z까지 있다면 요린이는 A부터 헤매는 사람이고, 나는 그래도 M 정도까진 다다랐지 않았을까 하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니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 참가자들이 그렇게 답답해 보일 수가 없었다. 처음엔 백파더가 참 성격도 좋구나 하며 채널을 돌리다 잠깐 멈춰 곁눈질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더니 제대로 ‘요리’라 부를 수 있는 데까지 다다랐다. 그러니 은근슬쩍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최근 결정적으로 내 요리 자존감이 곤두박질치는 일이 있었으니….


사진출처=방송캡처


얼마 전 정월 대보름에 엄마가 찰밥과 나물을 해주셨다. 늦게 퇴근해 집에 오자마자 찰밥과 나물을 먹으려는데, 가스레인지 위에 된장국이 보였다. 생각지도 않게 국까지 데워 제대로 한 끼를 먹기 시작했는데, 국이 너무 맛있었다. ‘뭘 넣고 끓인 거지? 국물에 떠다니는 초록 이파리는 시금치는 아닌 것 같은데…’ 그나마 할 줄 아는 음식이 몇 안 되는 나는, 시금칫국에 좀 자신이 있다. 그런 내가 보기에 국 속의 풀은 분명 시금치는 아니었다. 그래도 냉이와 달래는 아는데, 그건 아니고. 말로만 듣던 아욱인가…. 다음날 엄마에게 물으니, 웬걸. 시금치가 맞단다. 이럴 수가…. 또 시금치라니.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엄마가 해주는 밥만 먹던 나는 음식에 대해 그다지 관심도 없고 딱히 요리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어느날 회사에서의 회식. 사장님이 모처럼 비싼 한정식집에서 밥을 사주셨는데, 애피타이저로 샐러드가 나왔다. 싱싱한 초록색 채소는 과하지 않는 소스에 버무려져 상큼하니 매우 맛있었다. 평소와 달리 그날따라 무슨 용기가 났던지, 나는 음식을 서빙하는 분께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이 채소는 뭐에요?” 그런데 답은 바로 나오지 않고 잠깐 시간이 걸렸다. “?…시금치요!”

 

답도 의외였지만, 그 보다 잊히지 않는 것은 그분의 표정이었다. 그 표정에는, ‘너는 어찌 된 게 이 흔한 시금치도 모른단 말이냐?’라는 타박이 소스처럼 얹혀 있는 듯했다. 그렇다. 나는 그때까지 데치지 않은 시금치를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식재료가 아닌, 식물로서 이파리가 생생하게 펼쳐진 시금치를 그때 처음 맛본 것이다. 그날 이후 시금치는 내게로 와 꽃 아니, 유일하게 푸성귀 중에 기억하는 식재료가 되었다. 그런데, 다시 그 시금치를 몰라보다니!

 

요리는 사실 예술과 같다. 분명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존재한다고 믿어서다. 한번 먹어본 음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사람. 한 숟가락 먹어보고 어떤 양념이 빠졌는지 대번에 맞히는 사람.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는 그런 천재들이 있다. 그렇다고 나 같은 범인은 체념하고 요리를 천재들에게 맡겨야 할까?


사진출처=방송캡처

 

몇 년 전 한 후배가, 본인의 어머니는 더는 요리를 하지 않겠다 선언했다고 했다. 이미 성인이 된 자식들에게 끼니를 제 손으로 해결하라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매우 신선했다. 말하자면 가정 내 요리 파업…. 사람은 자신의 끼니를 스스로 해결할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 후배의 어머니는 그것을 자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섭식은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다. 내가 먹기 위해서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것, 그것을 분명 즐겁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달갑지 않은 노동일 수 있다. 재료 준비에서 마무리까지 요리는 고될 만큼 품이 많이 든다.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대가라기엔 수고로움이 너무 크다.

 

늘 남이 해주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어찌 보면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다. ‘백 파 더: 요리를 멈추지 마’에 참가한 요린이들은 그런 점에서 누구보다 용감하고 멋진 사람들이다. 서툴지만 제 손으로 자신이 먹을 음식을 요리하는 일에 도전했고, 성공의 맛을 봤으므로. 회가 거듭되며 요린이를 벗어난 그들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며. 인내심을 갖고 그들을 요리의 세계로 인도한 백파더 또한 존경받아 마땅하다.

 

비록 맛없는 음식만 만들더라도 우리는 요리를 계속해야 한다. 언젠가는 맛의 비법을 찾는 날이 올 거라 믿으며. 비록 ‘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는 종영했지만 우리는 결코 요리를 멈춰선 안 된다. 두 번 다시 시금치를 못 알아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도 요리를 멈추지 않을 테다.


이현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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