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ㅣ이 세상 모든 부모님, 할머니에게 보내는 헌사 ①

2021.02.22
사진제공=판씨네마

‘미나리’는 묘한 영화다. 미국 영화사가 제작하고 미국 국적의 감독이 연출한 미국영화지만 대사의 80%가량이 한국어다.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족이 주인공이기 때문. 한국어 대사는 골든글로브가 자국 영화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올리는 웃지 못할 촌극을 연출하는 원인이 됐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이민 가족을 다루는 미국적인 이야기인데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를 담았다. 외할머니, 화투, 한약, 미나리, 회초리 등 온갖 한국적인 요소들이 튀어나온다.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미나리’는 미국의 한인 이민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어리지만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일곱 살 된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을 둔 아빠 제이콥(스티브 연)과 엄마 모니카(한예리)는 캘리포니아에서 10년 가까이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다가 아칸소로 이사 온다. 신물 날 만큼 병아리 똥구멍을 봐온 제이콥에게 아칸소는 꿈을 이뤄낼 공간. 아칸소의 기름진 땅에 ‘빅 가든’을 만들고 그곳에 한국 채소를 길러, 점점 늘어나는 한인 이민자에게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한인 이민자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한인 이민자 수는 1976년에 연간 3만 명을 넘고 1987년에 3만5869명으로 정점을 찍었으며, 가장 많이 선택한 지역은 캘리포니아였다. ‘서로에게 구원이 되어주자’며 70년대 초에 결혼한 온 제이콥과 모니카도 이 즈음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왔을 것이다. 늘어나는 한인 이민자를 타깃으로 채소 장사를 하겠다는 것은 제법 가능성이 있어 뵌다. 

그러나 제이콥의 꿈이 모니카에겐 불안해 보인다. 모니카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안정이다. 심장 질환이 있는 아들 데이빗을 위해 병원이 가깝고, 바퀴 달린 트레일러처럼 토네이도에 무너질까 불안하지 않은 집이 있고, 아이들을 돌볼 베이비시터를 구하기 쉬운 도심이라는 안정. 집안의 주축인 부부의 가치관이 다르니 균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둘은 자주 싸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어서 해결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아직 어린 아이들은 엄마아빠의 싸움이 잦아지면 ‘Don’t Fight’라고 쓴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불안해할 뿐이다. 

사진제공=판씨네마

‘미나리’에서 균열을 메우기 위해 부부가 선택한 해결은 모니카의 엄마, 아이들의 외할머니인 순자(윤여정)다. 고춧가루와 멸치, 데이빗을 위한 쓰디쓴 한약과 미나리 씨앗 등을 바리바리 짊어진 할머니 순자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온다. 정작 이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해야 하는 손자 데이빗은 할머니가 마뜩찮다. 여느 미국 할머니처럼 쿠키를 구울 줄도 모르고, 예쁜 말 대신 걸쭉한 욕설을 늘어놓으며 화투를 가르치는, 어딘가 한국 냄새를 풍기는 모습이라니. 데이빗은 ‘산에서 나는 이슬’인 ‘마운틴듀’를 좋아하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오줌을 대령하는 고약한 장난도 서슴지 않아 아빠에게 회초리 맞을 상황을 맞기도 한다. 

‘미나리’가 그리는 가족의 모습은 매우 담백하고 현실적이다. 팔을 제대로 들어올리지 못할 만큼 채소 재배에 기를 쓰는 제이콥의 모습은 가족을 건사하고자 밤낮이고 애를 쓰던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고, 가족 건사라는 목표보다 어느덧 장사 성공이라는 목적이 더 중요한 것 같은 남편의 모습을 지적하는 모니카의 얼굴은 지쳐 있던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자국에서 밥벌이하며 사는 것도 힘든데, 낯선 이국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일은 오죽할까. ‘미나리’의 정서가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성을 얻는 것은 타지에서 뿌리를 내려본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툭 건드리기 때문이다. 순자가 싸온 고춧가루와 멸치를 보며 왈칵 눈물이 솟는 모니카처럼. 

사진제공=판씨네마

그리고 ‘미나리’의 순자는 곳곳에 ‘셰프의 킥(kick)’처럼 특별함을 부려 놓는다. 알고 나면 묘하게 빠져드는 화투의 재미를 알려주고, 물가에 심어만 주면 잡초처럼 막 자라서 누구든 뽑아 먹을 수 있는 미나리를 심고, 눈에 보이는 뱀이 숨어 있는 존재보다 덜 위험하다고 알려준다. 기를 쓰고 재배한 제이콥의 채소보다 힘들이지 않고 무심히 심은 순자의 미나리가 더 왕성하게 자라난 것만 봐도 순자의 삶의 구력이 보인다. 하긴 세상 모든 할머니들은 특별한 법. 말썽쟁이 손자에게 몸소 따스한 정을 알려줬던 2002년 영화 ‘집으로…’를 생각해 보라. 손자가 원하는 치킨 대신 백숙을 만들던 할머니의 정은 쿠키를 구울 줄은 모르지만 손자를 튼튼하게 해줄 한약을 챙겨오는 순자의 정과 맞닿아 있다. ‘세상 모든 외할머니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고 했던 ‘집으로…’의 엔딩 자막이 ‘미나리’의 엔딩 자막 ‘To All Our Grandmas’와 연결되듯이. 

아무데나 잘 자라는 왕성한 생명력의 미나리처럼 영화 ‘미나리’는 전 세계 68관왕(2월 20일 기준)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달성 중이다. 오스카 주요 부문 수상도 요원해 보이지 않는다. 여우조연상만 22관왕을 달성한 ‘순자’ 윤여정의 연기는 오히려 크게 놀랍지 않다. 우리는 평소 윤여정의 ‘원더풀’한 연기를 알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우리의 엄마 그 자체로 보이던 모니카를 연기한 한예리와 사랑스러운 데이빗의 앨런 김이 한층 더 놀랍다. 드라마틱한 서사도, 스펙터클한 연출도, 눈에 번쩍 띄는 톱스타 배우도 없지만 ‘미나리’가 돌풍을 일으킨 데는 미나리처럼 원더풀한 배우들이 큰 몫을 했다. 가족 해체 시대에 가족이 서로의 구원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만드는 ‘미나리’의 특별함. 3월 3일이면 맛볼 수 있다. 

정수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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