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ㅣ 소소해서 더 뭉클한 우리네 가족 이야기 ②

2021.02.22
사진제공=판씨네마

주관적인 입장에서 너무나 특별했던 경험도 타인의 이해가 결여될 땐 식상한 사건이 된다. 또한 추억 여행 중 감정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감성의 과잉이 표출되기도 한다. 이른바 한국 관객들을 웃고 울린다는 신파적 요소가 그렇다. 20년 전에 쓴 사춘기 시절 일기장을 함부로 펴보는 것이 아니듯, 자전적인 영화란 경계해야 할 지점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어려운 장르다.

영화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옛 경험을 담은 작품이다. 딸에게 자신의 출신과 미국에 왔을 당시 부모님과 어떤 생활을 했는지 말해주다 보니 지금의 ‘미나리’가 탄생하게 됐다. 말보다 영화를 만드는 게 더 쉬웠을, 천생 영화감독다운 방식이다. “아빠가 어렸을 땐 말이야”로 시작했다면 케케묵은 ‘라떼 스토리’가 됐을지 모르는 ‘미나리’는 스크린의 마법과 함께 감독의 딸은 물론 전 세계인의 마음속을 따뜻하게 만드는 가족 영화로 탄생했다.

무엇보다 ‘미나리’의 특별함은 담백함이다. 앞서 이야기한 자전적인 영화가 주의해야 할 점들을 꼬박 지켜냈다. 오히려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됐을 사건마저 담담하게 소화한다. 나이 먹고 돌아보니 엄청났던 일들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현명함이 생겼을 터. 어린 시절 데이비드에겐 하루하루 신기했을 경험들은 어른이 된 정이삭 감독의 시선으로 객관화된다. 하여 ‘미나리’ 속 이야기는 감독만의 추억이 아닌 모두의 이야기로 공감대를 키워 간다.

특히 가족을 바라보는 두 가지의 시선이 너무나 따뜻하다. 극중 관찰자는 분명 어린 데이비드이건만, 영화가 그려내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모습엔 나이를 먹어서야 이해됐을 어른들의 사정이 녹아있다. 뙤약볕에 말라가는 농작물처럼 바짝바짝 타들어갔을 아버지의 마음, 그런 남편부터 심장 약한 아들, 한국에서 오신 노모, 일찍 철이 들어 말수를 아끼는 딸까지 신경 써야 하는 어머니의 희생, 딸의 부름에 태평양을 건너 온 할머니까지, 이제는 그 모든 게 사랑이었음을 알고 있다고, 너무나도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마음을 가득 담았다. 

사진제공=판씨네마

대단한 게 없어 더욱 대단한 영화다. 보편적인 이야기가 공감을 얻었을 때 가지는 힘이 이만큼 위대하다. 가부장적이지만 결국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살았던 아버지, 자식의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어머니, 손자라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할머니의 이야기, 우리가 자라면서 겪어왔고, 지금도 보고 있을 가족들의 모습에 특별한 연출은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적당한 곳에 뿌려놔도 잘 자라나 군락을 이루는 미나리 아니던가. 그렇게 영화는 공감대라는 좋은 땅만 가지고도 관객들 가슴속에 싹을 틔워낸다.

사실 영화적으로 탄생하기까지 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작품이다. 알아서 크는 미나리의 원더풀은 숫자가 오고 가는 영화시장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이야기. 단적으로 한국에서도 소규모라 할 수 있는 2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심지어 글로벌 프로젝트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의 연출 아래 2개 국가의 배우들이 현장에서 뭉쳤다. 영어를 쓰는 감독이 한국어 대사로 시나리오를 썼으니, 그 문법이 매끄럽지 않았던 것이 당연지사. 연기적 디렉션이 힘들 아역 배우에 한국어 연기가 쉽지 않은 스티븐 연도 있었다. 허나 ‘미나리’가 올곧게 자라날 수 있었던 건 현장을 소통으로 이끌었던 정이삭 감독의 리더십, 그리고 한 마음 한뜻으로 연기해 낸 배우들의 헌신과 앙상블 덕분이다.

배우들의 중심엔 역시 윤여정이 서 있다. 이미 전 세계에서 무려 22개의 연기상 수상과 함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까지 노리고 있음을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윤여정의 연기는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그의 연기에 비해 사뭇 다르지 않다. 미국 내의 센세이션이 다소 의아할 상황. 물론 연기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이 어불성설인 대배우 윤여정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관객들이 평소 얼마나 커다란 복을 누리고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그간 온 세상이 찬사를 금치 않는 명품 연기를 당연한 듯 마주하고 있었다는 사실. ‘미나리’를 통해 그의 연기 여정이 더 큰 세상을 만났음이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결국 ‘미나리’는 미국 아카데미에서 만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니, 그러길 바라본다. 윤여정의 여우조연상은 물론 음악상 등 다양한 부문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다만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는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영예보다 인종차별 논란을 야기했던 ‘미나리’다.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미국 감독의 연출작이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이민자 가족을 그려내며 문화 충돌이 아닌 가족 이야기로 접근했던 ‘미나리’의 포용력을 생각한다면, 로컬 영화제의 편협한 제도가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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