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학폭 청산중 "난 네가 한짓을 기억해"

2021.02.17

진달래, 사진출처=스타뉴스DB

학폭(학교 폭력) 사태가 대한민국을 덮쳤다. 배구 국가대표까지 지낸 이다영·재영 쌍둥이 자매를 둘러싼 논란이 발단이었다. 이후 몇 해 전 불거졌던 ‘미 투’(Me Too) 사태 때와 같이 "나도 학폭을 당했다"며 몇몇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폭로가 꼬리를 물고 있다.

이다영·재영 선수를 향한 폭로가 이번 사태에 기름을 부었지만, 방송가는 그 전부터 이미 여러 차례 학폭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학폭은 학창시절 벌어졌던 과거의 사건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를 입증하기도, 또 반박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진실 여부를 떠나서 학폭의 가해자로 지목받는 순간 이미지 타격은 불가피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왜 학폭 사태가 연예계와 체육계에 더 집중되는 것일까? 그리고 과거에 비해 요즘 학폭 사태가 더 무겁게 다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명해지면 터진다?

사실 학폭은 최근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집단 생활을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도사리고 있는 암적인 존재였다. 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며 2000년대 들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사들의 체벌도 폭력으로 규정하고 학우 간 폭력은 더욱 엄하게 다스리는 문화가 형성됐다. 하지만 완전히 근절하지 못해 간간이 사회부 기사를 통해 학폭 문제를 접하곤 했다.

하지만 ‘미투’ 운동의 연장선상으로, 과거 자신이 입었던 부당하고 불법적인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면서 학폭 폭로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특히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처럼 언론을 통해 얼굴을 드러내고 대중적 인기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이들의 경우 학폭 폭로의 대상이 되기 쉽다. TV를 통해 그들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되면 이를 지켜보던 과거 피해자들에게 일종의 2차 가해가 되는 셈이다. 그들이 유명해지고 대외적 노출 빈도가 많아질수록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유명인의 경우, 학폭 폭로가 사실로 드러나면 가해자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도 비(非) 유명인에 비해 크다. 이재영·다영 자매는 국가대표 박탈에 이어 무기전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앞서 종합편성채널 TV조선 ‘미스트롯2’에서 빼어난 실력을 발휘하며 준결승까지 진출한 트로트 가수 진달래는 학폭 폭로 이후 자진 하차했다. 그는 1월말 자신의 SNS에 "어떠한 말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조심스럽게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가수 진달래이기 전에 저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기에 지난 시절 저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뼈져리게 후회하고 있고,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반성하며 살겠다"고 고개 숙였다. 트로트 가수로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시기,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오히려 나락으로 떨어진 셈이다.

이에 앞서 케이블채널 Mnet ‘고등래퍼’와 ‘쇼미더머니’에 참여했던 래퍼 양홍원 역시 학폭 가해자로 지목돼 방송가가 떠들썩했다. 2019년엔 밴드 잔나비가 스타덤에 오른 직후 멤버 유영현이 학폭 가해자로 지목받아 잘못을 인정하고 팀을 떠났다. 같은 해 Mnet ‘프로듀스X101’에 참가했던 연습생 윤서빈 역시 학폭 논란으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소속사였던 JYP엔터테인먼트에서도 퇴출됐다.

또한 그룹 블락비의 멤버 박경은 지난해 가요계 음원 사재기 문제가 한창일 때 몇몇 동료 가수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소신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직후 그가 학폭 가해자 임을 밝혀진 데 이어 지난해 9월에는 근거 없이 동료 가수들을 음원 사재기 대상자로 몬 것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소신’인 줄 알았던 그의 행동이 ‘경솔’이었던 셈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얼굴과 이름을 노출시키는 유명인의 경우 과거 자신의 행위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됐다"며 "그들이 유명해졌기 때문에 학폭 폭로가 나온 것이 아니라, 학폭의 가해자면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으려는 오만함을 보였다는 것이 그들이 질타를 받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학폭 논란에 휩싸였다가 강력 부인한 조병규(왼쪽)와 TOO 차웅기, 사진출처=스타뉴스DB

#MZ세대는 참지 않는다?

최근 학폭 폭로를 살펴보면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가해자와 피해자가 주로 20∼30대이며, SNS를 기반으로 폭로글을 올리는 것이 시발점이 된다. 그들은 소위 2000년 전후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 혹은 Z세대다. 그들은 스마트폰 세대이자 이를 기반으로 한 SNS 사용에 능숙하다. 저장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피해 사례의 증거를 보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과거 세대에 비해 크게 높아졌고, SNS를 활용해 자신의 의견을 공론화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러한 MZ세대는 그들이 당했던 부당함과 부도덕함을 참아 넘기지 않는다.

이는 세대의 변화이자 인식의 변화다. 과거 세대는 "참고 말자"는 경우가 많았고, 피해를 주장하더라도 이를 물질적으로 입증하지 못해 역풍을 맞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MZ세대는 과거 주고 받았던 문자 메시지나 사진을 비롯해 SNS 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해 가해자에게 과거 자신이 겪었던 피해와 부당함을 이야기하며 당당히 사과를 요구한다.

물론 MZ세대들의 학창 시절에도 학폭이 근절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는 매일 등교해서 마주치는 가해자들에 맞설 용기가 없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른 후 어른이 된 그들은 응어리처럼 남아 있는 학폭 피해를 언급하고 이에 대한 사과를 받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이는 학폭은 절대 이뤄져서는 안 되고, 학폭의 가해자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반드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학폭 폭로가 불거졌을 때, 예단은 삼가고 진위 여부를 따지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일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지난 16일에는 K-팝 그룹 TOO의 멤버 차웅기와 배우 조병규를 각각 학폭 가해자로 지목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에 차웅기의 소속사 스톤뮤직은 "학창시절 차웅기와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인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인을 괴롭히는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했다는 등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근거 없는 악의적 비방과 허위 사실 유포 등이 지속될 경우 저희는 단호한 방법까지도 강구할 생각"이라고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조병규 측도 뉴질랜드에서 그와 같은 고등학교 다녔다는 글쓴이가 학교 배지 등을 근거로 내세우며 "글을 쓰는 최종 목적은 학교 폭력 인정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 하나뿐"이라고 주장하자 17일 "무분별한 악성 댓글과 허위사실 유포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고자 경찰 수사를 정식 의뢰하였다"고 반박했다.

물론 양측의 반박 역시 100% 사실이라고 볼 순 없다. 만약 그들이 거짓으로 반박 자료를 낸 것이라면 피해자가 물적 증거를 제시하거나 또 다른 피해자가 등장할 수도 있다.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양측의 입장이 맞서는 상황 속에서 섣불리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실제로 걸그룹 에이프릴 멤버 나은과 모모랜드 멤버 주이가 학폭 가해자로 몰렸다가 억울함을 벗는 일도 있었다. 주이 측이 법적 대응에 나서자 루머 유포자가 뒤늦게 사과의 뜻을 밝혔고, 주이 측은 고소를 취하하고 선처하며 일단락됐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진실 여부를 떠나 학폭 가해자로 지목되는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될 수밖에 없다"며 "이 역시 무고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학폭 논란이 불거졌을 때 한 쪽의 이야기를 듣지 말고 진위를 가리는 과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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