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텅빈 극장을 가득 채운 원동력은?

호평속에 설 연휴 내내 흥행 1위 등극

2021.02.15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코로나19  여파로 텅빈 극장가에 유일하게 객석이 꽉 차는 영화가 있다. 놀랍게도 포스터만 봐서는 유치찬란할 것 같은 애니메이션 ‘소울’이다.


볼 만한 영화가 없어서 뭘 볼까 헤매다가 제목과 포스터는 그닥 땡기지 않는데, 만든 제작사가 ‘픽사’라는 이유로 ‘소울’예매 티켓을 끊었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은 ‘아이폰’만큼이나 늘 볼 만했으니까.


'소울'은 연휴내내 극장 박스오피스 1위였다. 아무리 내 취향이 아니어도 1위니까 아주 못 볼만한 영화는 아니겠지. 하는 맘으로 보러갔다. 그러나 웬걸. 영화가 막 끝나가는 지점. 클라이막스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몰래 훔치고 있었다.

 

주인공 조는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는 정말 못 나가는 재즈피아노 연주자다. 늘 낙방하고 떨어지고 공연의 기회를 잡지 못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못해 불행하다. 모두 포기하라고 하고, 심지어 조의 엄마는 음악을 하는 아들을 못마땅해하고 냉대하고 무시하지만, 조의 삶의 이유는, 재즈를 공연하기 위해 존재한다.


존재의 이유가 너무 명확하고 강렬해서 조는 자신이 아무리 안 풀리고 냉대를 당해도 불행하단 것조차 못 느낀다. 열정이 크다보니까 남의 무시도 귀에 안 들어오는 경지인 것. 그러던 중 우연히 최고의 밴드와 재즈클럽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기뻐 들떠서 정신줄을 놓고 까불며 길을 걷다가 맨홀에 빠져서 죽게 된다. 눈을 떠보니 그는 영혼 상태로 지구를 떠나 영혼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야기가 확 재밌어지는 건 이제부터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그 영혼의 세계는 지구와 우주의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 4차원 혹은 5차원 이상의 공간으로 ‘태어나기 전의 세상’이다. 많은 영혼들이 태어나기 위해 물방울 모양의 영혼상태로 굴러다니고 떠다닌다. 모두 근심 걱정도 없고 기억도 없이 그저 깔깔대고 행복한데, 유일하게 인간으로의 탄생을 거부하는 영혼‘22’를 만나, 짝꿍이 되어 조는 다시 지구로 내려가게 된다.

 

텅빈 극장가에서 사람들이 이 영화만 유독 좋아하는 이유를 바로 알았다. 소울은 1000만을 두 번이나 넘긴 '신과 함께'(감독 김용화) 시리즈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버전이라고 보면 좋을 듯 하다. 생과 사를 관장하는 다른 세계가 있고, 인간의 삶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되며, 좋은 마음씨를 가지고 바르게 살면 복을 받고 축복받는 생이 주어진다는 내러티브가 두 작품 모두 같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현재의 삶은 참 버티기 힘든 난국이다. 힘들 때 늘 생각하는 게, 이번 생은 좀 포기하고 다음 생에 한번 더 제대로 잘 살아보고 싶단 생각을 참 많이 하는 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생을 살아갈 용기를 준다. 논리와 과학과 팩트를 중시하는 서양에서 사후세계를 그린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다. 


픽사에서 3년전 만든 영화 '코코'(감독 리 언크리치)도 사후세계를 그린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그 영화 역시 351만명의 관객이 들며 꽤나 흥행에 성공했다. '코코'도 '소울'과 마찬가지로 ‘픽사’가 만들고, 디즈니가 배급한 영화다. ‘픽사’가 추구하는 감성적인 면이 동양적인 감성과 잘 맞아떨어져서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픽사’를 만든 스티브잡스가 원불교에 심취해 있었는데, 혹시 그 영향도 있지 않을까?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신과 함께’와 비교해 보면 더 재밌는 점은, ‘신과 함께’에선 여러 명의 저승의 신들이 존재하고, 이 신들이 인간을 심판하고 다음 생을 관장하지만, 아무래도 서양이다보니 신보다는 공기덩어리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에너지의 집합체들이 영혼 세계를 관장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저승사자라든가, 영혼들을 관리하고 관장하는 신들이 ‘신과 함께’에서 등장하는 신들이 아니라 선으로 연결된 그래픽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신과 함께’의 신들과 하는 일은 똑같다. 단지 권위와 명령을 하지 않고 관공서 공무원같은 역할로 나온다는 점이 동양사상과 비추어 가장 신선하다. 신들이 인간 위에 있는 능력자가 아니라 평등한 계급으로 그려지는 걸 보니, 서양은 동양보단 평등의식이 강한 가보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도망친 주인공 조를 잡으러 다니는 그래픽 모양의 관리인이 제일 재밌다.

 

‘신과 함께’에선 무서운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신파를 통해 전달하지만, 소울은 권선징악을 이야기하진 않고, 다소 가볍고 부드럽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픽으로 된 여신(?)인지 에너지의 집합체인지, 아무튼 여자목소리의 영혼관리자가 주인공 조에게 말한다. 조가 지구에서 정말 한번 살아보고픈 영혼에게 자기 몸을 대신 내주는 희생을 해서 감동을 줬으니, 다시 한번 살아갈 기회를 주겠다고. 주인공 조는 딱 한번 인생에서 다른 이를 위해 희생을 한 거였다. 단 한번의 희생이었는데, 그보다 몇 배는 더 큰 선물을 받았다. 남을 위해 배려와 희생을 아끼지 말고 베풀며 살라는 메시지다.

 

그리고 다시 삶을 얻게 된 조는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삶의 기쁨을 느낀다. 꼭 목적이 없는 삶이라도 매일 하루하루 작은 일상에 기쁨을 느끼는 게 바로 살아가는 진짜 이유이자 행복이라고. 이 지점에서 눈물이 났다. 왜냐면 극장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사는 게 넘 힘들게 느껴져 삶에 대한 의욕이 바닥을 쳤거든.

 

삶이 버겁다고 느껴지는 사람들,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 영화를 꼭 보시길. 살아가는 이유는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그것만큼 크고 중요하고 대단한 건 없다는 걸 영화 '소울'이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줄 테니.


고윤희(칼럼니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목록

SPECIAL

image 미나리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