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호', '최초'가 주는 부담과 설렘의 경계에서

2021.02.09

사진제공=넷플렉스

난해 여름 개봉예정이었던 조성희 감독의 블록버스터 영화 '승리호'가 극장인 아닌 넷플릭스에서 드디어 공개했다. 공개되자마자 전세계 27개국에서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에 오르며 글로벌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승리호'의 영화적 배경은 2092년. 지구는 황폐해지고 사막화돼 사람이 살 수 없을 지경이다. 이에 부유층만 살 수 있는 UTS라는 거대한 인공 거주지가 우주에 만들어지게 된다. 태호 (송중기), 장선장 (김태리), 타이거 박 (진선규), 그리고 로봇 업동이 (목소리 유해진) 4명의 팀원은 승리호를 타고 우주를 누비며 우주쓰레기를 주워 돈을 버는 일을 한다. 그러던 중 버려진 우주선에서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 도로시를 발견하게 된다. UTS와 테러단체 등에서 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돈을 벌기 위해 딜을 시작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많은 기대 속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승리호'는 한국 최초 SF우주영화라는 타이틀만 빼면 상당히 재미있고 잘 만든 상업영화다. 최초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이 얼마나 큰가? 나는 성경책 맨 앞에 창세기에 나온 하나님이 최초로 세상을 만드실 때 첫째날엔 뭘 만들었고, 둘째날엔 뭘 만들었고, 하는 내용만 봐도 가슴이 뛴다. ‘처음’ ‘최초’란 단어는 늘 과한 기대와 불필요한 설렘을 만든다.


사진제공=넷플렉스


언론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SF우주영화라고 떠들썩하다. ‘첫 시도’라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기사들이 많다. 그러나 정정해야 한다. '승리호' 이전에 '지구를 지켜라'(감독 장준환. 2003년 개봉)가 있었다. '지구를 지켜라'를 만든 장준환 감독도 '승리호'를 만든 조성희 감독도 둘 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이다. 두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만든 단편들에서 이미 출중한 자기만의 색깔과 재능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구를 지켜라'나 '승리호'는 둘 다 SF영화이지만, 두 영화의 색깔과 스토리는 전혀 반대편에 서 있다. '승리호'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우주 영화의 기본틀을 따랐고, '지구를 지켜라'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아주 컬트적인 스토리를 감독 혼자 창조했다. 

 

그럼 왜 조성희 감독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공식을 따랐고, 장준환 감독은 어디에도 본 적 없는 희안한 스토리를 만들었을까? 그건 조성희 감독은 이미 흥행에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한 기성감독이고, '지구를 지켜라'는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이기 때문이다. 첫 작품을 만들 땐, 대중성이나 상업성이 뭔지를 누구나 다 모르기 때문에 자기 '필(FEEL)'대로 마구 찍는다. 그래서 첫 작품에 자기 색깔과 재능이 제일 많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두 번째 작품부턴 거대자본이 투입돼야 제작이 가능한 영화의 특성을 고려하게 된다. 망하면(흥행이 안 되면) 감독은 10년 이상을 백수로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장준환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 이후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소위 말해 ‘타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승리호'를 보면서 많은 부분들에서 이 ‘타협’에 대해 엄청나게 고민한 감독의 감정들이 느껴졌다. '승리호'는 200억이 넘게 들어 간 작품이니 만큼 그 200억 이상만큼의 고민을 한 것 같다. 아마도 감독은 원형탈모나 위장병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에 고민의 흔적들이 담겨있다. 


사진제공=넷플렉스


창작자가 고민을 하면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반드시 고민을 많이 하고 고통스러워한 부분에선 보는 사람도 멈칫하게 된다. 중후반 부분의 플롯이 좀 산만해지는데, 그 지점에서 감독이 많은 고민을 한 듯하다. 창작자가 신이 나서 씽씽 달리면, 보는 사람도 신이 나고 즐거워서 완전히 몰입해서 보게 된다. 예산을 비롯해 제작 환경 부분에 있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성희감독의 첫 단편영화 '남매의 집'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학생들이 만든 많은 단편들을 보았는데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첫 상업 영화 데뷔작인 '늑대소년'을 보아도, 그의 특출난 재능은, 아주 독특한 무대 설정안에 아주 희안하고 독특한 캐릭터들을 던져놓고, 환경(무대)과 캐릭터들을 충돌시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승리호'도 마찬가지다. 우주쓰레기가 가득찬 우주에 우주쓰레기청소부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던져놓고 충돌시킨다. 거대자본과 한국최초 SF우주영화라는 부담만 없었어도, 조성희 감독은 훨씬 더 자기만의 색깔이 나는 스토리를 만들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승리호'는 한국최초의 SF우주영화가 아니라, 한국 최초의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다.

 

몇 가지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호'는 놓치면 아까운 영화다. 온가족이 설 연휴에 함께 볼 만한 가족 영화로 강추한다. 우주선 내부의 디테일과 CG 등은 한국 영화 기술력의 현주소를 알게 해주며 뿌듯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 


고윤희(칼럼니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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