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들고 ‘동네 한 바퀴’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하는 위로와 힐링

2021.01.27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 사진제공=KBS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채널은 다양해졌다. 지상파 3사뿐이던 시절에서 케이블TV와 종합편성채널, IPTV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까지 발전했다. 이는 시청자에 무수한 채널 선택권을 선사했지만, 더불어 지상파 TV 침체에도 속도를 더했다.

 

넓어진 시장에서 시청자를 사로잡기 위한 자극이 난무하는 가운데, 올곧은 길을 가는 프로그램이 있다. 제철 재료로 만든 지역 음식 이야기를 담은 KBS1 ‘한국인의 밥상’, 골목 어귀의 추억을 배달하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이하 ‘동네 한 바퀴’)다.

 

‘한국인의 밥상’은 우리나라 곳곳의 대표 음식을 찾아보고 그 음식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 음식 문화 등을 다루는 푸드멘터리다. 트렌디하고 화려한 음식도, 잘 먹는 연예인의 먹방도, 여느 미식 프로그램처럼 음식 맛에 대한 커다란 리액션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제철 식재료를 요리하는 누군가의 비법이, 어려운 살림에 가족을 먹이고 자식을 키워낸 조상의 지혜가, 밥상 받을 사람을 향한 사랑과 정성이 녹아있다. 또 한국인이 사랑하는 맛과 정서도 스며있다. 마치 지역 음식 백과사전처럼 향토 음식에 얽힌 지리적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지역 음식을 지키고 이어가는 이들의 진심까지 눌러 담는다.


'한국인의 밥상', 사진제공=KBS

 

장수 드라마 ‘수사반장’ ‘전원일기’로 익숙한 배우 최불암은 2011년부터 지금까지 월요일마다 길을 나선다. 동도 트지 않은 새벽 5시, ‘한국인의 밥상’ 촬영을 위해 서둘러 차에 몸을 싣는다. 당일 퇴근이 가능한 가까운 거리는 물론, 교통수단을 바꿔가며 오랜 시간 이동해야 하는 1박 2일 촬영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에도, 한여름의 뜨거운 더위에도 부침이 없다.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사명감을 가슴에 새기기라도 한 듯 그렇게 10년을 근속했다.


익숙한 얼굴로, 인자한 미소로 전국 곳곳의 사람들과 만나 지역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그는 마치 구전 동화를 들려주듯 구수하고 맛깔나는 내레이션으로 ‘한국인의 밥상’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최불암은 “철마다 오만가지 표정을 하고 반기는 자연, 그 맛을 즐기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온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 인성과 예절 등을 가르치는 ‘밥상머리 교육’을 기본으로 여기고, 밥을 나눠 먹으며 쌓는 정을 으뜸으로 생각하는 우리. 서로의 끼니를 걱정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만남을 약속할 때조차 “밥 한번 먹자”라는 먹보의 민족에게 지리적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지역의 대표 음식은 ‘맛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이자 따스한 위로, 가슴 찡한 감동이다.

 

'동네 한바퀴' 김영철, 사진제공=KBS


‘한국인의 밥상’과 결을 같이 하는 ‘동네 한 바퀴’는 오랜 시간 살아서, 늘 지나던 곳이라 특별할 것 없이 여겨지던 도시의 가치를 재발견해 주는 도시 기행 다큐멘터리다. 관광명소, 포토 스폿 등의 정보를 전달하는 여타 여행 프로그램과 달리 한 도시의 주택가 골목길, 시장 등을 거닐며 그곳이 터전인 이들의 이야기를 동네 탐험가로 분한 배우 김영철의 1인칭 시점으로 듣는다.

 

2018년 방송을 시작해 어느덧 100회 방송을 넘긴 ‘동네 한 바퀴’. “사딸라”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등의 밈으로 젊은 세대에도 익숙한 김영철은 전국 각지의 동네 골목 구석구석을 하루 동안 돌아보며 마주하고 느낀 보석같은 이야기를 담는다. 그는 동네에서 스쳐 지날 법한 소소한 것들에 포커스를 맞춰 따뜻하게 온기를 입힌다. 그의 걸음마다 피어나는 지역 주민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 그 사이 묻어나는 지역민들의 삶은 시청자에 친숙함을 선사한다. 진솔하고 잔잔한 소통을 이끄는 김영철의 진행은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안긴다.

 

특히 시청률 경쟁이 치열한 주말 오후 시간에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은 스타 캐스팅 등 특별한 장치 하나 없이도 순항 중이다. 드라마 ‘태조 왕건’ ‘야인시대’ 등이 낯설지 않은 어른들에게는 과거를 추억하는 시간으로, 젊은 세대에게는 요즘 방송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신선함으로 이목을 끈다. 그 결과 방송 3사를 통틀어 16번째 연예 대상을 거머쥔 방송인 유재석의 ‘놀면 뭐하니’와 시청률 경합을 벌이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밥상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담는 ‘한국인의 밥상’과 ‘동네 한 바퀴’에는 정이 있고 낭만이 있다. 매회 한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에는 속도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팍팍한 삶에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다독인다. 이들에 담긴 푸근한 진심은 0.1%의 시청률 싸움이 계속되는 방송과 이에 지쳐가는 시청자에게 공영방송다운 힐링을 선사한다.

 

조이음(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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