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 ㅣ 김소연, 악역에 품격을 더한 연기고수 ②

2021.01.07
사진제공=SBS

김소연은 ‘편견’ 속에 살아오던 배우였다. 배우로서 일찍부터 이미지를 구축하는 일은 유명세를 타기엔 유리하지만 그만큼의 벽에 부딪치기도 한다. 불과 15세의 나이에 준비없이 덜컥 시작한 배우로서의 삶은 김소연 본연의 성격과 밖에서 보는 이미지 사이의 쉴 새 없는 충돌이었다. 김소연은 그 이미지에 따라가기도 하고 역행하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의 의지로 이를 바꿔가면서 30년에 가까운 커리어를 일궈왔다. 그의 나이 마흔 둘이 되는 올해, 그 충돌은 분수령을 맞았다.

김소연은 지난해 12월31일 열린 SBS ‘연기대상’에서 중장편드라마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함께 월화극 ‘펜트하우스’에 출연한 유진, 이지아와의 공동수상이었다. 물론 상은 시즌2를 앞두고 있는 드라마를 응원하는 차원에서의 배분일 수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연일 김소연의 연기력을 칭송하면서 그의 대상 수상가능성을 언급하는 반응도 많았다. 일단 드라마가 남아있는 상황이라 그의 수상 예상은 또 올해 말 가늠해볼 수 있을 듯하다.

‘펜트하우스’에서 김소연은 극중 소프라노로 청아재단의 이사장을 노리는 악녀 천서진을 연기하는 중이다. 매회, 매순간 배우들이 격정적인 감정을 뿜어내는 작품이지만 김소연의 입지는 두드러진다. 그 스스로가 질투와 욕망에 사로잡힌 캐릭터이기도 하거니와 심수련(이지아)이 설계해놓은 복수의 톱니바퀴에 휩쓸려 들어가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다 기사회생하기 때문이다. 상처뿐인 결혼생활, 파편화된 딸 하은별(최예빈)과의 관계 그리고 욕망의 분출구로 택한 주단태(엄기준)와의 불륜이 이용당하는 모습은 천서진 캐릭터가 가진 처연함을 배가했다. 또한 그가 부활하는 마지막은 시청자들을 시즌2로 인도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됐다.

악다구니 밖에 남지 않은 천서진 캐릭터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김소연의 ‘구력’이다. 과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던 탓에 비뚤어졌던 유년시절을 비롯해 욕망을 위해 폭주하는 지금이 자극적인 구성으로도 설득력을 얻는 것은 작은 부분 섬세하게 감정을 연기하는 그의 노력이 이유였다. 아버지 천명수(정성모) 사망사건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안색을 바꾸는 작은 연기, 그 이후 피가 묻은 손으로 피아노를 쳐내려가는 광기의 연기는 화면을 압도한다. 과거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 허영미 역으로 악녀 연기의 전형을 쌓았던 그의 경력은 이번 천서진 역으로 정점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SBS

우리가 생각하는 김소연의 이미지 역시 이와 비슷했다. 나이답지 않게 성숙했던 외모 그리고 배우로서의 초창기를 혼자서 꾸려야했던 탓에 방어적으로 변한 성격으로 오랜기간 김소연은 대중의 눈에 오래 들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배우였다. 심지어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는 각종 음해와 편견으로 배우활동이 위축되는 시기도 겪었다.

그가 조금씩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한 계기는 2009년 KBS2 드라마 ‘아이리스’가 시작이었다. 극중 북한의 특수요원 김선화를 연기한 그는 주인공 김현준(이병헌)을 밀어내지 못하고 바라보는 외사랑의 연기를 하면서 조금씩 캐릭터에 다층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배우가 됐다. 스스로도 지금까지의 폐쇄적인 활동을 벗어나 예능에서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후 작품은 ‘검사 프린세스’ ‘닥터 챔프’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 ‘순정에 반하다’ 등 그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이지적인 외모에 비해 굉장히 유순하고 때론 순진하기까지 한 모습을 가진 배우라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가화만사성’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등을 통해 가족극으로 조금씩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는 연기도 시도했다.

사진제공=SBS

‘이브의 모든 것’ 허영미나 ‘펜트하우스’ 천서진은 악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달라졌다. 허영미로서의 김소연은 ‘저 배우가 원래 저런 사람인가’하는 의심을 샀다면, 천서진으로서의 김소연은 ‘저렇게 순수한 사람이 광기의 연기를 하다니, 열정이 대단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어떤 평가가 있든 그 틈새를 메우는 것은 극과 배역에 정신없이 몰입하는 김소연의 변하지 않는 노력이었다.

김소연은 ‘펜트하우스’를 하면서 “오히려 오랜 시간 착한 역을 하니 악역을 다시 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 이미지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결혼생활을 통해 안정을 얻으면서 자신감은 배가됐다. 또한 적절한 시기에 만난 천서진을 통해 연기의 폭과 깊이는 더욱 늘어났다. 

배우는 마흔이 넘어도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김소연은 ‘펜트하우스’를 통해 그 사실을 증명하는 중이다. 그는 데뷔 초창기 어쩔 수 없이 편견에 둘러싸여 스스로를 가두며 살았다. 하지만 조금씩 천천히 용기를 얻고 그 벽을 넘어 더 넓은 연기의 세상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이 과정을 거친 그의 모습은 야누스를 보는 것처럼 배역에 따라 완벽히 달라진다. 

지금 김소연의 연기가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이런 과정을 거친 그의 여정에 온전히 설득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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