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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의 이불드레스가 신선한 감동을 주는 이유

2021.01.04

이효리, 사진출처=MBC 연예대상 방송 캡처

코로나19의 무서운 여파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춥고 조용한 연말연시였다.


이토록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지나, 텅텅 빈 식당가와 을씨년스러운 카페와 문 닫은 상점들로 가득한 연말연시의 거리를 걷노라니, 마치 정말 지구의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 살아 전 종로 보신각 종소리를 들어보지 못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새해맞이 뻔한 레퍼토리는 늘 이랬다. TV앞에 앉아 “10,9,8,7,6,5,4,3,2,1”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MC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오면 등을 곧추세우고 바짝 긴장을 한다. 사람이 죽을 때, 살아왔던 오랜 시간들이 짧은 필름으로 순식간에 스쳐지나간다고 하는데, 그것처럼 1년의 묵은 장면들이 그 카운트다운 안에 휘리릭- 스쳐지나간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드디어 “데에에엥~”하고 시작되는 보신각 종소리가 들려오면 ‘아~ 드디어 새해가 시작되었어. 올해부턴 정말 잘 살아야지’하고 새로이 정신을 가다듬고 새해에 이루어야 할 목표와 꿈을 새로 설계하기 시작한다. 아니 했다. 지금은 할 수 없으니 과거형이 되어 버렸다. 너무 당연한 것조차 당연하지 않게 되어버린 이 무서운 시국에 그나마 정말 따뜻한 웃음을 줬던 건, 이효리의 이불드레스였다.

 

이효리의 이불드레스는 사라진 보신각타종만큼이나 낯설고 비상식적이고 충격이었다. 사라진 보신각 타종이 슬픈 충격이었다면, 이효리의 이불드레스는 신선하고 유쾌한 충격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스타 이효리가 이불드레스라니.! 보는 순간 ‘푹’ 실소가 터져나왔다.


연말시상식의 꽃이라는 드레스를 저런 식으로 이불로 둘둘 감고 나온다니… 상상을 불허하는 이효리의 예능감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짝짝짝! 이효리는 역시 레전드다. 이효리가 다른 여자스타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그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예뻐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더 예뻐보인다는 점. 그 누가 대충한 화장에 이불을 몸에 둘둘 감고 나온다고 저리 귀엽고 예뻐보일까? 아니 어느 스타가 저런 발상을 할까?


'놀면 뭐하니' 싹스리 린다G, 사진제공=MBC


설사 그런 발상을 한다고, 실제로 진짜 드레스 대신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올 정도로 용기 있는 여자 스타가 과연 있을까? 저건 자존감일까? 자신감일까? 게다가 얼굴도 어젯밤 한잔 걸치고 부기가 아직 덜 빠진 듯, 살짝 부은 얼굴로 말이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 비와 함께 싹쓰리라는 댄스그룹을 결성해 린다G라는 부캐로 활동한 후 이어, 바로 엄정화, 화사, 제시와 함께 환불원정대라는 여성그룹을 결성해, 천옥이라는 부캐로 대박을 쳤던 이효리가 2020년 MBC연예대상 뮤직&토크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코로나 여파로 시상식에는 불참했는데, 집에서 이불드레스를 입고 수상소감을 찍은 동영상이 시상식장에 공개되면서, 2020년 쭉 이어오던 대박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린다G에서 천옥, 이불드레스까지 이효리 아니면 감히 누구도 보여줄 수 없는 매력과 끼의 정점이었다. 이효리는 사람의 시선을 끄는 본능적인 감이 누구보다도 발달한 연예인이다. 예쁘다고 인기가 많을까?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해줘야 인기를 끌고 스타가 된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며 행복감과 위로와 편안함과 친숙함과 매력을 동시에 느껴야 좋아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효리는 압도적이다.

 

보통 성공한 예술가들은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읽는 예술가들이라고 한다. 성공한 예술가와 불행한 예술가의 대표적 인물로 비교되곤 하는 인물이 피카소와 고흐인데, 피카소는 시대의 흐름을 아주 영민하게 읽어서 부와 명예를 살아생전에 듬뿍 누린 사람이고, 고흐는 반대로 시대의 흐름을 읽을 생각조차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 데에만 집착해서 자신의 귀도 자르고 살아생전 정말 가난하게 살고 인정도 못 받았다. 고흐는 죽고 나서 작품의 진가를 인정받고 최고의 예술가로 등극할 수 있었다. 피카소가 시대와 자신을 발맞추어가서 호강을 누린 팔자라면, 고흐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이다.


'놀면 뭐하니' 환불원정대 천옥, 사진제공=MBC


 

나는 이효리를 볼 때마다 피카소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쩜 저렇게 영민하고 센스있게 시대를 잘 읽어낼까? 지금 이 코로나 정국에 사람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건 돈과 건강이다. 이효리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시상식에 가지 않고, 자택에서 돈 한푼 들이지 않은 너무나도 검소한 이불드레스로 수상소감을 전하며 건강과 금전 이 두 가지의 공포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행복을 선사했다.

 

이효리가 나이가 들어도 젊은 아이돌들에게 절대 밀리지 않고 최고의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은 시대를 읽는 영민함 외에 또 한가지 있다. 카리스마. 이효리를 보면 카리스마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카리스마란 누가 날 함부로 보지 않고 건드리지 못하게 할 어떤 위엄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특히 그런 것 같다. 카리스마는 웃음의 반댓말. 친숙함의 반대편이라고 말이다. 요즘 TV뉴스를 보면 뇌가 너무 피로하다. 모든 정치인들이 인상만 쓰고 나오고 눈썹과 미간에 주름을 잡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표정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리고 미간을 모으며 따라하게 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내일 지구가 종말을 맞이해도 정말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고 싶다. 타인들이 어떻게 살건, 어떤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건, 나는 나. 나의 기준과 개성을 어떤 상황, 어떤 사람앞에서도 잃지 않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게 진정한 카리스마다.

 

모든 정치인들이 미간에 주름을 잡고 나올 때, 이효리 혼자 이불드레스를 입고 나와 다소 엉성한 화장과 부은 얼굴로 이 우울한 시국에 단 한번이라고 맘 놓고 웃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고윤희(칼럼니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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