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남주혁, 2020년 소리없이 성장한 공감형 청춘배우

좌충우돌하는 청춘의 표상으로 덕후 양산

2020.12.28
남주혁, 사진제공=매니지먼트숲

배우 남주혁에게 2020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듯하다. 

이 맛에 ‘덕질’을 하게 되는 걸까. 처음부터 연기력으로 대중을 압도하는 배우를 발견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지만, 한 배우의 연기적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것 또한 또 다른 종류의 쾌감을 선사한다. 올해도 수많은 배우가 제 기량을 뽐냈지만,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는 배우 남주혁의 활약을 되짚어볼 만하다. 20대 후반을 향해 가며 그는 조금씩 본인이 가진 배우로서의 가능성과 자질을 잔잔하되 확고하게, 대중에게 납득시키고 있다.   

남주혁의 출연작은 올해만 해도 세 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과 tvN 드라마 ‘스타트업’, 스크린 첫 주연작 ‘조제’까지 플랫폼도, 그 캐릭터도 변화무쌍한 형태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의 남주혁은 불편한 다리를 가진, 우스꽝스러운 갓을 쓴 한문 선생 홍인표로 그간 그에게 틀지어졌던 이미지를 과감히 벗는다. 촌스럽고 헐렁한 옷을 입고는, 기력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느긋하게 안은영에게 말을 건네는  얼굴은 새로웠다. 

'스타트업', 사진제공=tvN

‘스타트업’에서는 체크남방을 걸친 너드한 공대생 남도산 역을 맡았다. 그는 맑고 훈훈한 얼굴 이면의 열등감, 불안함과 같은 감정을 끄집어내며 청춘들을 공감하게 했고, 사회 초년생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으로 희망을 안기기도 했다. 최근 개봉한 ‘조제’는 초유의 팬데믹 상황에서도 흥행 가도를 이어가는 중. 그가 열연한 취준생 영석은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요즘 20대의 모습 그대로를 하고 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순수함을 지닌 채 ‘조제’의 쓸쓸한 풍경과 함께 영화에 잔잔하게 녹아들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홍인표와 남도산, 영석 모두가 지금의 20대 청춘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세 작품의 메시지 또한 동시대적인 것들. 남주혁은 그 안에서 제 나이 또래들이 하는 고민과 불안한 마음들을 담담한 연기로 펼쳐 보였다. 그 덕분에 대중은 각각의 개성을 지닌 작품들의 이야기 속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었다. 감정을 무한하게 폭발시키기보단, 남일 보듯 무덤덤하게 바라보게 되는 그의 담백한 연기들은 공감을 자아낸다. 캐릭터가 한 눈에 번뜩 빛나지 않아도, 남주혁 특유의 담담한 발성과 표정 연기는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그 흐름에 소리 없이 녹아든다. 이는 남주혁이 가진 분명한 배우적 재능이자, 장점이다.  

캐릭터를 과시하거나 역할의 비중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그 자연스러움에 한몫 한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개성 강한 안은영의 캐릭터를 뒷받침하며, 선배 정유미와의 케미스트리를 한층 더 잘 살렸고, ‘조제’에서 역시 우울함과 어두운 면을 지닌 조제 역의 한지민의 한 발짝 뒤에서 자신만의 레이스를 이어갔다. ‘스타트업’에서 배수지와 김선호 등 얽히고설킨 또래 배우들과의 연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배우로서의 ‘균형감’을 맞추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전면에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도, 연기를 기꺼이 즐기는 것 같다. 

'조제',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사실 남주혁은 데뷔 초반에는 크게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배우는 아니었다. 모델 출신이라는 점 때문인지, 처음부터 연기력으로 호평을 듣지는 못했다. 별다른 경력 없이 KBS2 ‘후아유-학교 2015’으로 단번에 주연을 꿰찼고, 팬덤을 대거 양산했으나 ‘루키’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비주얼이야 탁월했지만, 주연으로서 극을 인상적이게 이끌지는 못했던 것. 이 점을 스스로도 자각했는지, 이어 출연한 MBC ‘화려한 유혹’과 tvN ‘치즈인더트랩’ 등에서는 조연을 맡아 연기했고, 처음 도전한 판타지 사극인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에서도 13황자 왕욱을 맡아 조금씩 제 역량을 발휘했다. MBC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드디어 주연을 맡게 된 그는, 매력적인 수영천재 정준형으로 그간 쌓아온 경험치를 유감없이 펼쳤다. 그러나 하백이라는 난해하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판타지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tvN ‘하백의 신부’에서는 뼈아픈 혹평을 듣게 된다. 심지어는 ‘하백의 신부’에서의 그의 연기를 두고 조롱어린 댓글이나 밈이 넘쳐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남주혁은 JTBC ‘눈이 부시게’를 기점으로, 그 비판들을 딛고 일어선다. 김혜자, 한지민, 안내상 등 내로라하는 대선배들 틈에서 그는 제 몫을 충분히 해내며 호평을 듣는다. 말간 얼굴을 한 채,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깊이 있는 캐릭터인 이준하를, 남주혁이 그토록 잘 소화해낼 줄은 누가 알았을까. 그간의 시간 동안, 남주혁은 확실히 변화했다. 혹평을 딛고 스스로 고군분투한 흔적이 그의 연기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대중도 이 작품을 기점으로 배우 남주혁이라는 이름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보건교사 안은영', 사진제공=넷플릭스

‘눈이 부시게’ 이후 작품을 선택하는 것에서는 신중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과도한 의욕을 부리기보단, 오롯이 자신의 감정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인물들을 한지민, 정유미 등 훌륭한 선배 혹은 파트너와 함께 조화롭게 엮어낸다. 물론 그를 아직은 ‘명배우’ 혹은 날 선 연기를 펼치는 ‘스타 배우’라고 말하긴 이르지만, 점점 노력해나가는 성장의 흔적들은 대중에게 신뢰감을 선사한다. 그 점이 바로 지금의 배우 남주혁의 매력이다. 더욱 보고 싶고, 앞으로를 기대하게끔 만들어버리는 힘이다. 

남주혁은 최근 ‘조제’ 프로모션 인터뷰를 통해 “나의 20대, 치열하고 멋지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한다”라고 30대 배우를 향해 나아가는 개인적인 바람을 털어놓았다. 그가 보여준 그간의 성장사는 그의 말에 힘을 싣는다. 처음부터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모습보다는, 고생 속에서 다듬어가는 모습이 빛나는 배우. 지금처럼만 앞으로 나아간다면, 남주혁의 바람은 이루어질 것 같다. 그 노력이 켜켜이 쌓여, 30대에는 더 멋진 배우로 성장할 거라는 믿음이 든다. 

이여름(칼럼니스트)




목록

SPECIAL

image 미나리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