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 온' 임시완-신세경이 겨울 안방극장에 불러온 봄바람

'김은숙 키드' 박시현 작가의 차진 말맛에 설렘주의보 발령

2020.12.23
사진제공=JTBC

“더 설레면 실수할 것 같아서요.”

배우 신세경(오미주 역)의 입에서 이 같은 대사가 툭 튀어나왔을 때, TV 앞 시청자들은 그가 그곳에서 느끼고 있을 몹시도 몽글몽글한 감정을 함께 건네받았다. 감정이 비로소 옅어질 즈음 임시완(기선겸 역)은 돌연 “그 실수 내가 해도 돼요?”라고 이를 엇박자로 되받더니 입을 맞췄다. JTBC 새 수목드라마 ‘런 온’(극본 박시현, 연출 이재훈) 2회의 엔딩 장면이다.

단거리 육상 선수 기선겸, 영화 번역가 오미주. 작품 속 주인공의 직업 설정부터 독특하게 와닿았던 이 드라마는 넘치는 콘텐츠의 틈에서 피어났고 단 2회 만에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성공한 분위기다. 주요 인물들이 ‘돌+I’ 성향이 또렷하지만, 그들이 내뱉는 대사나 행동은 낯설지 않고 낯익다. 그리고 빠르게 빠져들게 한다.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소통이 어려운 시대,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사랑한다.’ 이는 제작진이 ‘런 온’을 소개한 문장이다. 이를 직접적으로 반영이라도 하듯 1~2회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모두 각양각색이다. “사람은 다 다르니깐요”라는 정지현(연제욱)의 말에 “다 같으면 편할 텐데, 귀찮네요”라고 반응하는 서단아(최수영)의 대사가 앞으로 펼쳐질 극의 전개를 예고한 셈이다.

사진제공=JTBC

영화를 좋아하는 여자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 불 꺼진 극장에 안심하는 여자와 불 꺼진 극장을 위험하다고 느끼는 남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대표하는 여자와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과 얽힌 수식어에 자신의 인생이 가려진 남자, 술에 강한 여자와 술이 약해 깔짝깔짝 마시는 남자. 도통 공통점이라고 찾기 어려운 두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이들에게 서로의 다름은 불편함이 아닌 호감과 호기심의 대상이다.

가짜 총을 실제 총으로 오인하는 해프닝이 두 차례나 등장하고, 직거래 사기를 치고 달아나는 범인을 화구통을 던져서 잡고 경찰서에 동행하기도 한다.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레드카펫, 보이는 라디오, 연예인과의 스캔들, 국가대표 간 구타, 취기로 벌어진 여러 해프닝, 우연과 우연이 거듭되는 일들이 얽히고설켜 스피디하게 펼쳐진다.

쓸데없이 멋을 낸 캐릭터가 아닌, 맛이 살짝 간 것 같은 인물이 나열되지만 전혀 밉지 않다. 아니, 오히려 어딘가 망가지고 결핍된 그들에게 격한 애정이 샘솟는다. 자칫 현실감이 결여될 수 있을 법한 캐릭터도 귀에 착 달라붙는 차진 대사와 결합하면서 그 힘을 얻는다. 앞서 온라인으로 진행됐던 ‘런 온’ 제작발표회에서 “말이 되게 맛있다는 걸 느꼈다”라는 임시완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절로 공감돼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시현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런 온’의 스토리는,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첫 작품에 확실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과거 김은숙 작가가 보여주던 '말의 맛'이 그의 보조작가 출신인 박 작가의 대본에서 더 트렌디하게 변형되고 진화해 제대로 자리 잡았다.

사진제공=JTBC

배우의 힘도 짙다. 무려 3년 만에 로맨스물에 출연한다는 임시완은 유독 무겁고 어두웠던 근래 출연작들을 단기간에 말끔히 씻어냈다. 또한 신세경은 언제나처럼 실제 해당 캐릭터와 완전히 하나가 됐다. 영어에 능숙한 모습이나, 자신의 일에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모습,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벌써부터 실제의 삶과도 맞닿아 자연스럽다. “운명을 믿니? 난 잘생기면 믿어”라는 대사가 내뿜는 능청스러움마저 사랑스럽다.

물론 이 맛깔나는 ‘런 온’이 꼭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그간 상대적으로 저조했던 JTBC 드라마의 시청률 늪을 벗어날 수 있을지, 초반에 보여준 속도감과 사이다 로맨스, 매력 넘쳤던 대사가 이후에도 꾸준하게 이어져 드라마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이뤄낼 수 있을지 관건이다. 더불어 임시완X신세경에 과하게 집중된 현재의 분위기와 스토리가 회를 거듭할수록 차츰 주변 배역들에게도 착실하게 번져 극을 더 풍성하게 확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물론 아마도 이미 많은 시청자가 ‘런 온’을 챙겨봐야 할 명단에 고이 넣어뒀겠지만.

박현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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