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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선, 장르도 성별도 가뿐히 뛰어넘는 연기왕후

'철인왕후'서 능청스러운 연기에 시청자 열광

2020.12.15
사진제공==tvN

"언제까지 종묘제례악을 추게 할 거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술자리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금세 그 멜로디를 떠올릴 법하다. 그런데 이 대사가 조선시대 철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울려 퍼진다. 현대에서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한 드라마가 가능하다. 

게다가 타임슬립 과정에서 성(性)도 바뀌었다. 청와대 주방에서 일하던 까칠한 남성 셰프 장봉환이 조선시대 중전 김소용의 몸으로 들어가며 발생하는 발칙한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배우 신혜선이 ‘화룡점정’을 찍으며 방송 시작과 동시에 주목받았다.

12일 첫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연출 윤성식, 극본 박계옥·최아일)는 전국 시청률 8%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tvN 토일드라마 첫 방 시청률 2위에 해당되는 기록이다. 13일 방송된 2회 시청률 역시 8.8%로 상승곡선을 그렸다. 이 기발하고 엉뚱한 상상이 ‘통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혜선이 있다.

그가 연기하는 김소용은 소화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쪽진머리에 기품이 깃든 중전 김소용에게 2020년을 사는 안하무인 셰프가 빙의된다. 게다가 남성이다. 모두가 사극 말투를 쓰는 복판에서 김소용 홀로 무엄하고 방자한 태도와 말투를 일삼는다. 언뜻 들으면 물과 기름 같다. 하지만 신혜선은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로 둘의 경계를 가볍게 끊어버린다.

사진제공=tvN

아직 ‘철인왕후’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1회에서 김소용의 몸에 갇힌 장봉환이 여성으로 몸이 바뀌며 자신의 ‘물건’이 없어진 것을 자각하는 장면을 볼 것을 권한다. 한참을 내달리던 김소용은 갑자기 아랫도리의 허전함을 느낀다. 여기서부터 신혜선의 기막힌 원맨쇼가 시작된다.

"어디 갔어 내 꺼? 내 꺼 어딨어?"라고 화들짝 놀란 김소용은 "내가 고자라니! 니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라고 외치며 "지금 내 눈에 띄었다간 그 놈도 고자로 만들어 버릴 줄 알아"라고 역정을 낸다. 이 때 세상을 잃은 듯 망연자실한 김소용을 연기하는 신혜선의 연기력은 단연 압권이다. 

그동안 드라마 속에서 남장여자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뻔한 클리셰 중 하나다. ‘남성인 척’ 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정말 남성 같아 보일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남성 말투를 흉내내면 된다. 

하지만 ‘철인왕후’ 속 김소용은 다르다. 여성의 몸 속에 남성이 들어갔다는 설정이다. 그러니 그의 언행은 정말 ‘남자같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자칫 조금이라도 어색하면 뚝 떨어지는 완성도에 여지없이 채널이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신혜선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그의 ‘몸 개그’ 역시 발군이다. 물에 빠진 후 장봉환과 김소용의 몸이 뒤바뀐 것에 착안해 그는 냅다 연못으로 몸을 던진다. 하지만 이미 물을 빼버려 바닥을 드러낸 연못 바닥에 널브러진 신혜선의 모습에서는 폭소가 터진다. 목욕을 할 때는 어떤가. 어느 동네 목욕탕의 냉탕에서 세상을 다 가진 듯 대(大)자로 누워있는 아저씨처럼 신혜선은 살신성신(?) 연기를 펼친다. 겉은 여성의 모습이지만 속은 남성인 터라, 궁궐 안 예쁜 규수들을 바라볼 때 짓는 게슴츠레한 눈과 실룩거리는 입술은 실제 속이 시커먼 남성들의 가볍디 가벼운 제스처를 보는 듯하다. 

사진제공=tvN

신혜선은 장혁, 조인성, 최강희, 김우빈, 이종석 등을 배출한 ‘학교’ 시리즈 출신이다. 하지만 대다수 배우들이 이 시리즈에서 주역으로 참여한 반면 ‘학교 2013’에 얼굴을 비친 신혜선은 단역에 가까웠다. 그런 그는 ‘연기’로 승부수를 띄웠다.

‘학교 2013’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이를 밑거름 삼아 이듬해부터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올렸다. ‘고교처세왕’(2014), ‘오 나의 귀신님’(2015), ‘그녀는 예뻤다’(2015) 등 그 해를 대표하는 작품 속에 신혜선의 모습을 아로새겼다. 굳이 주연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분량보다 중요한 것은 임팩트였다. 그런 그는 ‘비밀의 숲’(2017)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 젊은 검사 영은수 역을 맡아 기존 작품 속 캐릭터와는 또 다른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준비된 신혜선에게 ‘황금빛 내 인생’은 선물같은 작품이었다. 50부작, 6개월이 넘는 KBS 2TV 주말드라마는 웬만한 내공으로는 소화하기 어렵다. 회가 거듭될수록 젊은 남녀 주인공보다 그들의 부모로 출연한 내공 깊은 중견 배우들의 연기가 더 주목받는 이유다. 하지만 신혜선은 천호진, 김혜옥 등 내로라하는 선배 배우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황금빛 내 인생’의 제목처럼 그의 인생을 밝게 빛냈다.

신혜선의 연기는 스크린에서도 통했다. 드라마와 영화, 두 영역을 섭렵하는 여배우는 손에 꼽는다. 대중적 인지도와 함께 2시간 동안 관객의 시선을 거대한 스크린 안에 가둬둘 안정감 있는 연기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검사외전’에서 강동원과 ‘썸’을 타는 여직원으로 가볍게 눈도장을 찍은 그는 올해 영화 ‘결백’과 ‘도굴’, 두 편의 주연작을 내놓을 정도로 무르익었다.

사진제공=tvN

그리고 이제 ‘철인왕후’다. 이 드라마가 신혜선에 남다른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사극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코미디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둘 다 어려워, 배우들이 다소 꺼리는 장르다. 하지만 신혜선은 ‘철인왕후’에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소화해야 한다. 2회까지만 놓고 봤을 때는 합격선을 넘는 정도가 아니라, 장원급제 감이다. 캐릭터의 특성상 아직까지는 현대극 말투를 쓰고 있지만, 원래 중전 김소용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구사하는 사극톤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지난 9일 열린 ‘철인왕후’의 제작발표회에서 "사극은 처음인데 로망이 있었다"는 신혜선은 "역시나 어려웠다. 함께 촬영하는 가족들이 많이 도와주지만 어려운 점들이 많았다.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며 "그럼에도 선택한 건 안 하면 너무 후회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이걸 하고 있는 걸 보는 내 자신에게 속상해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연기를 향한 신혜선의 욕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모든 이들은 각자의 깜냥을 갖고 있다. 자신의 깜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덤벼드는 건 만용이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깜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재능의 낭비다. 다행히 신혜선은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철인왕후’에서 자신이 기잔 깜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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