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데이트

'조제’,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떠나간 빈 자리

2020.12.08
사진제공=워너브더러스코리아


본 원작 속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와 쓰네오(쓰마부키 사토시)의 첫만남은 강렬했다. 마치 베일에 싸인 듯 남루한 유모차의 차양막을 들춰냈을 때 눈앞을 번뜩이던 식칼은 그 어떤 예도보다도 날카로웠다. 다리를 쓰지 못함은 조제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싱크대에서 요리를 하다가도 “쿵” 소리와 함께 마루로 내려앉을 때면 쓰네오의 가슴에, 그리고 관객의 마음에 심쿵을 남겼다.

반면에 한국의 ‘조제’(한지민)의 첫 등장은 안쓰러웠다. 망가진 전동 휠체어에서 떨어져 나와 길 한구석에 쓰러져 있던 조제. 영석(남주혁)은 근처 슈퍼에서 리어카를 빌려 그를 태우고 집까지 데려다 준다. 조제는 다리를 쓰지 못함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그의 도움을 순히 받아들인다. 어여쁜 얼굴로 조곤조곤 반말로 다가오는 조제는 영석의 가슴에, 그리고 관객의 마음에 애련을 남긴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조제’(감독 김종관, 볼미디어(주))는 일본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리메이크란 무릇 잘 만든 영화, 수작이나 명작 반열의 영화를 바탕으로 한다. 하여 감독 입장에선 부담이 크다. 똑같이 만들자니 리메이크의 의미가 퇴색하고, 여러 수정을 가하자니 원작 훼손이 염려된다. 특히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처럼 마니아층이 확고한 작품일 경우 부담은 배가된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허나 메가폰을 잡은 김종관 감독은 과감한 선택을 했다. 간결한 문체와 아날로그 감성을 품은 영상미로 자신만의 색채를 확고히 구축한 김 감독이다. 특히 ‘폴라로이드 작동법’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 등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그려낸 바 있다. 충무로의 여성배우들이 한 번은 꼭 작업하고 싶은 감독, 그래서 ‘조제’와 김종관 감독의 만남은 기대를 모으는 조합이다.

많은 이가 사랑했던, 이누도 잇신 감독이 그려냈던 조제는 아픔은 있지만 그것에 함몰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오히려 쓰네오보다 더 큰 자아로 그를 품었다. 그러기에 쓰네오는 조제에게 빠져들었다. 조제를 만나 진짜 사랑을 알았고, 새로운 삶을 꿈꿨으며, 현실의 녹록지 않음에 슬퍼했다. 적어도 사랑 앞에서 두 사람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가 아니었다.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사랑했기에 커플의 담담한 이별에 뻐근해지는 가슴 한켠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김종관 감독의 ‘조제’는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원작의 마지막에 조제의 새로운 미래를 암시했던 전동 휠체어가 영화 시작과 함께 산산조각 부서져 있는 것이 괜한 연출이 아니다. 한없이 어둡고 무거운 성격으로 새로 태어난 조제는 결국 빛으로 다가온 영석의 세계에 자신을 기댄다. 서로 함께 밤을 보낸 후 “네가 떠나면 몸도 성치 않은 여성을 범했다 할 것”이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야한 하룻밤을 예고하던 원작의 조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사다.

물론 옛날의 조제와 지금의 조제가 같을 필요는 없다. 허나 장애에 대한 편견을 부쉈던 과거의 조제가 워낙 찬란하게 빛나기에, 현재의 조제에 드리운 그늘이 더욱 어두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원작의 조제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를 탐닉했다. “언젠가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우리는 또다시 고독해질 거야”라는 구절을 읊는 조제는 사랑의 덧없음을 명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조제는 이별에 대해서도 쿨했다. 뜨겁게 사랑했기에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여 다시 한번 요리를 마치고 “쿵”하고 떨어져 내리며 엔딩 크레디트를 고했다. 그저 담백한 이별이었다고, 결국 내가 도망친 거라는 쓰네오의 내레이션과 오열, 이는 프랑수와즈 사강, 다나베 세이코(원작 소설 작가)의 정서를 관통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해답이었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하지만 새로운 조제는 프랑수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구해달라고 영석에게 부탁한다. 프랑수와즈 사강과 조제라는 연결고리의 새로운 변주이자 또 다른 해답이다. 로제와의 사랑에 지친 폴 앞에 새로운 시몽이 빛이 됐듯, 차가운 삶을 살아온 조제에게 영석은 따뜻한 온기로 다가왔다.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되는 사랑을 말하지만 스승 슈만의 부인이자 14살 연상의 클라라를 사모해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와 조제가 했던 사랑의 끝은 분명 닮아 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을 남겼던 프랑수아즈 사강. 결국 ‘조제’는 리메이크라는 이름으로 원작을 파괴할 권리를 행사했다. 이미 원작과 지금에 17년이라는 세월의 괴리가 있고, 물리적 배경 역시 일본과 한국이라는 거리가 있다. 장애인에 대한 시선, 그리고 복지 문제 등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현실적으로 헤아려야 할 문화적 차이도 많았을 터다. 

하여 과거의 조제는 고이 서랍 안에 넣어두고 또 하나의 ‘조제’로만 마주하는 게 이 영화를 소구하는 현명한 방법일  듯싶다. 그런데 작품의 제목처럼, 새로운 ‘조제’에서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찾을 수 없다. 너무나도 영롱했던 두 사람의 로맨스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사랑 이야기가 됐다. 영상은 무척이나 어여쁘지만 서사의 흐름이 느릿하고 대사보다는 표정과 눈빛으로 서로의 사랑을 전달한다. 상투적인 멜로를 채움이 아닌 비움의 미학으로 표현했으니 답답함을 지울 수 없다.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빈자리가 너무나 큰, ‘조제’다.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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