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이 추운 대한민국에 불어넣은 온기

2020.12.03
사진제공=JTBC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런데 노래는 잘 못 부른다. 노래방에는 일 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하는 사람인데, 요즘은 부쩍 소리지르며 노래하고 춤추고 싶다. 코로나19로 갈 수 없으니 더 가고 싶다. 나는 열망 중이다. 노래방을, 아니 노래 부르는 것을. 

하물며 나같은 사람도 그런데, 노래를 업으로 짊어진 사람은 어떨까. 생뚱맞게도 월요일 밤 10시30분에 JTBC에서 방송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이 이런 의문을 부추겼다. 제목도 참 담백하다. 다시 노래한다고?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부제가 ‘무명가수전’임을 알게 되면 제대로란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다시 노래하고 싶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혹시 아직 못 본 분들을 위해 잠시 부연하자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무명 가수들은 사연도 다양하다. 노래가 너무 유명해 가수의 이름이 가려진 사람도 있고(“별 빛이 내린다~” 는 가사를 들으면 누구나 자연스레 뒤에 “샤라랄랄랄라~”를 붙일 것이다. 그런데 가수의 이름은?), 각종 오디션을 통해 유명해졌지만 이후 그 유명세를 이어가지 못한 사람도 있다(얼굴 보면 누구나 알 것 같은 K-팝스타 출연자). 그리고 아예 이름을 알리진 못했지만, 엄연히 가수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기대 만땅의 ‘펌라인’을 주목할 것). 이들은 모두 프로그램에서 이름을 지운 채 ‘00호’라는 번호로 불린다. ‘싱어게인’는 시청자를 울컥하게 만드는 지뢰가 여럿 숨겨져 있는데, 내가 가장 크게 느낀 지뢰는 바로 그 ‘무명’이다. 

사진제공=JTBC

무대에 올라 노래로 청중을 감동시키는 것이 업인 가수. 그들에게 대중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 또 있을까. 사람들에게 ‘호명’되고 싶은 무명들은 얼마나 오랜 세월 그 꿈을 삭이며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을까. 특히 한때 대중의 사랑을 받다 잊힌 가수는 더욱 힘들 것이다. 상실은 부재보다 고통이 크니까.  

재능은 영어로 ‘기프트(gift)’라고도 한다. 선물 같은 재능. 분명 재능은 선물이다. 하지만 그 재능을 만인에게 펼쳐 보이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길은 너무나도 험난하다. 그래서 재능은 신의 장난 같은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아예 갖지 않았으면 꿈꾸지 않아도 될 것을 소망하게 만드는. 우리나라엔 유난히 노래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공개 오디션을 해도 해도 숨어있던 보석은 늘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반짝이며 튀어나오지 않나. 한때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짜릿함을 맛봤던 가수들에게 찬란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고, 다시 오르지 못해 까마득히 높아 보이는 무대만큼 절망의 깊이는 깊었을 테다. 

이렇게 ‘줬다가 뺏은 것’ 같은 운명에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가수와, 이번 무대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호명되고 싶은 가수들. 누구 하나 뒤질 수 없는 간절함이 뒤섞여 있기에 태생적으로 ‘싱어게인’의 무대는 그 어떤 오디션보다 울림이 클 수밖에 없다. 노래를 부르고 난 후 울음을 터트리는 가수를 보며 심사위원이 눈물짓고 시청자도 울컥하게 만드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영웅의 탄생도 흥미롭지만, 영웅의 재기에는 감동이 더해지기에.

사진제공=JTBC

사실 ‘싱어게인’의 가장 큰 지뢰는 추억 자동 재생이다. 흘러간 노래에는 사람들을 그 당시로 순간이동 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신곡이 아닌 아는 노래, 한때 좋아했던 노래가 이어지니 누구나 빠져들 수밖에 없다. 중장년층에서 젊은 층까지 각자의 시계로 기억하다 보니 같은 노래를 두고 세대마다 다른 가수를 떠올리는 재미도 있다. 이를 테면 “한걸음 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라는 ‘인형의 꿈’을 나는 54호의 노래로 기억하지만, 나보다 젊은 세대는 2호 가수의 노래로 기억할 것이다. 

신은 누구에게나 ‘선물’을 주었을까? 파고 파도 도무지 재능 따위는 내 안에서 캐낼 수 없다고 절망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대학 은사님의 말씀이 떠오르곤 한다. “좋아하는 것이 이미 재능이다”라는. 그러나 사실 그 말은 위안삼기보다 부정하고 싶을 때가 더 많았다. 차라리 좋아하지 말껄. 애초에 좋아하지 않았다면 계속하고 싶지도, 잘하고 싶지도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무엇이든 좋아하는 편이 낫다고, 에둘러 혼자 수습해 본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품지 않으면 이렇게 차가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이며,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얻을 것인가. 이름이 불리건 불리지 못하건, ‘싱어게인’에 출연한 가수들이 가슴의 불씨를 꺼트리지 말기를 응원해 본다. 계속 불씨를 키워 많은 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도록. 어느 광고에서 그러지 않던가. “행복은 사람 수만큼 는다고.” 그렇다면 (이름을) 아는 가수가 많아지면 우리도 그만큼 행복해지는 것일 테니.

이현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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