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이 잊힐 만하면 재개봉되는 이유는?

2020.11.23

영화 '노트북' 스틸.

한 편의 영화나 소설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생물덩어리가 된다. 그것을 만든 창작자들의 혼, 즉 에너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도 보통 에너지가 아니다. 작품 하나를 탄생시키는 건, 아이 하나를 탄생시켜 세상에 내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모의 의사와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이 각자의 운명을 타고나듯, 작품도 얼추 눈,코,입 갖출 것을 갖춘 채 세상에 나오면, 각자의 운명대로 흘러간다. 세상에 빛도 못 보고 죽어가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며 인기 대스타가 되기도 한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 창작자들에게도 잘된 작품을 잘된 자식을 바라보듯 뿌듯하고, 중간에 실패하거나 중도하차해서 빛도 못 본 작품은 아픈 자식을 보는 것처럼 가엾고 아프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운명에 지난한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작품과 창작자도 서로의 운명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가수는 자신이 부르는 노래와 비슷한 인생을 살게 되고,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작품과 비슷한 인생을 살게 된다. 작품 하나를 소개하기 위해 정말 서두가 길었다. 그런 작품이다. 레트로가 유행이니 레트로 영화라고 불릴 만한 영화. 기억하실지....'노트북'(감독 닉 카사베츠)이란 영화는 2004년에 처음 개봉하고, 2016년에 재개봉하고, 올 2020년 11월에 또 재개봉을 했다.

 

잊힐 만하면 재개봉하고, 또 재개봉하는 품새가 꼭 영화속 주인공들의 사랑과 닮았다. 첫사랑이던 연인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또 다시 만나고, 결국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마지막 운명을 함께한다는 이야기다.

 

그냥 딱 봤을 땐 뻔하고 식상한 멜로영화 같았다. 하지만 처음 봤을 때 “와”했다가 볼수록 아닌 사람들이 있고, 처음엔 평범했는데 볼수록 매력이 돋아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영화 '노트북'은 후자 쪽이다. 이 영화와 비슷한 한국영화를 굳이 찾으라면'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 '노트북'이 첫사랑에 성공한 최초(?)영화라면,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은 실패하고 추억으로 남는다는 정석을 보여주는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노트북'은 니콜라스 스팍스가 쓴 소설이 원작이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17살 열혈청년 노아(라이언 고슬링)는 앨리(레이첼 맥아다슴)라는 부잣집 금수저 여자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가난하고 환경이 별로인 노아를 반대하는 앨리 부모 때문에 헤어진다. 앨리는 노아를 잊고, 노아는 앨리를 못 잊은 채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해서 살아간다. 그로부터 7년 후 24살, 앨리가 멋지고 돈 많은 약혼자와 결혼을 하기 직전에 둘은 다시 만나 다시 사랑의 불꽃을 활활 태운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평생을 함께한다. 이게 다다. 


영화 '노트북' 스틸.


그런데 왜 계속 재개봉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사람들이 계속 찾는 ‘볼매(볼수록 매력적인)’영화가 되었느냐고? '노트북'이 볼매영화가 된 건 바로 남자주인공 노아의 지고지순한 사랑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람둥이처럼 생기고 몹시 까불면서 영화의 첫 장면에 나타나 앨리를 꼬시던 노아는 놀랍게도, 첫눈에 반한 17살 이후로 늙어죽을 때까지 한 여자만 죽도록 사랑한다. 결혼을 하고 부부로 평생을 살았는데도, 여자가 할머니가 되어 치매에 걸렸는데도 끝까지 사랑해준다. 이런 남자가 세상에 있을까?

 

정말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을 둘러보면 찾기 힘들다. 나에게 홀딱 첫눈에 반해 고백을 했던 남자가 금세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건 본 적이 많은 데, 첫눈에 반해 아주 오래 날 기다리거나 바라보는 남자는 없었다. 물론 내가 영화 속 여주인공인 만큼 매력적이지 않고 성질이 더 지랄맞은 탓이리라. 분명 노아처럼 평생을 옆에서 사랑해주는 남자도 있을 것이다. 1만 명 중 한 명꼴이라는 태양인의 숫자보다 적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실제로 라이언고슬링과 레이첼 맥아담스는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자주 말다툼을 하고 상대역을 바꿔달라고 할 만큼 사이가 안 좋았다는 후문. 영화 촬영이 끝나고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또 지금은 헤어지고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고 한다. 그게 현실 사랑의 속성일진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영화의 실제 롤모델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 어떻게 하면 이토록 오랜 사랑을 이어갈 수가 있는지 한 수 배우고 싶다.

 

이 작품의 미덕은 사랑은 ‘팍!’ 하고 전기감전이 되어 시작되지만, 그 사랑을 이어주는 중간과 완성되는 끝은 결국, 같이 보낸 시간이라는 걸, 알려준다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팍!’ 하고 전기감전 됐을 때 그때의 충격이 너무 크고 좋기 때문에 그것만 유지하려고 하지만, 엄밀히 그건 사랑이 아니다. 첫눈에 반하는 건 그야말로 전기충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감히 사랑을 정의하자면,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것이다.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사랑이라고? 시시하지만, 세상의 모든 정답은 언제나 단순하고 시시한 데 있다. 그리고 단순한 게 제일 어렵다. 누군가와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게 시시해보일 수 있는 일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옆구리가 시리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는 이 초겨울의 문턱. 너무 외롭다고 누군가를 급하게 만나면, 백팔백중 오버하다가 이불킥 하기 쉬우니, 차분하게 홀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준수하며, 사랑에 관해 너무도 따뜻한 영화 '노트북'이나 관람하는 게 어떨지.


고윤희(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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