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 케이팝은 안드로이드의 꿈을 꾸는가?

2020.11.20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신인 여성 그룹 에스파가 베일을 벗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레드벨벳 이후 6년 만에 공개하는 여성 그룹으로 데뷔 전부터 화제를 모은 이들에 대한 관심은 최근 케이팝의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뮤직비디오 조회수와 음원 차트 성적에 그대로 드러났다. 에스파의 데뷔곡 'Black Mamba' 뮤직비디오는 지난 17일 공개 이후 24시간 만에 조회수 2140만 회를 달성하며 있지(ITZY)의 ‘달라달라’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역대 케이팝 데뷔곡 뮤직비디오 조회수 1위 기록을 훌쩍 뛰어넘었다. 해외 반응도 뜨거웠다. 애플뮤직 93개국과 아이튠즈 48개국을 포함한 전 세계 95개 국가 음원 차트 진입에 성공하며 향후 순조로운 글로벌 진출을 예약했다. 한국인인 카리나, 윈터, 일본인 지젤, 중국인 닝닝으로 구성된 다국적 그룹이라는 점도 활발한 해외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부분이다.

데뷔 싱글 ‘Black Mamba’가 보여주는 어둡고 파괴적인 이미지 덕분에 에스파가 SM에서 처음으로 SMP(‘SM MUSIC PERFORMANCE’의 약자로 SM엔터테인먼트 특유의 진지하고 복잡한 세계관과 음악, 퍼포먼스를 통칭하는 단어)로 데뷔한 여성 그룹이라는 이야기도 오간다. 그러나 음악적인 면에서 ‘Black Mamba’는 유영진의 가사를 제외하면 SM의 맥을 잇는다기보다는 블랙핑크, (여자)아이들 등 최근 국내외 케이팝신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대형 팬덤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강렬한 카리스마계 여성 그룹들의 음악들과 흡사한 점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곡이다. 

오히려 SM의 피할 수 없는 흔적은 에스파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관과 그룹 구성을 통해 드러난다. 에스파의 고유표기법인 ‘æ’는 '아바타(Avatar)’와 ‘익스피리언스(Experience)'의 앞글자인 a와 e가 서로 등을 맞댄 형상이다. 여기에 양면이라는 뜻의 '애스펙트(aspect)'를 더해 정식 멤버 4인이 아닌 각각의 아바타 4인이 더 존재하며, 이들은 각자의 세계를 오갈 수 있는 것은 물론 인공지능 브레인을 가지고 있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현실 세계의 멤버들과 영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즉, 멤버 이름 앞에 ‘'아이-‘(ae-)를 붙인 아바타들은 그저 멤버들의 거울이 아닌 새로운 자아들이다.

에스파의 멤버 윈터(오른쪽)와 아이-윈터.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이 21세기적이며 고전 SF적인 세계관이 SM스럽다는 것은 SM을 대표하는 얼굴인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분야가 바로 AI(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국내외에서 열린 각종 포럼을 통해 ‘AI와 한류의 미래’, ‘AI 네이티브 제너레이션’ 등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열정을 보인 그는 에스파 데뷔를 전면에서 지휘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언젠가 ‘집안에 똑같은 연예인과 똑같은 외모와 성격, 능력을 갖춘 AI 로봇이 돌아다니는 아바타 세상이 올 것’이라는 선언을 한 적도 있는 그에게 에스파는 어쩌면 그 원대한 꿈의 첫 발자국 같은 존재일 것이다. 여기에 영국 밴드 블러(BLUR)의 데이먼 알반과 만화가 제이미 휴렛이 만든 가공의 밴드 ‘고릴라즈’(Gorillaz), 일본의 캐릭터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初音ミク),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로 유명한 라이엇 게임즈가 탄생시킨 K/DA의 연이은 성공으로 인해 점차 낮아진 AI에 대한 대중들의 마음의 벽도 에스파 탄생의 촉매제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접촉이 금지된, 코로나 19가 촉발한 비대면 시대로의 급진적인 변화도 한몫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진 시대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는 전제하에, 에스파의 아바타 기획이 놓친 건 하나다. 바로 아바타의 본체가 존재하며 함께 활동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츠네 미쿠를 위시한 캐릭터 보컬이나 한국 최초의 사이버 가수인 아담이나 류시아의 경우, 남성과 여성으로 특정되는 외양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특별한 본체가 없는 디지털로 창조된 캐릭터들이다. K/DA는 이미 존재하는 게임 캐릭터에 데뷔한 아티스트를 추후 캐스팅한 경우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캐스팅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고릴라즈가 에스파와 그나마 비슷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고릴라즈의 경우 3D가 아닌 2D 일러스트로 멤버들을 묘사했고, 묘사 역시 실제 인간을 닮기보다는 그림을 담당한 아티스트의 개성이 드러나는 캐리커처나 캐릭터 이미지가 강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반면 에스파의 경우, 본체와 본체를 본뜬 3D 아바타 캐릭터가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함께 활동해야만 하는 그룹이다. 문제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제작자나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IT기술이 더없이 각광 받는 본격 비대면 시대, 본체와 캐릭터라는 서로 같지만 다른 두 개의 IP 콘텐츠로 증강현실(AR), 3D 기술 등 각종 신기술을 결합시켜 영상에서 공연까지 각종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음에 가슴이 벅차오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콘텐츠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리고 그 콘텐츠 산업을 이끌어가는 이들이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면 마냥 신날 일만은 아니다. 

'‘SYNK, WINTER’(싱크, 윈터) 티저 이미지,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실제로 에스파는 아바타가 공개된 시점부터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의 인체, 특히 본체인 멤버들에 가깝게 디자인했지만 신체 특정 부분을 관습적으로 축소하거나 부각한 캐릭터는 최근 게임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는 여성 게임 캐릭터 디자인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성을 드러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본체가 함께 데뷔해 활동한다는 점이다. 실제 여성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Deepfake,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실존하는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합성에 만든 영상 제작기술) 범죄 등 성적 대상화로 인한 사회문제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소위 말하는 ‘떡밥’을 하나 더 던져주는 요인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실제 멤버들과 연결된 아바타 멤버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되어도 처벌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딥페이크 성범죄 대상은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 음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정신적 피해나 모욕죄 등의 고소 외에 가해자가 실질적인 법적 처벌을 받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외에도 결국 ‘사람’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리스크를 ‘기술’로 대체하려는 기획의 몰인간성에 대한 논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향후 에스파와 아바타가 무사히 동반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명심해야 할 사항이 명확해졌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사적인 잡음이나 문제없이 무한대로 확장해 나가는 미래의 아이돌을 꿈꾼다면, 그 중심에 자리한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 보호가 그 어느 때 보다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아이돌 산업이 늘 그래왔듯, 제작자는 ‘기술’에 방점을 찍지만 향유자는 ‘인간’에 방점을 찍는다는 점도 잊어서는 곤란하다. 제작자가 생각하는 강점은 언제든지 향유자가 생각하는 약점이 될 수 있다. ‘완벽한 아이돌’을 외치는 업계 안팎의 온도가 참 다르다 느끼는 요즘이다. 케이팝은 완벽한 안드로이드의 꿈을 꾸는가? 적어도 제작자는 분명히 꿀 것이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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