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대위 석달 천하가 남긴 씁쓸한 뒷맛

신드롬 부추긴 레거시 미디어의 자성 필요해

2020.10.16
사진제공=이근 대위 개인채널 캡처

지난 석 달 간 대한민국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이름이 오르내린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예비역 대위 이근 씨다. ‘이근 대위’라는 호칭은 마치 하나의 명사처럼 입에서 입으로 구전됐다. 그는 이 기간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삽시간에 스타덤에 올랐다. 

시작은 유튜브였다. 5000만 뷰가 넘는 누적 조회수를 기록한 유튜브 콘텐츠 ‘가짜 사나이’에 출연해 교육대장을 맡은 그는  "인성 문제 있어?", "OOO은 개인주의야" 등 유행어를 남겼다. 그러자 지상파,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 등을 막론하고 그를 섭외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 유명 업체의 CF모델 자리까지 따냈다. 

하지만 ‘석 달 천하’였다. 채무 논란을 비롯해 여러 의혹에 휩싸였던 이 씨는 과거 성추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며 사면초가에 놓였다. 이 직후 그를 모델로 썼던 업체는 CF 영상을 비공개로 돌리고, 그를 출연시켰던 제작진은 부랴부랴 관련 영상을 삭제하는 등 뒷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 시점에서 묻고자 한다. 이대로 이 씨는 몰락할까? 그렇지 않다. TV에서만 자취를 감췄을 뿐, 그는 여전히 유튜브를 비롯한 SNS 상에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건 단순히 이 씨의 자존감이 강하기 때문은 아니다.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여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대중은 방송 및 유명인을 둘러싼 방송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레거시 미디어’의 무너진 자존심

이 씨는 단 기간에 기득권층이라 불리는 레거시 미디어를 섭렵했다. MBC ‘라디오스타’, SBS ‘집사부일체’, JTBC ‘장르만 코미디’ 등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의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이 씨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지상파·종편·케이블채널 등 레거시 미디어는 변화한 엔터테인먼트 환경에서 더 이상 주류가 아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를 기반으로 한 인플루언서로 트렌드의 중심이 옮겨가며, 레거시 미디어는 유행을 뒤좇는 위치에 놓였다. 유튜브에서 먼저 인지도를 쌓은 이들이 TV로 활동 무대를 넓히고, TV에서 인기를 얻은 전통적 의미의 ‘스타’들은 유튜브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변화다. 과거, 방송사는 스타 탄생의 산실이었다. TV에 얼굴을 비쳐야 유명인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었다. ‘TV 나왔다’는 것이 출세의 바로미터였다. 

하지만 이제 TV에 안 나와도 충분히 유명해질 수 있다. ‘손 안의 세상’이라 불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볼 수 있는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SNS에서 수많은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다. 여기서 인지도를 쌓으면 알아서 각 방송사들이 ‘모셔’ 간다. 출연료도 두둑하게 받을 수 있다. TV에 나가서 겪은 일들은 다시금 그들이 운영하는 개인 채널의 재료가 된다. 관계 역전의 현장인 셈이다. 

레거시 미디어가 더 비판 받는 이유는 그들이 ‘최소한의 역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송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각 방송사들은 많은 제약을 받는다. 방송 내용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지만, 출연자의 노출 적합도를 판단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각 방송사들은 이 씨와 같은 비(非) 연예인인 인플루언서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검증’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는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를 출연시킨 방송사들이 "우리도 피해자"라고 외칠 수도 있지만, 공기(公器)인 전파를 사용하는 입장에서 무조건 인기와 시청률을 좇기보다는 방송 출연에 적합한 인물인지 판단하는 그들의 책무를 저버린 것에 대한 반성이 앞서야 한다.

한 방송 관계자는 "아무런 비판적 자세나 확인 절차 없이 인플루언서들을 데려다 쓰는 방송사들을 보면 ‘어지간히 급하고 몰렸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대중은 항상 새로운 얼굴을 갈구하는데, 정작 방송사들이 스타를 키워 낼 자신도 없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의지도 없기 때문에 무리하게 인플루언서의 이미지를 가져다 쓰려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과연 이근 대위 신드롬은 이대로 묻힐까?

이 씨를 둘러싼 논란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직 잘잘못을 단정지을 수 없고 다퉈볼 여지가 있는 논란도 있지만, 그가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씨는 "어쩔 수 없이 법의 판단을 따라야 했지만 스스로의 양심에 비춰 더없이 억울한 심정이며 인정할 수 없고 아쉽고 끔찍하다"는 입장을 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 씨가 이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 또한 그의 자유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억울함을 없애기 위해 대한민국 법원은 3심제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 씨는 대법원까지 간 끝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의 주장에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이 "2차 가해"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일반적인 ‘연예인’의 범주에 포함된 사람이라면, 이런 전력으로 인해 활동이 전면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씨의 경우 이런 논란 및 TV 출연 배제에도 불구하고 향후 활동이 계속될 공산이 크다. 

물론 TV에서는 더 이상 그의 얼굴은 보기 힘들 것이다. 범죄 전력이 확인된 터라 더 이상 이 씨를 섭외하려는 TV 제작진은 없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이 씨는 이미 유튜브에 개인 채널을 갖고 있고 구독자 수만 75만 명에 육박한다. 그가 성추행으로 처벌받은 사실을 인정했지만 구독자 이탈은 크지 않았고, 그를 옹호하는 댓글도 적지 않다.

물론,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개인 방송을 통한 그들의 영리 행위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리고 대중에게 얼굴을 내비치는 방송 출연진 역시 반드시 의미나 공적 목적을 갖고 활동할 필요는 없다. 그들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고 "재미있다"고  찾는 이가 많다면, 그 자체로 존재 이유가 될 수 있다. 

유튜브 등을 기반으로 한 개인 방송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TV와는 다르다. 이 씨가 싫다면 구독을 취소하고 그가 출연하는 콘텐츠를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이 씨 역시 여전히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구독자들과 소통하며 영리 활동을 하는 것이라면, 뭐라 문제 삼기 어렵다.

하지만 이 씨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오로지 재미와 인기만을 좇다가 일순간 실망감을 느껴 씁쓸해진 대중이 적지 않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를 견제해야 할 레거시 미디어들이 이 씨 띄우기에 한껏 동참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방송 환경의 역학 관계가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최소한의 도덕성이나 도리가 ‘재미’보다 뒷전이 되는 상황은 못내 아쉽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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