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구미호뎐' 신선하지만 기시감이 드는 이유

2020.10.12

사진제공=tvN

10여년전 마블과 DC가 앞다투어 히어로물들을 내놓을 때, 한국영화는 리얼리즘을 영화의 가장 큰 미덕으로 여기던 때였다. 그러니까 10여년전 헐리웃이 판타지의 세계에 빠져있을 때, 한국영화의 풍조는 ‘리얼리즘’이었던 셈.

 

왜 한국엔 히어로가 없을까? 배트맨과 수퍼맨, 스파이더맨의 캐릭터 문구완구들이 아동들의 시장까지 점령한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히어로 캐릭터 만들기 연구에 착수했다. 힘 있는 제작자나 감독과 팀을 만들어 연구에 착수했으면 오늘 날 한국도 히어로 캐릭터물이 자리를 잡았을 텐데...하필 힘 없는 시나리오 작가가 혼자 연구한 게 문제였다.라고 아직도 착각하고 있다. 당시 여러 논문들을 뒤져보니 우리나라에도 히어로 캐릭터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구미호. 그런데 논문에 따르면 다른 나라 히어로들에게 없는 것이 구미호에게는 하나 있었는데 바로 ‘원한’이라는 것이다.


구미호는 조선시대 한국여인들의 ‘한(恨)이 담겨 있는 히어로 캐릭터’라는 것이다. 그 점이 재미있어서, 구미호를 변형시킨 여성히어로 시놉을 들고 영화사들을 만났는데, 모두 까였다. 첫째, 한국에선 절대 환타지가 성공할 수 없단 이유였고, 둘째 아무도 나에게 히어로물을 기대하지 않았다. 모두 입을 모아 근사한 ‘리얼리즘 멜로’시나리오를 써 달라고 의뢰했다. 멜로야 말로 판타지인데, 한국영화에 판타지가 먹히지 않는다니...그리고 멜로를 ‘리얼리즘’으로 써달라니. 사랑에 리얼리즘이 어딨니? 다 판타지지! 한국말로 번역하면 ‘착각’!


아무튼 전지현을 구미호로 내세운 여성 히어로 캐릭터로 할리우드의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을 이기고, 문구완구 시장에 구미호 피규어들을 쫙 깔아보겠다는 내 원대한 꿈은 그렇게 꺾였다. 생각해보니, 꿈은 너무 과했고, 시나리오는 너무 빈약했다.

 

그리고 10여년 후. 한국영화엔 여전히 히어로물이 없고, 드라마로만 간간히 시도되었다. 한국영화는 여전히 ‘남성액션물’아니면 ‘가족영화’가 대세를 이룬다. 류승룡 주연의 ‘염력’(감독 연상호)이 기대를 잔뜩 걸고 한국판 히어로물의 탄생을 알렸지만, 후줄근한 작업복을 입고 아무런 분장도 없이 하늘을 나는 류승룡의 아저씨캐릭터는 패션부터 압도적으로 시선을 끄는 마블의 각종 히어로 캐릭터들과 비교해 ‘쨉’도 안 되게 초라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라는 구미호(논문연구당시 발견한 정보)가 드라마로 다시 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남자 구미호’로 말이다.


사진제공=tvN


바로 tvN 수목드라마 '구미호뎐'(극본 한우리. 연출 강신효). 반갑다 구미호야. 자주 나와도 늘 반갑기만한 우리의 히어로 캐릭터 구미호. 이동욱이 주인동 구미호(이연역)고, 그의 이복동생 김범(이랑역)도 구미호다. 조보아(남지아역)는 구미호를 쫓는 방송국 프로듀서. 이 세 명이 주인공. 조보아가 도시괴담을 찍으러 카메라를 들고 찾아다니는 와중에 구미호인 이동욱과 김범과 엮이게 되는 내용.

 

구미호는 보통 여성이라 생각하는데, 남자라는 게 일단 신선하다. 1.2화까지 봤는데, 또 일단 재밌다. 2화에 등장한 인간의 꿈을 먹고 산다는 ‘불가살이’의 존재도 재밌고, 무녀나 서낭당에 묶여 사는 신등 무속신앙이 나오는 것도 재밌다. 스토리도 스펙타클하면서 흡인력 있다. 이동욱의 연기력도 짱이고, 그늘진 얼굴도 잘생겼다. 조보아의 연기도 무척이나 안정적이다. 특히 착하게 생긴 김범의 악역 연기는 이중적인 이미지의 악역연기로 유명한 에드워드 노튼을 연상시킬만큼 인상적이다.

 

근데 좀 헷갈린다. 이 드라마는 히어로물인가? 로맨스물인가? 포털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아보니 판타지액션로맨스물이라고 나온다. 히어로물이었으면 ‘판타지 액션 히어로’라고 떴을 텐데, 글자 끝에 ‘로맨스물’이라는 단어가 붙는 걸 보니. 이 드라마는 결국 로맨스물이라는 거지? 조금 아쉽.

 

이 드라마 다 좋은 데, 갠적으로 딱 두가지가 걸린다. 드라마 도깨비(극본 김은숙 연출 이응복)에서 이동욱이 저승사자역으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콕 박혔는데, '구미호뎐'에서도 구미호인데 저승사자 역까지 겸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동욱이 ‘내세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염라대왕의 누이인 탈의파(김정난)을 만날 때마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저승사자의 저택과 어쩐지 비슷하단 느낌이 드는 건 나뿐일까? 그 저택에서 탈의파(김정난)와 현의옹(안길강)이 이연(이동욱)과 주고받는 산뜻한 유머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 계속 드라마 도깨비의 주요무대로 등장하던 저승사자의 저택에서 주고받던 공유와 이동욱의 차진 대사들이 떠오른다.

 

또 하나. 구미호인 이연의 동기(욕망)가 여우는 평생 하나의 상대만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잃어버린 연인을 찾는다는 것. 로맨스물로 치자면, 감동적인 설정이지만, 히어로물로 보자면 야망이 너무 작다. 아니 적어도 한국의 하나뿐인 히어로 캐릭터 구미호인데, 지구는 못 구해도 한반도 정돈 너끈하게 구해줘야지!


심지어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도깨비(공유)도 도깨비 신부를 만나야 불멸의 삶을 끝낼 수 있으므로, ‘이기적인 선택’으로 도깨비 신부를 찾아나서는 거였다. 구미호가 남북을 통일시키거나 핵전쟁을 막거나, 코로나를 막기 위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싸우는 거면 정말 신났을 텐데....물론 이건 개인적인 취향. 사랑에 목숨 거는 구미호를 더 좋아하는 시청자들이 더 많을 것이니.


고윤희(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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