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엄정화가 걷는 꽃길은 절대 Don't touch!

2020.10.12

사진출처=방송캡처

#기억 하나


2014년 영화 '관능의 법칙' 개봉 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 그 당시 연예부기자였던 필자는 엄정화를 만났다. 사실 인터뷰라는 게 준비된 질문을 던지고, 어느 정도 정리된 대단을 듣는 자리라 재미는 기대하지 못한다. 그날의 분위기는 달랐다. 오래 알고 지낸 언니를 오랜만에 만난 느낌. 서른을 막 넘긴 나이였던 필자가 나이를 먹어가는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봤으니 궁금한 게 많았을 법도 했다. 인생 선배 입장에서 연애, 결혼, 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던 그는 우리가 나이가 다를 뿐이지 삶을 대하는 감정의 결은 비슷할 거라는 얘기를 해줬다.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갑자기 눈물을 보인 엄정화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기억 둘


2019년 CJ에서 개최한 음악시상식 MAMA. 엄정화는 이날 BTS에게 대상을 주는 시상자로 참석했다. 그 당시 필자는 시상자를 섭외하고 현장에서 의전하는 일을 담당했다. 짧은 인사 외엔 말 한마디 섞지 못했는데, 그가 풍기는 아우라 때문에 함께 있는 서있는 내내 정신이 혼미해 순간이 있었다. 이젠 수상자가 아닌 시상자로,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걸음해 준 선배의 모습이 그저 멋있어 보였다. 무대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멘트를 정리하고, 드레스 매무새를 체크하며 엄청난 높이의 하이힐 위에서 또각또각 걷던 그의 뒷모습. 그가 화면에 비춰졌을 때 백스테이지에서 지켜보던 모든 스텝이 동시에 뱉어낸 낮은 탄성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아주 개인적인 이 두 가지 기억은 지금 대중이 엄정화를 보고 느끼며 경험하는 것과 일맥상통할 거라 생각한다. 가요계의 유일무이한 섹시디바로 시대의 상징이 된 1990년대 시작부터, 가장 좋아하는 음역대라는 '파, 솔, 라'를 내지 못해 주저앉아 운 2020년 지금 순간까지. 가장 엄정화다운 모습으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 ‘최고’를 ‘갱신’해온 행보를 가능하게 했다.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는 이 사람. 엄정화는 볼 때마다 새롭고, 늘 상대를 감동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사진출처=방송캡처


요즘 세대도 다 아는 ‘탑골 콘텐츠’인 엄정화의 히트곡은 그를 ‘타고난 스타’로 각인시키지만 그는 ‘철저한 노력파’에 가까웠다. 1992년 여자 DJ역이라는 단역으로 '결혼이야기'에 출연했던 게 가수 행보보다 먼저 기록된 필모그래피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1993)로 유하 감독의 주연배우가 된 엄정화는 이후 가수 활동  못지않게 배우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 당시 유하 감독에게 “넌 오렌지족처럼 생겼는데 눈은 참 따뜻하다”라는 말을 들었다하니 엄정화는 늘 스스로에게 진심인 사람이었던 게 분명하다.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한계도 있었다. 1000만 영화 '해운대'나 최우수연기상을 가져다준 '댄싱퀸' 같은 히트작 뒤로는 나이, 세월의 흐름, 그런 것들에서 오는 쓸쓸함과 부담감이 따라왔다. 가수, 배우로 모든 영광을 누렸으니 실패와 좌절 또한 남들보다 배 이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과의 경쟁, 변화하는 트렌드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을 터다.


최근 1~3년 새, ‘엄정화는 요즘 뭐하지?’라는 궁금증이 들 만큼 활동이 뜸했다. 필자와 마찬가지 생각을 해본 팬들도 꽤 있을 테고,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불어닥친 ‘뉴트로 시대’는 엄정화에 대한 그리움을 짙게 했고, 과거 그의 출연작이 케이블채널에서 재조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과 더불어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분위기라 슬럼프 아닌 슬럼프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2020년 하반기 엄정화는 돌아왔다. 필자는 올해 그의 행보를 ‘Brand New 엄정화’라고 표현하고 싶다. 올여름 코믹액션영화 '오케이마담'으로 건재를 과시한 데 이어 현재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섹시디바의 계보를 잇는 후배 이효리, 제시, 화사와 프로젝트그룹 '환불원정대'를 결성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이 지난 10일 발표한 데뷔곡 'Dont't touch me'는 각종 음원 차트를 석권하며 뜨거운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중이 '오케이마담'과 '환불원정대'에서 엄정화에게 감동하는 이유는 요즘 중장년층에게 꼭 필요한 '내려놓음의 미학' 덕분이다. 자신이 쌓아놓은 공고한 성에서 안주하지 않고 틀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모습은 훈훈한 감동을 선사한다.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코믹 액션 영화 '오케이마담'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작품 속 모습과 전혀 다른 스펙트럼의 캐릭터를 소화했다. ‘엄정화가 이렇게 뻔뻔한 배우였어?’라는 관객의 호평과 함께 ‘엄정화는 정말 선한 사람이다’는 관계자들의 미담이 합쳐져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그렇게 다시 지펴진 기운이 ‘만옥 신드롬’으로 이어지고 있다.

 

'환불원정대'서 엄정화의 매력은 만개한다. 말 그대로 엄정화는 엄정화를 극복했다. ‘라떼는 말이야~’라고 자신의 과거 영광을 앞세우려는 꼰대 언니가 아니라 ‘응, 나는 이제 버겁기도하고, 잘 모르기도 해’라고 내려놓은 정화 언니의 진솔한 모습은 세대를 뛰어넘어 그에게 다시 빠져들게 만들었다. ‘찐캐’와 ‘부캐’ 분리에 실패한 이 언니는 심지어 귀엽다. “아, 나는 지금 이효리가 아니라 천옥인거지?”하고 자유자재로 두 가지 캐릭터를 오가는 이효리와 달리 엄정화는 “나는 몰라, 그냥 나인거 같아”라며 싱긋 웃는다.

 

2019년 한 시상식에서 BTS에게 대상을 줬던 엄정화는 지금 BTS의 를 밀어내고 음원차트 1위를 차지했다. 환불원정대의 맏언니 만옥으로 울고 웃고 주저앉고 깡충깡충 뛰며 온몸으로 전해준 희로애락에 대중은 뜨겁게 응답하고 있다. 비록 ‘엄정화’가 아닌 ‘만옥’이지만 우린 이 언니가 무슨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건, 모든 상황에 진심이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마냥 사랑스럽게 돌아온 정화 언니가 앞으로 꽃길만 걷길, 누구도 돈 터치(Don’t touch)다.


강민정(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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