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논란, 무엇이 문제였나

2020.10.08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블랙핑크의 첫 정규 앨범 'The Album'의 타이틀곡 ‘Lovesick Girls’는 무척 멋진 노래다. 80년대를 연상시키는 일렉트로 팝 사운드에 세련된 멜로디를 입히고, 그 위에 틴 팝과 청춘 영화를 얹은 노래는 듣는 순간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직관적인 매력의 댄스 팝이다. 

앨범의 완성도도 의미 있었다. 데뷔 후 꽉 채운 4년을 보내고, 케이팝 걸그룹 사상 빌보드 HOT100 최고 순위를 기록하고, 천 세계 57개국 아이튠즈 차트 1위에 오르고, 케이팝 최초로 10억뷰가 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면서도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정체된 YG 시그니처 사운드의 그림자가 드디어 흐릿해졌다. 블랙핑크의 첫 정규 앨범 'The Album'은 현재 팝 시장의 경향과 이들이 4년간 차근차근 쌓아 올린 블랙핑크라는 브랜드 그리고 그 브랜드가 지금 세계 팝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진지하게 관찰해 내놓은 꽤 성실한 답안이었다. 이 같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지수, 제니, 리사, 로제 네 멤버의 성장이 큰 역할을 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금 팝 시장의 대세 중의 대세라는 셀레나 고메즈, 카디 비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는 개성과 곡 전체를 장악하는 힘은 이들의 지난 시간이 그려낸 이견 없는 블랙핑크만의 현재였다. 

그러나 앨범을 둘러싼 가장 뜨거운 이슈는 음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터졌다. ‘Lovesick Girls’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간호사 복장이 문제였다. 'No doctor could help when I'm lovesick'이라는 가사에 맞춘 장면이자 10초가 채 되지 않는 짧은 컷이었지만 그가 남긴 충격은 너무나도 컸다. 짧은 치마와 타이트한 상의, 헤어 캡과 붉은 하이힐을 착용하고 의료 차트를 들고 있는 멤버의 모습이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관습적인 성적 대상화라는 지적이었다. 일부 케이팝 팬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문제의식은 대상화의 주체인 의료단체가 직접 움직이며 논의가 심화되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 5일 'YG엔터 블랙핑크 뮤비 속 간호사 성적 대상화에 대한 입장'이란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간호사 복장이 ‘실제와 동떨어진 전형적인 성적 코드를 그대로 답습한 복장과 연출’이라며 ‘대중문화가 왜곡된 간호사의 이미지를 반복할수록 이런 상황은 더 악화한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YG엔터테인먼트 측은 ‘특정한 의도는 전혀 없었으나 왜곡된 시선이 쏟아지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며 ‘뮤직비디오도 하나의 독립 예술 장르로 봐달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상황 파악과 우려의 방향 모두가 모호한 입장문은 논란에 더욱 큰불을 지폈다. 대한간호협회는 재차 입장문을 발표하며 ‘가사의 맥락과 상관없는 선정적인 간호사 복장을 뮤직비디오에 등장시킨 것은 예술 장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간호사 성적 대상화 풍조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시정을 요구했다.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까지 해당 이슈가 언급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자 소속사 측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뮤직비디오에서 간호사 유니폼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삭제하기로 한 것이다.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이번 사례가 더욱 뼈아프게 느껴지는 건 이러한 논란이 업계에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08년, 가수 이효리가 흡사한 논란에 휩싸였다. 3집 타이틀곡 ‘U-Go-Girl’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었던 이효리가 붉은 립스틱을 칠한 채 가슴이 깊게 파인 간호사 복장으로 영상에 등장한 것이다. 당시에도 대한간호협회는 해당 장면의 시정을 적극적으로 요청했고, 급격히 악화한 여론에 소속사 측은 의료진들에 대한 사과와 함께 뮤직비디오에서 해당 장면을 삭제했다. 무려 12년 전의 일이지만 ‘Lovesick Girls’가 처한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건이었다. 

비단 ‘Lovesick Girls’, ‘U-Go-Girl’, 케이팝, 간호사만이 문제일까. 보건의료노조의 입장문에 적힌 ‘간호사는 보건의료 노동자이자 전문의료인임에도 해당 직업군에 종사하는 성별에 여성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성적 대상화에 노출되고 전문성을 의심받는 비하적 묘사를 겪어야만 했다’는 문장은 이 모든 논란의 핵심을 짚은 구절이다. 간호사, 변호사, 교사, 경찰, 아나운서 등 전문직이 여성이라는 성별을 만날 때, 그리고 그 인물을 대중문화가 다룰 때 드러나는 관습적 성적 대상화에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 의도가 없었다’는 YG 엔터테인먼트의 입장문은 우리 사회의 투명한 민낯에 다름 아니었다. 실제로 수많은 이들이 음악, 영화, 드라마, 문학 등 각종 문화예술 매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재생산된 대상화를 무비판적으로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핑크가 뮤직비디오에서 해당 장면을 편집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장담컨대 이와 흡사한 논란은 머지않은 미래에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다는 케이팝의 위상을 고려해볼 때, 논란의 양상은 일반적인 성적대상화를 넘어 특정 문화와 인종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나 문화적 전유에 대한 비판까지 끝없이 가지를 쳐 나갈 가능성이 크다. 케이팝을 위시한 한국의 대중문화는 예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은, 다양한 이들과 만나며 호흡하고 있다.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를 단번에 모조리 뜯어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같은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모인 작은 노력은 쌓이고 쌓여 논란이 된 특정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뿐만이 아닌 제 일을 하며 매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 모두에게 옳은 길을 놓아줄 것이다. ‘전문직 여성’이라는 단어에서 ‘여성’이 아닌 ‘전문직’에 방점이 찍힐 때, 비로소 세상이 바뀌었다고 조금이나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팝 산업이라는 커다란 대상화의 천국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모든 전문직 여성들에게도.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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