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네 비디오가게', 탑골공원서 찾아낸 보물상자

방송사 아카이브 콘텐츠 홍수 속 진정성으로 승부

2020.10.08
사진제공=SBS


코로나19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일상이 팍팍해서일까. 대중들은 TV에서 조금씩 과거를 소환하고 있다. 처음 그 기미는 유튜브에서부터 잡혔다. ‘탑골가요’라는 이름으로 과거 가요프로그램의 실시간 재생 콘텐츠가 대박이 난 것이다. 1990년대 청춘을 살았던 지금의 40~50대의 기억 속 가수들은 지금의 10~20대에게는 흥미로운 하나의 콘텐츠가 됐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이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방송사는 어디나 과거부터 만들어왔던 방송영상을 보관한다. 과거에는 이것이 VHS 비디오테이프였다가 파일로 바뀐 것만이 달라졌다. 여기서 적절한 내용을 잘 꺼내 콘텐츠로 윤색하면 그만이다. 영상을 만들기 위한 비용이 적다. 그래서 최근에는 방송사 아카이브에서 뒤지고 뒤진 자료로 만들어진 예능 프로그램이 부쩍 많이 선보였다.

KBS JOY의 ‘이십세기 힛트-쏭’, 엠넷 ‘퀴즈와 음악사이’, E채널 ‘탑골 랩소디’을 비롯해 지난 추석연휴에 선보인 KBS2 ‘전교톱10’ ‘TV라떼는’ 등의 콘텐츠도 기본적으로는 이 아카이브 영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지금 예능의 형식을 빌어 과거의 콘텐츠를 흥미있게 같이 보며 그 시절에 인기 있었던 연예인과 지금의 연예인이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다.

허나 단순히 추억을 나누고 공감을 한다고 해서 프로그램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 비슷한 형식의 재생산을 부추겨 또 하나의 ‘고인 물’이 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시즌을 마친 SBS ‘선미네 비디오가게’는 복고 프로그램의 지향점, 그 중 필요한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진제공=SBS

원래 이 프로그램은 지난 6월7일 파일럿 형태로 처음 선보였다. 주인공은 개그우먼 박미선이었다. 1990년대 초반 등장해 30년이 넘도록 긴 인기를 이어온 박미선이 복고 프로그램에 등장하면 응당 남편 이봉원이 애를 먹인 이야기가 나오거나 당시 인기 코너들을 소개할 줄만 알았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30년 가까운 시간 개그우먼으로서 박미선이 헤쳐가야 했던 많은 것들을 보여준다. 이는 사람들의 선입견일 수 있고 폐쇄적인 당시의 문화일 수 있다. 예전의 영상을 볼 때마다 재밌기도 하지만 출연자가 왠지 짠한 표정을 짓는 것은 때로는 자신이 성숙하지 못했고, 때로는 세상이 성숙하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지난달 27일과 지난 1일 ‘선미네 비디오가게’는 故 신해철 편과 박세리 편을 방송했다. 신해철의 방송분에는 그와 함께 한때 ‘노땐스’라는 그룹으로 활동했던 뮤지션 윤상이 등장했다. 아티스트로서 지근거리에서 신해철을 봤던 윤상의 여러 가감없는 속 이야기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흘러나왔다. 페퍼톤스, 양동근, 홍경민, 부활 김태원 등 그를 아는 많은 아티스트를 통해 인간 신해철과 뮤지션 신해철을 조명했다. 

박세리 편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IMF 구제금융 당시인 1998년 화제가 됐던 US오픈 우승과 그의 맨발투혼 말고도 선수가 아닌 유명인, 여성으로서 박세리가 겪어야 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당시 그를 취재하던 매체들이 우악스러운 모습으로 박세리를 조여드는 모습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마냥 재미만을 취해야 함이 아니라 반성도 해야 함을 알려주는 듯 했다. 

사진제공=SBS

‘선미네 비디오가게’는 아카이브에서 나온 자료를 통해 단순히 흥미만을 찾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온전한 모습을 찾아 떠나려 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닌, 과거 속에서 나온 모습도 더해 좀 더 인물을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복고를 표방하며 과거 자료를 들춰내는 다른 프로그램에게도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단순히 ‘복고’를 하나의 유행으로 취하면 모든 유행이 그렇듯 그저 흘러가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 안에서 교훈을 발견하고 지금에라도 명심할 것들을 찾아낸다면 자료들은 큰 가치를 가진다. ‘선미네 비디오가게’는 과거의 영상이 지금의 모두를 성장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걸그룹 원더걸스의 멤버로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MC로도 자리를 확장한 선미의 모습을 보는 것도 이채롭다. 선미는 이 프로그램에서 MC가 아닌 들어주는 사람에 가깝다. 그가 가지고 있는 폭넓은 공감능력과 듣는 이를 편안하게 해주는 배려 그리고 20대로서 과거의 이채로운 재미를 찾아내는 모습은 프로그램이 너무 ‘올드하게’ 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해낸다.

이 프로그램의 정규편성을 기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일단 한 인물의 자료를 찾는 작업에 너무 시간이 걸려 매주 방송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인물에 대해 제작진이 깊이 이해하는 시간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미네 비디오가게’는 단 세 번의 방송으로 과거의 자료가 이렇게 깊이있고 따뜻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이미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였다.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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