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츠', 무대가 주는 가슴 떨리는 마력의 시간

2020.09.22

뮤지컬 '캣츠'

코로나19 이후 공연계 가장 큰 화두는 영상화다. 부차적인 요소로만 여겨졌던 공연의 영상화가 코로나 시대에 주목받고 있다. 정부의 지원 정책 역시 온라인화에 방점을 두고, 방역 2단계로 상승한 이후 국공립 극단이나 공연장의 작품들은 무관중 촬영 영상을 온라인으로 상영하는 사례가 늘었다. 온라인 공연 관람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장점이 있다. 경험이 반복되면서 처음 접할 때의 답답함도 완화되어 갔다.


'캣츠'를 보기 위해 오랜만에 공연장에 갔다. 공연장까지 시간을 맞춰 가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준비하고 이동하는 동안 공연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커져만 갔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친구와 연인, 가족들과 함께 공연을 보기 위해 한껏 차려입고 온 관객들의 들뜬 기운이 그대로 전해졌다. 공연 관람 경험은 어떤 공연을 볼지 고민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객석의 소음이 잦아들면 공연이 시작된다. 무대는 둥글고 커다란 젤리클 달이 떠 있는 쓰레기장이다. 폐타이어, 깡통, 신발 등 쓰레기장에서 볼 만한 물건들이 즐비하다. 고양이의 눈으로 본 물건들은 실제보다 3배에서 10배까지 크게 제작되었다. 그런 이유인지 마치 설치미술을 보는 것 같은 분위기에 빠진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이십여 마리의 젤리클 고양이가 객석을 통해 등장한다. 고양이 종에 따라 분장과 고양이 의상을 입은 젤리클 고양이의 등장은 공연장을 젤리클 무도회가 펼쳐지는 고양이 세상으로 바꿔놓는다.


뮤지컬 '캣츠'


무대에 오른 이십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젤리클송에 맞춰 일사불란하면서도 각자의 개성 가득 담아 춤을 춘다. 소위 무대와 관객의 약속으로 생기는 일루젼(illusion)은 고양이 의상을 한 배우들을 추호의 의심 없이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젤리클 고양이로 받아들이게 한다. 극장 가득 메운 흥분과 열기, 눈앞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열정, 연극인지 알면서도 극 속 세상에 빠져들게 하는 공연의 마력은 공연장 현장에서만 온전히 구현된다.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공연의 에너지를 흡입하자 막힌 체증이 뚫리는 듯 숨이 쉬어진다. 그래 이게 바로 공연이었지.


서사보다도 배우들의 에너지와 퍼포먼스가 중요한 '캣츠'는 공연의 생명이라는 현장성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공연이다. '캣츠'는 T.S 엘리엇의 우화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토대로 한 작품이다. 이야기 플롯은 매우 단순하다. 개성 강하고 매력적인 젤리클 고양이들이 벌이는 젤리클 무도회가 펼쳐지고 이 무도회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될 고양이를 선발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작품 전체를 각각의 고양이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독립적인 퍼포먼스로 봐도 무방하다. 서사적으로 유기적인 이야기 틀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고양이의 몸동작에서 움직임을 본뜨고, 각각의 개성을 충분히 반영한 질리안 린의 안무는 '캣츠'의 성공 요인을 가능케 했다. 특히 극 전후반에 걸쳐 설정된 젤리클 고양이의 군무나 햐얀 고양이 빅토리아의 솔로, 그리고 기차 대형을 갖추고 모형 기차를 만들어내는 스킴블샹스의 무대, 쌍둥이 남매 도둑고양이 몽고제리와 럼플티저의 풍차돌리기 안무까지 발레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탭, 재즈 댄스, 아크로배틱 등 매 순간 다양한 춤의 향연을 경험하게 했다.


1981년 런던에서 초연한 '캣츠'는 21년간, 브로드웨이 공연은 18년간 지속되었다. 꽤 오랫동안 최장기 공연 타이틀을 유지한 작품이다. 그동안 소소한 변화는 있었지만 개성 강한 고양이들을 표현한 노래와 춤, 그리고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메모리는 변하지 않았다. 작품의 대표곡인 ‘메모리’는 엘리엇의 미발표된 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었다. 전체를 관통하고 플롯과 그에 적합한 주제곡이 없어 고민하던 작곡가 웨버와 연출가 트레버 넌은 메모리를 만들어내고 이 작품이 성공할 것을 확신한다. 수많은 가수들에 리메이크된 ‘메모리’는 젊은 시절 무리에서 떨어져 방황하다 다시 돌아온 그리자벨라가 지난날을 추억하고 삶을 긍정하며 부르는 노래다. 무리에게 배척받던 그녀가 과거의 회환을 노래하며 절정으로 치닫는 ‘Touch me~’ 부분, “나의 손을 잡아달라”는 절규는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공연 영상에 밀려 위축되어 있는 리얼한 현장 공연이 외치는 것 같다. 공연의 생생한 에너지, 가슴 벅찬 감동, 구름을 걷는 듯한 기분을 간직한 채 공연장을 나선다. 콘크리트 바닥에 발을 디뎌도 '캣츠'의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40년 된 '캣츠'가 주는 현장에서의 살아있는 감동은 아직까지는 그리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은 영상 기술로 대체되지는 않을 것 같다.


박병성(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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