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새삼 떠오르는 영화 '미스트'

2020.09.21


영화 '미스트' 스틸.

영화가 끝났는데도 다리가 후들거려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충격적이었다. 섬뜩했다. 몸에 두드러기처럼 퍼진 닭살 때문에 더 ‘소오~름!’ 10여 년 전, ‘미스트’의 미친 반전을 목격했을 때의 상황이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 이라는 ‘식스센스’의 반전을 만났을 때와는 달랐다. 앞선 상황들을 일거에 재조립하는 ‘식스센스’의 반전이 ‘탄성’을 불렀다면, 피도 눈물도 허락하지 않는 ‘미스트’의 반전은 ‘탄식’을 호출했다. ‘미스트’가 그리는 결말은 한마디로 무한지옥이었다.

 

스티븐 킹의 원작을 프랭크 다라본트가 영화화한 ‘미스트’는 거짓된 믿음이 전염될 때 얼마나 처참한 결과가 초래하는가를 알려주는 지옥도다. 세상의 훌륭한 많은 작품이 그렇듯 ‘미스트’의 놀라움은 작품이 그려내는 공포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 녹진하게 들러붙어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시대를 통과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 혼란스러워하고 서로를 불신하는 사람들을 보며, 한 손에는 십자가를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광장에 나선 극우 종교단체를 목격하며, 이들을 선동하는 이를 보며 나는 다시 ‘미스트’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가를 새삼 확인했다.

 

“안개 속에 무언가가 있다!” 피투성이가 된 노인이 마트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외친다. 노인의 외침에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마트 밖은 짙은 안개로 빠르게 뒤덮인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 이 안개는 어디서 온 것인가. 마트 밖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막연한 두려움이 사람들을 엄습한다. 그리고 그때 정체 모를 괴생명체들이 마트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결국, 괴생명체 때문에 겁먹은 사람들 이야기야? 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 ‘미스트’의 관심사는 괴생명체가 좀비냐 에이리언이냐 킹콩이냐 외계인이냐 따위가 아니다. 특수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들의 이상심리와 광기와 분열과 증오를 묘사하는 게 이 영화의 목표이자 핵심이다. 즉 ‘미스트’가 안기는 공포의 근원은 타자가 아니다. 그건 우리들, 인간이다. 괴물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끼어드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대립(계급 갈등), 외지인과 내부인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지역 갈등), 인종 갈등과 첨예한 종교 문제 등이 극이 진행될수록 스크린에 끈적하게 엉겨붙는다.

 

이 영화에는 흥미로운 인간군상이 여럿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카모디 부인(마샤 게이 하든)이다. 괴생명체의 공격 앞에서 하얗게 질린 사람들을 향해 카모디 부인이 외친다. “종말이 다가왔다. 화염이 아닌 안개와 함께. 하나님의 진노가 시작되었다!” 말이야, 빙구야. 초반 사람들은 카모디 부인의 말을 무시한다. 정신 나간 여자쯤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던가. 상식을 넘어선 초월적 재난 앞에서 인간의 이성적 사고는 굴복당한다.

 

카모디 부인은 이 벌어진 틈을 놓치지 않는다. 마음이 약해진 사람들의 심리를 가짜뉴스로 교묘하게 건드리며 이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기똥찬 정치력을 보여준다. 마트 안은 그런 카모디 부인의 말을 광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과 이성적 사고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두 동강 난다. 급기야 이 여자는 하나님과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제물로 바치자고 선동한다. 21세기 마녀사냥.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을 해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마트 안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영화 '미스트' 스틸.



 

종교의 힘을 빌려 자신의 정치적 세를 확장하고, 분열을 조장하고, 비(非)이성에 기대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카모디 부인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참, 많이도 닮았다.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 “우리는 바이러스 테러를 당했다”, “애국집회 참석하면 전염병이 낫는다”,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나와 우리 교회를 제거하려고 (정부에서) 재개발을 선동했다” 등의 망언으로 신도들을 현혹하고 가짜 정보를 전파하는 그 누군가를. 그래서 나라가 망한다고 선동했던 그는 신의 뜻에 의해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했는가.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무사안일했는가. 그가 우렁차게 외친 8.15 집회는 결국 코로나19 재확산의 도화선이 됐고,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부르며 전국 가가호호의 살림살이를 박살냈다.

 

물론 코로나19로 드러난 종교의 한계는 특정인물의 일탈에만 책임이 있지 않다. 코로나19 재확산이 한창이던 8월 말 대면예배를 강행한 한 목사는 “(정부의) 교회 말살정책에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또 다른 목사는 동성애자들로 인해 바이러스 확산을 주장하며 “(코로나19 사태는) 하나님이 심판한 것”이라고 설교했다. 일부 교회가 지자체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대면 예배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종교를 가져 본 적 없는 문외한이지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에 담긴 숨은 뜻이 차별은 아닐 것이며, ‘네 이웃’이 자신을 따르는 이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안다. 신의 뜻에 가 닿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종교가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내가 안다고 자신하는 것에서 종교가 파생하는 것 또한 아닐 것이다. 


언론도 때론 동조했다. 8월 15일 광화문 집회까지 보수신문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집회 참여 독려 광고를 실었다. 집회 당일엔 60개 지역별 출발 담당자 연락처를 전면에 게재하며 통신망 역할도 했다. 신도들에게 이건 일종의 확성기다. 유명 언론사에서 광고까지 실어줬으니 자신의 믿음이 틀릴 리 있겠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카모디 부인을 맹신하게 된 이 중엔 지식인도 적지 않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이에 대해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전미경은 자신의 저서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지능은 높을지 몰라도 지성의 힘이 약한 것이다. 인생의 가치를 스스로 찾지 못하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 무엇인가에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가 정의한 지성이란 “새로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맹목적인 방법이 아니라 지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그 상황에 적응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성질”이다. 물론 지성이나 지식이 약해서가 아니라, 정치를 위해 교묘하게 교회를 이용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정치 권력을 등에 업고 교세를 확장하려는 이들이 많은 것도. 종교와 정치의 공생 관계는 사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종교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말, 집회의 자유가 허락돼야 한다는 말, 두말할 것 없이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공동체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라면, 사회에 재앙을 가져오는 것이라면 그에 대해서는 동의할 마음이 전혀 없다. “안개 속에 무언가가 있다!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 영화 ‘미스트’에서 겁에 질린 노인이 한 말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창문 너머 세상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문밖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자. 안개인가, 바이러스인가, 사람인가. 아니면 그 모두인가.


정시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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