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영혼이 있다면: 태민과 유아처럼

2020.09.17
태민,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이제는 전 세계 곳곳에 팬층을 형성한 케이팝의 매력 가운데 퍼포먼스가 가진 힘을 빼놓을 수 없다. 그저 리듬에 맞춘 몸짓이 아닌 기예나 뮤지컬, 때때로 현대무용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케이팝의 완성도 높은 무대는 꾸준한 자기 계발을 통해 세계 팝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퀄리티를 보유하게 된 음악과 함께 케이팝의 인기를 지탱하는 튼튼한 받침대가 되었다. 특히 케이팝 퍼포먼스의 경우, 음악을 담는 릇임은 물론 춤, 의상, 컨셉트, 스토리, 무대장치까지 한 곡의 노래와 그 노래를 부르는 그룹의 한 시기를 규정하는 모든 것이 녹아있는, 케이팝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유용한 시청각 자료였다.

케이팝에도 세월이 쌓이며 팬들이 선호하는 퍼포먼스의 종류도 변해 갔다. 아이돌 무대 하면 떠오르는 ‘칼군무’는 이제 과거의 유산 또는 기본 중의 기본이 되었고, 여기에 그룹 색깔이나 개성에 어울리는 섬세함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빅뱅이나 블락비처럼 힙합 음악을 중심으로 한 그룹은 딱딱 들어맞는 칼군무보다는 자연스럽게 무대를 즐기는 자세를 강조했고, 다인원 그룹의 경우 구성원을 여러 그룹으로 나눠 번갈아 가며 무대에 세우는 변형된 형태의 군무로 무대를 더욱 다양하게 활용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안무가 토니 테스타를 영입하거나 미국 현대무용의 대모 마사 그레이엄이 남긴 명언까지 모티브로 사용할 정도로 케이팝 퍼포먼스는 스스로 응용 범위를 넓혀 나갔다. 이는 케이팝의 성숙과 함께 자연스레 탄생한 솔로 가수들이 개척해야만 했던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군무’ 없이 홀로 선 무대에서 한 사람의 퍼포머로서 얼마나 설득력 높은 무대를 구현할 수 있는가. 그것이 발라드건 록이건, R&B건 댄스건, 솔로 가수로 대중에게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는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숙제였다,

지난 9월 7일 동시에 발매된 태민의 ‘Criminal’과 유아의 ‘숲의 아이 (Bon voyage)’는 그런 그룹 출신 솔로 케이팝 가수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던 숙제를 기막히게 풀어낸 모범 답안이다. 물론 발표날만 같을 뿐, 두 사람이 처한 위치와 처지는 사뭇 다르다. 올해로 데뷔 13년 차에 들어선 태민은 그룹 샤이니의 메인 댄서이자 케이팝 퍼포머를 대표하는 인물로 수많은 아이돌 후배들이 그를 롤 모델로 꼽아 ‘탬또롤(태민이 또 롤모델이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오마이걸 멤버 유아 역시 뛰어난 퍼포머지만 그룹 내 첫 솔로 주자일 정도로 아직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훨씬 많이 남은 솔로 새내기다. 앨범을 봐도 그렇다. ‘Criminal’이 수록된 태민의 'Never Gonna Dance Again : Act 1 - The 3rd Album'은 지난 6년간 정규앨범과 미니앨범, 일본 앨범까지 꾸준히 발표해 온 베테랑 솔리스트의 정규 3집이다. 유아의 'Bon Voyage'는 그가 데뷔 6년 만에 내놓는 첫 솔로 앨범이다.

유아, 사진제공=WM엔터테인먼트

그런데도 이 두 사람의 무대를 같이 모아 이야기하려 하는 건 두 곡의 무대가 지닌 특별한 무게 때문이다. 우선 태민의 ‘Criminal’을 보자. 태민의 무대는 2014년에 발표한 솔로 데뷔곡 `괴도 (Danger)’에서 ‘Press Your Number’, ‘MOVE’, ‘WANT’를 거치며 절제의 미학을 체득해 오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MOVE’와 ‘WANT’를 거치며 케이팝 퍼포먼스가 가진 힘과 기교가 단지 폭발하는 것이 아닌 수렴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멋이 있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게 해준 그는 ‘Criminal’에 이르러 비로소 그동안 참아왔던 에너지를 모조리 폭발시킨다. 타오르는 욕망을 감출 생각이 없다는 듯 두 손을 묶은 매듭을 입으로 풀어내며 후렴구를 폭발시키는 퍼포먼스는 노래를 대표하는 ‘더 망쳐줘’라는 가사만큼이나 노골적으로 곡의 거의 모든 구간에서 불꽃을 터뜨린다. 이 눈부신 열정이 결코 과해 보이지 않는 건, 데뷔 이후 태민이라는 퍼포머가 쌓아온 성장을 중심으로 한 대중의 신뢰가 바탕에 놓인 덕분이다.

‘숲의 아이 (Bon voyage)’는 시작점만 보자면 태민과 정반대에 놓인 곡이다. 선곡은 물론 안무와 뮤직비디오의 작은 항목까지 전부 관여하며 전체적인 프로듀싱에 깊숙이 관여한 태민에 비해 초보 솔로 유아의 데뷔곡을 둘러싼 대부분 요소는 당연하게도 소속사의 기획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다. 그룹 내 첫 솔로 데뷔라는 부담감으로 소속사의 솔로 권유를 거절하기도 했다는 그는, ‘회사 관계자들이 꾸준히 보여준 비전과 멤버들의 응원으로 솔로 무대에 설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말한다. 실제로 ‘원령공주’에서 ‘뮬란’까지 다양한 영상 레퍼런스가 떠오르는 ‘숲의 아이 (Bon voyage)’ 무대는 그러나 퍼모먼스를 보면 볼수록 유아라는 존재가 있어서 구상할 수 있었고 실제 구현까지 가능했던 무대라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낯선 곳에서 눈을 뜬 한 아이가 세상 저편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신비로운 숲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난다는 판타지 영화 같은 스토리를 보컬, 춤, 무대 연기 모두를 통틀어 유아보다 잘 소화해낼 수 있을 만한 인물을 상상하기 힘들다. 이것은 틀림 없이 유아의, 유아에 의한, 유아를 위한 무대다.

한 마디로 ‘Criminal’과 ‘숲의 아이 (Bon voyage)’는 태민과 유아가 아니면 성립될 수 없는, 무대라는 형태로 구현된 하나의 작은 세계다. 두 노래에는 제대로 주어진 노래 파트 하나 없이 앳된 열다섯 얼굴로 대중에게 첫 인사를 건네던 한 아이돌의 성실한 직업인으로서의 13년이, 손에 잡히지 않는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를 꾸준히 탐해온 동시에 ‘힛 더 스테이지’, ‘퀸덤’ 등의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퍼포먼스에 대한 꾸준한 욕심을 보여준 한 아이돌의 야망이 각각 녹아 있다. 이들의 무대가 단순히 피와 땀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닌 영혼으로도 채워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케이팝 퍼포먼스에 혼을 불어넣고 있는, 올해 결코 잊지 않아야 할 무대들이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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