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새 시대의 새로운 클래식

2020.09.10
사진출처=부승관 브이라이브

지난 9월 8일 늦은 밤, 세븐틴의 메인 보컬 부승관이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타이틀은 ‘We Remember K-pop’. 별 다른 예고 없이 원더걸스의 ‘So Hot’으로 시작한 방송은 무려 3시간이 넘게 이어지며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야 마무리되었다. 방송종료 시점 시청자 수 약 360만 명. 이후에도 꾸준히 숫자를 늘리며 현재(9월 10일 기준) 41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방송을 본 사람들 사이에서 ‘케이팝 교양 강의’라는 입소문이 난 영상은 진행자 승관에게 ‘부교수’, ‘케이팝계의 설민석’이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일반적으로 팬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실시간 라이브 형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불러올 수 있었던 건, 단지 세븐틴의 팬뿐만이 아닌 케이팝을 듣고 자란 세대라면 누구나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음악이 가진 힘이었다. 

오래 전부터 들끓고는 있었지만 채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던 이 열기를 콘텐츠로 구체화한 대표적인 사례는 SBS 유튜브 채널 스브스뉴스의 웹 예능 프로그램 ‘문명특급’의 코너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이다. 대놓고 듣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이라면 혈관을 따라 흐르고 있음이 분명한 숨겨진 명곡들을 재조명하며 화제가 된 이 콘텐츠는 관련 영상 평균 조회 수 100만 회를 훌쩍 넘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숨듣명’의 꾸준한 인기는 지난해 7월 ‘문명특급’을 스브스 뉴스에서 분리된 단독 채널로 독립시킨 것은 물론 올해에는 공중파 진출까지 성사시키는 쾌거를 낳았다. 추석특집 TV 특별판으로 편성된 ‘문명특급’은 ‘숨듣명’ 시리즈를 통해 새롭게 주목 받은 티아라, 틴탑, 나르샤, 유키스 등과 함께 ‘숨듣명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숨어서 듣던 노래들이 만든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진출처='문명특급' 캡처

이렇듯 ‘옛 케이팝’이 다시 소환되는 과정은 최근 가요계를 휩쓸고 있는 레트로 열풍과 함께 묶여 해석될 여지가 높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접근이다. ‘We Remember K-pop’, ‘숨듣명’이 주로 다루고 있는 건 주로 2008년에서 2012년 사이에 발표된 케이팝이다. 2006년 빅뱅을 시작으로 2007년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2008년 샤이니, 2PM 등이 연이어 데뷔하며 아이돌 전성시대를 열었던 바로 그 시기의 곡들이다. 급작스레 커진 몸집에 ‘국민가요’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히트곡들까지 등장하며 아이돌 팝이 특정 팬에게만 소구하는 것이 아닌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점차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가던 즈음이었다. 지금 ‘케이팝 추억팔이’에 열광하는 다수는 그 시기에 10대 시절을 보낸 90년대 생들이다. ‘그때 그 케이팝’도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추억으로 소비되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옛 케이팝 콘텐츠들의 가장 큰 매력은 사실 따로 있다. ‘무한도전 - 토토가’, ‘놀면 뭐하니 - 싹쓰리’로 대표되는 레트로와 가요를 키워드로 한 기획들이 ‘우리의 좋았던 시절’을 소환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면, ‘숨듣명’과 ‘We Remember K-pop’은 자신들이 다루는 대상에 대해 더욱 섬세하고 애정 어린 접근 방식을 보인다. ‘숨듣명’의 기본정신은 가장 인기 있는 곡은 아니었지만 또는 과한 욕심에 너무 앞서나간 가사나 안무, 음악을 선보였지만, 그 시절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열심히 살아낸 창작자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다. 만약 당신이 케이팝과 함께 자란 케이팝 세대라면 가사는 물론 응원법, 노래에 담긴 작은 효과 하나하나까지 심장에 새긴 것처럼 반응하는 승관의 모습을 결코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콘텐츠들이 발표 당시 여러모로 ‘과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나르샤의 ‘삐리빠빠’나 유키스의 ‘시끄러’를 다시 대중의 관심사에 올려놓거나 같은 샤이니나 걸스데이의 노래를 틀어도 ‘Jojo’나 ‘잘해줘 봐야’를 고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보다 나와 함께 그 시절을 살았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추억으로 팔기에는 이르다고 여겼던 옛 케이팝이 색다른 모습으로 대중들을 찾아오고 있다. 이들이 새 시대의 새로운 클래식이 되어 가는 과정은 아마 이전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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