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하다 웬 치킨버거? 대놓고 PPL 시대

제작비 궁한 지상파 방송 짠내나는 속사정

2020.09.08
사진출처=방송캡처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4인조 걸그룹 ‘환불원정대’의 제작에 착수한 제작자 지미유(유재석)는 멤버 천옥(이효리)이 제주도에 있는데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에 돌입하자 ‘언택트 화상회의’를 소집한다. 멤버 네 명과 지미유의 모습이 화상에 뜨자 지미유는 다짜고짜 “배고프지 않냐”며 햄버거를 먹자고 한다. 지미유 앞에 유명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치킨, 햄버거 세트가 차려지고 제주도에 있어 배달이 힘든 천옥을 제외한 모든 멤버들에게 전달된다. 천옥의 노래도 가미되니 디너쇼가 따로 없다. 이 패스트푸드 브랜드는 방송 이후 큰 화제를 모았다.

지금의 예능이 PPL(Product PLacement·간접광고)을 소비하는 방식은 이렇다. 기왕 보여줘야 하는 협찬광고라면 자연스럽게 제작비에 도움이 된다며 광고임을 알리는 식이다. 이러한 기류는 굳이 ‘놀면 뭐하니?’에서만 관측되지 않는다. SBS ‘불타는 청춘’에서는 출연자 브루노가 멤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면서 우유, 칵테일, 치즈 등을 준비했다. 제작진은 이 물품들이 PPL이라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키면서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PPL이 너무 많아 지겹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SBS에서는 ‘텔레그나(텔레비전에 그게 나왔으면)’라는 PPL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도 했다.

지상파 방송은 국가가 허가하는 전파를 써야 한다는 점 때문에 오랜시간 공공재로 인식돼 왔다. 물론 광고시간이 따로 있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집중해서 보는 프로그램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광고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그래서 많은 광고주들은 끊임없이 광고시간을 벗어나 프로그램 자체에 스며들고자 애썼고, 방송사는 이를 자연스럽게 제작비에 쓰면서 허용해 왔다.

하지만 방송에서 대놓고 한 브랜드를 소개하는 모습은 내내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PPL은 그 맥락상 서사가 있는 드라마가 자연스럽게 섞어 쓰기 편했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처음 시작됐다. 극중 배경이 되는 사무실이나 집에 PPL 제품들이 있거나 주인공들이 만나는 카페 브랜드 자체가 PPL이 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이 좀 심하다 싶으면 언론에서는 “방송의 본령인 공공성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사진출처=방송캡처

그러나 그 흐름은 이제 더욱 심화돼 맥락상 PPL을 적당히 끼워넣을 수 없는 예능에도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놀면 뭐하니?’의 사례를 보면 유재석이 매번 “우리 제작비를 도와주시는 분들이야”하면서 토크 중간 음료수를 마시거나 과자를 먹는 등의 행동을 했고, MBC ‘나 혼자 산다’의 스핀오프(같은 설정을 가진 다른 프로그램) ‘여은파(여자들의 은밀한 파티)’에서는 유튜브의 특성을 이용해 PPL이 된 제품을 좀 더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홍보했다. ‘불타는 청춘’ 역시 “광고주님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라는 자막을 넣는 건 기본이었다. 

PPL이 이렇게 대놓고 홍보로 바뀐 이유는 최근 유튜브를 중심으로 논란이 된 ‘뒷광고’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가를 지급 받은 인플루언서를 통해 SNS 인스타그램으로 광고하면서 이를 밝히지 않은 7개 사업자에 대해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을 이유로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실제 SNS를 통해 자신이 직접 물품을 산 것처럼 시청자들을 기만했던 많은 유튜버들이 ‘뒤로 돈을 받는다’는 의미의 뒷광고 논란에 휘말렸고 신뢰를 잃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최근에는 아예 광고임을 자연스럽게 밝혀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고 이를 웃음의 코드로 삼는 ‘앞광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뒷광고 논란만이 사안의 본질은 아니다.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수익 추이를 살펴봐야 한다. 지상파 광고시장 감소세는 2010년부터 시작됐다. 방송사업매출 전체의 66%가 넘던 지상파 광고매출 비중은 10년 사이 36%대로 절반 줄었다. 줄어든 수익만큼 프로그램 단위별 제작비는 감소하지 못했다. 그래도 스타들을 출연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제작비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상파는 대신 채산성이 없는 프로그램을 없애고, 드라마 제작도 줄이고 재방송의 비율을 늘리고 있다. TV가 PPL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한 것도 이런 광고시장의 불황과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사진제공=방송캡처

과거에는 제품홍보의 유일한 통로였던 TV가 그 지위를 잃었다. 굳이 광고주들은 홍보를 위해 TV를 선택할 필요가 없어졌고, 제작진이 더욱 저자세로 PPL를 갈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PPL이 필요하다면 시청자의 거부감을 줄이며 친근함을 높이는 전략. 지금의 예능이 PPL을 대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흐름은 더욱 심화되면 심화됐지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1~2년 내의 예능 프로그램은 아예 스튜디오에 브랜드를 노출시키고, 출연자가 광고를 붙이고 야외를 누비는 모습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러한 흐름과 웃음과의 조화가 필요하다. 마치 유명 햄버거 브랜드가 ‘엄마의 손맛’으로 비유됐던 것처럼 말이다. 지상파는 이제 생존이 중요하다. 더 이상 제작비를 구하는 데 있어 예전 같은 자존심은 무의미해졌다.

신윤재(칼럼니스트) 




목록

SPECIAL

image 카카오TV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