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가 건드린 이 사회 가장 위험한 뇌관

2020.08.17

사진=스타뉴스DB


기안84가 네이버 웹툰으로 연재하고 있는 '복학왕' 때문에 논란이 거세다.


'복학왕의  새 에피소드 '광어인간' 2화에 인턴 봉지은이 남자 상사와 성관계를 가진 뒤 정직원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담겨있기 때문. 술자리에서 무능한 봉지은이 취직을 하기 위해 술집 의자에 누워 자기 배 위에 커다란 키조개를 올려놓고 송곳으로 깨는 장면인데, 성관계를 암시하는 듯한 이 장면 뒤에 봉지은은 정직원이 된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연재 중단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고, MBC '나혼자 산다' 게시판에는 기안84를 하차시키라는 항의가 폭주하고 있다. 봉지은의 에피소드가 이 사회의 아주 민감한 무언가를 제대로 건드린 것 같다. 그렇다면 기안84는 왜, 어찌하여 이런 에피소드를 올린 것일까? 이런 후폭풍이 올 거라는 걸 전혀 예상을 못했을까?

 

답은, 예상 못 했을 것이다. 쪽이다. 모르고 하는 실수와 알고 하는 실수는 다르다. 논란이 되는 문제의 장면을 여러 번 보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모르고 그린 것 같다. 알고 그렸으면 그렇게 적나라하게 논란이 될 장면을 그리진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모르고 그렸으니 창작의 자유로 인정하고 넘어가는 게 옳은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그걸 결정하기 전에 한가지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다. 왜 그 웹툰을 본 많은 여성(과 남성)들이 분노하고 폭발했는가? 하는 문제다. 기안84와 많은 창작자들이 알아야 할 게 그것이다. 그걸 본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다쳤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도 사람이 먼저다. 예술 위에 사람이 있지, 사람 위에 예술이 있지 않다. 나는 기안84가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비범한 재능이 빛난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선함과 고민이 없는 예술가의 재능은 종종 쉽게 폭력이 되는 것을 많이 봐왔다. 기안84가 악의가 없다는 건 믿는다. 악의가 있었으면 앞서 말했듯이, 그리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테니.


사진=스타뉴스DB


나는 창작의 자유는 인정하되, 타인이 다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조절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 ‘조절’이 가장 어려운데, 사회적 약자나 타인을 다치지 않게 하려면, 상대를 알아야 한다. 지금 이 사회는 ‘남혐여혐’으로 터질 듯이 끓어오르고 있지만, 정작 무엇이 폭력이고, 무엇이 기준점인지, 또 어떤 게 정당한 남녀평등인지, 페미니즘인지 그것을 알고 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저 극심하게 고슴도치처럼 예민한 상태로 ‘공포’아니면 ‘공격’ ‘혐오’ 아니면 ‘두려움’ 이런 부정적인 국민정서가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비단 기안84뿐만 아니라, 나는 내 주위에서 이번 논란 같은 사건들을 무척 많이 보고 접한다. 남자에겐 ‘귀여움’정도로 해석되는 문제가 여자에겐 치욕스런 폭력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에피소드들 말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이번 사태의 분노폭발은 단지 기안84 한 사람에게만 향하는 분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다. 이 사건은 기안84에 의해 쏘아 올려진 ‘젠더 갈등의 폭발’일 수도.

 

코로나 19 못지 않게 심각한 이 사회의 문제가 남혐여혐 문제다. 한국 여자들은 이기적이어서 결혼을 안 한다는 싱글 남자들을 많이 봐왔다. 마찬가지로 한국 남자들의 비틀린 성 의식과 이기심 때문에 연애조차 안 한다는 여자들도 많이 봤다. 이쯤 되면 이미 반이 갈라진 한반도 남쪽에 다시 38선을 그어, 한쪽은 남자가, 다른 쪽은 여자만 살게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혐.남혐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복학왕'의 봉지은 에피소드가 문제가 된 것은, 그 에피소드에 대해 기안84가 무지했고, 무지했기 때문에 편견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20대 여성의 리얼리즘을 모르니 철저히 남성인 자신의 시각에서 그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또한 그렇게 맹렬하게 공격하는 것은 옳은 태도일까? 분노와 공격이 어떤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었던가?


기안84는 창작자로서 앞으로 모르는 것은 그리지 않고, 잘 아는 것만 그려야 한다. 모르는 것을 그릴 땐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제대로 된 시선이 생겼을 때 그려야 한다. 또한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혐오’를 ‘이해’로 바꿔 줄 제대로 된 ‘젠더교육’.

 

고윤희(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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