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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터', 가짜뉴스 세상이 만드는 몰입감 최강 스릴러

현재 대한민국 상황과 다르지 않은 분노와 증오의 현실

2020.08.11

사진제공=넷플릭스

"말은 날아가지만, 글은 남는다.” 


라틴어의 오래된 속담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헤이터’의 초반부 의미심장하게 등장하는 대사다. 폴란드 작품인 ‘헤이터’의 주인공 토메크 기엠자(마치에이 무시알로브스키)는 에세이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퇴학당한다. 기엠자는 인용 부호 표기를 깜빡했다고 변명해보지만, 교수는 법학도가 법을 어긴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말은 날아가지만, 글은 남는다”라고 힘줘 말한다. 이때 주인공의 눈빛에선 잠시 잠깐 분노가 스친다. 그는 이내 서늘한 표정을 거두고, 교수에게 그동안 감사했다며 책에 사인을 해달라 말한다.

 

어째 영 찜찜한 이 주인공은 시골 흙수저 출신이다. 오랜 시절 알고 지낸 크라우츠카 집안의 후원을 받아 법대에 입학했지만 끝내 퇴학당하고만 주인공. 퇴학 굴욕을 당한 날 저녁, 그는 크라우츠카 가족의 저녁 식사에 초대된다. 그는 퇴학당한 사실은 밝히지 않은 채 교수에게 받은 책을 꺼내 보이며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그리곤 크라우츠카 집안의 딸 가비에게 묘한 눈빛을 보낸다. 크라우츠카 가족은 주인공을 은근히 무시하는 듯 하지만 얼핏 보기엔 교양이 흘러넘친다.

 

주인공은 크라우츠카의 집에서 나오며 가비에게 7년 전 보낸 SNS 친구 신청을 수락해달라고 말한다. ‘윽!’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 지질한 주인공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어폰을 귀에 꽂고 뭔가를 열심히 듣는다. 그가 듣는 것은 바로 크라우츠카의 집에 두고 온 자신의 휴대전화. 통화 버튼을 켜놓고 크라우츠카 가족의 얘기를 엿듣는다. 이들은 주인공이 자리를 뜨자마자, 그가 촌구석 출신이라는 둥, 새우 손질도 제대로 할 줄 몰라 끙끙댔다는 둥 뒷담화를 늘어놓는다.

 

굴욕적이고 모욕적인 순간. 주인공은 번듯한 직장을 구해 짝사랑녀 가비 앞에서 당당해지고자 하지만 흙수저에게 취업은 영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바이럴 PR회사인 ‘베스트 버즈’에 한 달 계약직으로 입사한다. 베스트 버즈는 클라이언트의 SNS상 평판을 좋게 만들어주는가 하면, 동시에 경쟁사의 평판을 망가뜨리는 곳이다. 주인공은 다이어트 인플루언서의 강황 주스가 피부를 노랗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는 가짜 뉴스를 SNS에 퍼트리며 인턴 첫 미션에 성공한다.


사진제공=넷플릭스


크라우츠카 가족이 심어놓은 분노의 불씨와, 가비를 향한 뒤틀린 사랑은 주인공을 극단으로 치닫게 만든다. 강황 주스 가짜뉴스는 애교 수준이다. 다음 클라이언트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시장 후보. 주인공은 클라이언트의 경쟁 후보인 루드니츠키 후보가 난민 수용을 옹호한다는 것을 이용해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그의 성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아웃팅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극우 게임 유튜버를 포섭하기까지 이른다.

 

‘헤이터’에서 주인공이 SNS에 뿌려놓은 가짜 뉴스는 결국 현실 세계의 폭도로 이어진다. 극좌와 극우파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나와 다른 이에 대한 혐오가 역병처럼 사회에 퍼져나간다. 온라인상의 증오가 피를 불러온 지옥 같은 현실은 비단 넷플릭스 속 얘기만이 아니다. 폴란드 바다 건너 대한민국에서도 매일 일어나고 있는 비극이 아닌가.

 

우리는 무수히 많은 유명인이 근거 없는 루머와 악플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허망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악플 때문에 인터넷 연예 뉴스 댓글창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문명국가에서 정말이지 너무나도 창피한 일이다. 어디 연예계뿐인가. 외국인, 성소수자 혐오, 지독한 빈부격차,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헤이터’ 속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외 계정을 구매해 SNS에 가짜 뉴스를 만들어주는 회사가 우리나라라고 없으리란 법 없다. 실제로 선거철마다 댓글 조작 이슈가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니. 진작 ‘헤이터’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헤이터’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함께 지난 2월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문신을 한 신부님’의 얀 코마사 감독이 연출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헤이터’에서도 폴란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깊은 고민이 느껴진다.

 

제목부터 ‘증오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헤이터’인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와 증오의 기운이 넘실댄다. 길고 긴 장마철 가볍고 산뜻한 기분으로 즐길 작품은 아니지만, 현실감 넘치는 스토리, 흥미진진한 전개에 한 번 플레이하면 좀처럼 일시 정지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게임 시퀀스, 영 비호감인 주인공은 호불호 포인트가 될 것 같다.

 

김수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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