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케이팝!

2020.07.30

Mnet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i-LAND'의 참가자 23인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Mnet

지난 7 29, Mnet은 올 하반기 편성에서 킹덤이 제외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킹덤은 지난해 방송된 컴백전쟁퀸덤의 후속작으로 정상급 아이돌 그룹이 한날 한시에 노래를 발표해 순위를 겨루는 컨셉트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걸그룹을 대상으로 한 퀸덤과 달리 올해는 남성 그룹을 출연 시켜 퀸덤의 영광을 이어 가겠다는 포부로 기획되었으나 섭외가 난항이라는 소문만 무성하다 결국 편성 자체가 기약 없이 미뤄지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 상황이 더욱 촌극처럼 느껴지는 건 Mnet이 이미 지난 4킹덤출연권을 걸고 일종의 예선전 형식을 띤 로드 투 킹덤을 방송했다는 사실이다. 시청자의 외면 속에 소수점 대의 시청률이 이어진 7팀의 허망한 경연 끝에 더 보이즈가 우승을 차지하며 출연권을 따냈지만, 프로그램 제작 자체가 희미해진 상황. 말 그대로 상처뿐인 영광에 불과했다.

 

같은 채널에서 방송 중인 또 다른 아이돌 서바이벌 ‘I-LAND’ 역시 끊이지 않는 구설에 시달리고 있다. CJ ENM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손을 잡고 제작 기간 3, 제작비 200억원을 투자해 만든 아이돌 데뷔 프로젝트로 이미 수년 째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뚜껑을 열기 전부터 시작된 잡음으로 한순간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방송이 시작되기도 전 프로그램 스태프가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업무지시에 시달리다 교통사고를 냈다는 내부고발을 터뜨린 데 이어 실제로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 1명과 출연자 1명이 낙상사고를 당하는 사건마저 터졌다. 결국 24명이었던 출연진이 23명으로 조정된 건 물론 제작발표회에서 Mnet 임원진이 해당 사건에 대해 직접 사과하는 상황마저 연출되었다. 갖은 악재를 뒤로하고 방송을 강행했지만, 프로그램은 현재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저조한 시청률을 이어가고 있다. ‘I-LAND’의 실패가 이달 중순 이뤄진 CJ ENM의 거대 임원진 인사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이 업계에 공공연히 돌 정도다.

 

이 모두를 단지 치밀하지 못한 기획이 만들어낸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어두운 먹구름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 반갑지 않은 우연은 오히려 지금 케이팝을 다루는 이들이 아이돌이라는 콘텐츠를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우선 킹덤의 경우를 보자. 박봄에서 (여자)아이들까지 다양한 연차의 걸그룹이 라인업을 채웠던 퀸덤은 승리에서 YG, 정준영으로 이어지며 1년 내내 케이팝 팬들을 괴롭힌 버닝썬 게이트, ‘프로듀스 시리즈투표 조작 사태, 고 설리와 고 구하라 등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젊은 케이팝 스타 등 온통 어두운 소식만 가득했던 2019년 케이팝 신의 거의 유일에 가까운 빛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이 시청자의 관심과 사랑 속에 순항할 수 있었던 건 죽지도 않고 돌아온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주는 각종 자극이나 악마의 편집이 아닌, 출연한 6팀의 걸 그룹의 이제야 비로소 보여줄 수 있었던 숨겨진 매력과 뛰어난 무대력 덕분이었다. 우승자 마마무에 주어진 혜택인 컴백쇼가 아직도 진행되지 않은 가운데 후속 프로그램 킹덤을 위한 로드 투 킹덤이 먼저 방영되었고, 해당 프로그램의 우승자에게 주어진 혜택 아닌 혜택 역시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 4월 방송된 Mnet '로드 투 킹덤'서 우승을 차지한 그룹 더 보이즈. 그러나 하반기 예정됐던 '킹덤'의 제작이 불확실해져 팬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사진제공=크래커엔터테인먼트


‘I-LAND’의 경우는 어떤가. 영화 메이즈러너에서 영감을 받은 고급 모델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의미 없이 웅장한 세트와 건조한 내레이션은 자신들의 손으로 동료를 방출시켜야 하는 프로그램의 냉혈한 경쟁 구도를 강조하는 자극적 연출의 일환에 불과하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소설 데미안의 문장까지 인용하며 거창한 세계관을 자랑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강요된 깨어야만 하는 세계는 최후에 살아남는 12인이 되기 위해 버려야 하는 선의, 동료애, 배려 등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가장 인간적인 면모들이다. 여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들이밀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어차피 그 현실은 제작진이 공들여 만들어놓은 가상의 현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건 책임의 문제로 수렴된다. 지금 케이팝 안에서 힘을 가진 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라며, 이렇게 현실이 잔인하다며 극한의 상황을 만들고 사람을 갈아 넣지만, 그곳에서 겨우 살아남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건 어쨌든 이 모든 게 너의 선택이 아니었냐는 모르쇠뿐이다. 불필요한 서열화와 투표에 팬들이 받을 고통을 알면서도 무대에 한 번 더 오를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서바이벌에 참여하는 팀들은 마땅히 주어져야 할 보상을 제때 받지 못했다. 촬영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연습생의 이름은 당연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프로그램 보안을 위해 불미스러운 사건을 비롯한 그 어떤 것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보안서약서를 받고 자괴감을 느꼈다는 스태프의 증언이 이어진다


치열한 서바이벌에서 겨우 살아남아 데뷔한 이들은 투표가 조작되었다는 이유로 팀을 공중분해 당한다. 음악 방송 1위를 하면 대표님이 휴대전화를 주기로 했다는 인권유린적 농담 아닌 농담이 공공연한 곳에서 10여 년 간 벌어진 멤버 괴롭힘에 대한 책임을 가해자로 지목된 한 사람이 모두 지고 팀을 떠나며 사건이 종료된다. 알량한 서바이벌 형식까지 들먹일 것도 없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지금 케이팝의 현실 그대로가 '지옥도'다.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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