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데이트

‘강철비2’ 과감한 상상, 도발적인 시선

2020.07.28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세력들에 의해 더 고통받는다.” 


영화 ‘강철비’(2017)에서 두 명의 철우(정우성/곽도원)를 통해 반복된 대사다. 영국 국제관계학 교수 헤들리 불(Hedley Bul)의 말을 인용한 대사로, 양우석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의 핵이기도 했다. 그때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일까. 혹은 ‘남과 북이 주도권을 갖고 사이좋게 핵을 나눠가진다’는 동화적인 결말이 못내 걸렸던 것일까. ‘강철비2: 정상회담’은 분단의 당사자인 남과 북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 그러니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사실감 있게 보완-중축한 영화다. 이를 위해 영화는 남북미 정상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쿠데타를 빌미로 그들을 북한 핵잠수함으로 납치한다. ‘북한 1호가 남한에 온다’라는 전편 못지않은 도발적인 발상이다.


한 편의 영화가 기획되고 관객을 만나기까지 대략 3년.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시간이다. 실제로 ‘강철비’와 ‘강철비2’ 사이, 현실이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여러 번 찾아왔다.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손을 맞잡는 비현실적인 장면이 목격됐고, 이듬해 6월 같은 장소에서 남북미 정상이 한 프레임에 걸리는 장면이 목도됐다. 얼마 전,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까지도. ‘강철비2’에 붙은 ‘정상회담’이라는 부제가 조금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면, 그것이 현재 진행형인 우리 안에 기억을 건드리기 때문일 테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여기에 팍스 아메리카 사수를 위해 한반도 평화를 정치적/쇼비즈니스로 이용하는 미국, 남북통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일본과 중국의 보이지 않는 훼방,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일본 극우세력의 야욕,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패권국 미국과 신흥 강국 중국의 관계가 스크린에 걸쭉하게 뒤엉킨다. 정치적인 발언과 상상에 유독 소극적인 한국 상업 영화 안에서 ‘강철비2’는 감독이 예측하는 세계관이 가상의 모의실험 형식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구현된 결과물이다.

 

전작도 그랬지만, 양우석 감독은 가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하고, 자신이 무엇을 그리고 싶어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으며, 몇몇 장면이 다소 억지스럽다 할지라도 마음 먹은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을 지녔다. 국제정세에 대한 깊은 식견과 고민이 드러나는 대목들에서는 감독이 도발적인 소재를 단순한 소재주의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안긴다. 꼼꼼하게 취재하고 공부해 습득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할 만한 세부 묘사들도 있다. 남북문제를 오락적으로만 소비하려는 대다수 상업 영화들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그러나 국제정세에 별 관심이 없는 관객이라면 감독이 의도한 리듬에 보폭을 맞춰 따라가기 버거울 수 있다. 그것이 감상의 절대적인 단점은 아니지만,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관계의 맥을 놓치면 전체적인 재미와 긴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하려 노력까지 하고 있으니, 지인들과 함께라면 표정 관리를 잘해야 한다. 흡사 수업 시간에 홀로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심정을 느끼게 될 여지가 있으니 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의 이권 다툼이 전반부를 한바탕 휩쓸고 나면, 코미디 구간이 기다린다. 세 정상이 잠수함 속 좁디좁은 선실에 갇히는 순간부터다. 스코틀랜드 배우 앵거스 맥페이든이 연기한 스무트 미국 대통령은 연신 실제 ‘그분’을 연상시키는 제스처를 취하며 망가지기를 주저하지 않는 기행 연기로 풍자와 해학의 대상이 된다. 무엇보다 이 배우는 신나서 연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안기는데, 평소 그가 트럼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대놓고 들킨다. 그런 미국 대통령과 유머 콤비로 두드러지게 활약하는 건, 의외로 북한 위원장 조선사(유연석)다. 전에 본 적 없는 얼굴을 꺼내든 유연석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재자 캐릭터에 자신만의 성격을 부여한다. 다만, 선실에서 이뤄지는 유머는 양 대비 효용성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 없지 않다. 취향이 갈릴 지점이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한편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한경재 뿐 아니라, 이를 연기한 배우 정우성의 손발을 묶어 놓는다. 정우성은 무술 감독들이 인정하는 대한민국에서 액션을 가장 멋들어지게 소화하는 배우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알다시피 롤랜드 에머리히가 아니다. 현실에 기반한 이 영화에서 정우성은 ‘인디펜던스 데이’(대통령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외계인과 맞선다)의 빌 풀만이나 ‘에어 포스 원’(대통령이 비행기를 납치한 테러리스트를 홀로 제압하고 비행기도 직접 모신다)의 해리슨 포드처럼 액션에 능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대신 정우성은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협정에 서명 권한 초자 없는 대한민국 지도자의 외로움을 표정으로 전달해야 하는 미션을 부여받아, 이를 들뜨지 않게 수행해낸다. 청춘의 표상이었던 이 배우는 최근 몇 년간의 작품에서 어른의 면모를 드러내며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한 느낌이다.

 

캐릭터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여성 캐릭터 활용에 대한 비판과 고민은 배우 김용림을 국무총리로 설정함으로써 막아내려 한 듯 보인다. 김용림 특유의 강렬함 덕분인지, 캐릭터 비중은 작지만 존재감은 작지 않게 다가온다. 대통령 영부인을 연기한 염정아 활용이 안일하다는 지적(극 후반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도 나오는 분위기인데, 이에 대해서는 감독 나름의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가령 남편이 납치된 상황에 호응하는 아내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줬더라면, 빤한 신파 형식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테니.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극이 너무 분산된다.


‘강철비2’에서 가장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는 잠수함 부함장을 연기한 신정근이다. 이는 잠수함 액션 중심으로 돌아가는 후반부 서사와 무관하지 않다. ‘강철비2’의 미덕 중 하나라면, 잠수함 영화로서의 장르적 재미가 기대 이상으로 잘 살아있다는 점이다. 세 정상이 납치되는 장소가 핵잠수함이라는 발상도 흥미롭지만, 감독은 영리하게도 한 가지 설정을 더 추가했다. 잠수함에 탄 북한군 모두가 쿠데타를 지지하는 세력이 아니라는 것. 북의 강경파와 온건파가 좁디좁은 잠수함 안에 엉키면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정치 스릴러로서의 재미도 획득한다. 긴장감 있게 설계된 수중 군사 전술 등에선 양우석 감독이 왜 ‘밀덕(밀리터리 덕후)’으로 불리는지를 확인하게 한다.

 

통일에 대한 질문으로 문을 닫는 이 영화의 에필로그는 득만큼 실이 많아 보인다. 너무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중언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여운을 일부분 자르며, 영화 스스로가 자신의 이야기에 너무 끓어올랐다는 인상도 안긴다. 그러나 합리적인 의심과 도발적인 시선이 나란히 달리는 ‘강철비2’는 대체적으로 흥미롭다.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장르 영화들이 쉬지 않고 흡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성적인 문법에 기대지 않고 상상의 폭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 결과물이란 점에서 특히나 반갑다.


정시우(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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