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트롯’ 방심했다가 훅 들어오는 마성의 매력

2020.07.23

정동남, 사진출처=방송캡처

바야흐로 트로트 전성시대다. TV조선 ‘미스트롯’은 론칭 당시만 해도 과연 트로트 오디션이 통할까 싶었지만 송가인이라는 스타를 탄생시키며 ‘트로트도 된다’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남자판 송가인 탄생을 기대했던 ‘미스터트롯’은 우승자 임영웅뿐만 아니라 영탁, 이찬원,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 김호중 등 상위권 진출자 모두를 스타 반열에 올려놓으며 트로트 광풍에 불을 지폈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되고, 팬덤의 행동력은 가히 아이돌을 뛰어넘는다.

 

TV조선 트로트 시리즈의 성공으로 지상파, 케이블 너나 할 것 없이 트로트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TV를 틀었다 하면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채널을 돌렸다 하면 트로트 스타가 시청자를 맞이한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등 아이돌밖에 모르던 아이들이 ‘찐이야’, ‘보라빛 엽서’를 부르기 시작했다. 거의 반세기 만에 찾아온 트로트 열풍 아닌가. 제법 반가운 일이다.

 

식을 줄 모르는 트로트 열풍 속에 또 하나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이 론칭했다. 지난 7월10일 첫 방송된 MBN ‘보이스트롯’이 그 주인공이다. 방송 전부터 ‘200억 프로젝트’, ‘초대형 서바이벌’ 등 규모감을 과시했던 ‘보이스트롯’은 방송 2주 만에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동시간대 방송되는 지상파, 케이블, 종편 등 전체 채널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이는 MBN 사상 최고 시청률이기도 하다. MBN이 시청률 마의 벽 10%대를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이스트롯’이 기존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과 차별화를 두는 대목은 ‘스타들의 오디션’이다. 방송 사상 최초로 80여 명의 연예인이 총출동했다. 그렇다 보니 1라운드가 펼쳐지는 1회와 2회에서는 출연진의 실력차가 들쑥날쑥했던 것이 사실. 80명 출연자 전원이 프로급 실력은 아니었단 얘기다. 방송 직후 일부 출연진에 대해 “실망했다”, “명절 특집 무대냐”라는 반응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이스트롯’에는 이따금 시청자들의 마음을 확, 움켜쥐는 순간들이 있다. 방심했다가 나도 모르게 함께 울어버린 순간. 1회의 안희정과 김현민, 2회의 정동남이 그러했다.


김현민(위)과 안희정. 사진출처=방송캡처


전 축구선수 안정환의 사촌 누나이자 재즈 싱어인 안희정은 대중에겐 그리 익숙한 가수가 아니다. 잔뜩 긴장한 채 무대에 오른 이 낯선 중년의 가수는 나훈아의 ‘공’을 열창했다. 트로트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음을, 한의 정서가 담긴 장르임을 온몸으로 뿜어내며 무대를 꽉 채웠다. 녹록지 않았던 지난날이 떠오른 안희정은 2절의 절반을 오열하며 불렀다. 대기실에서 이를 지켜보던 출연자들은 물론, 심사위원들마저 함께 울었다. 그가 밝힌 첫사랑과 이혼의 아픔,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사연을 몰랐더라도, 오롯이 무대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안겼다.

 

무명가수 김현민은 첫 방송 직후 가장 뜨거운 집중을 받은 이다. ‘보이스트롯’ 방송 전만 해도 포털사이트 인물 검색도 안 됐던 그는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가창력과 구성진 목소리로 올크라운을 획득했다. 심사위원 진성은 자신의 노래 ‘동전인생’을 부른 김현민에 대해 “나보다 잘 불렀다”라는 최고의 극찬을 쏟아냈다.

 

2회에서는 정동남이 반전 카드였다. 대중에게는 콧바람 차력사, 이마 한가운데 크게 박힌 점으로 유명한 정동남은 행사장은 물론, 어느 무대에도 올라본 적 없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떨린 적은 없다. 입이 바짝 마른다”던 그였지만 간드러진 꺾기 신공으로 ‘용두산 에레지’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정동남은 올크라운을 받은 후 객석을 향해 큰절한 뒤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다. 그는 뜨거운 눈물과 함께 남모를 서러움을 쏟아냈다. 우리가 오랫동안 익숙하게 알던 정동남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지워지고 트로트 앞에서 신인처럼 긴장하는, 모처럼 받는 박수에 한없이 설레하는 ‘인간 정동남’만이 그 자리에 있었다.


사진제공=MBN

 

이처럼 ‘보이스트롯’에는 대중에게 잊힌, 혹은 대중의 편견에 갇힌, 혹은 대중에겐 익숙하지 않은 도전자들이 무려 80명이나 출연한다. 앞서 언급했듯 80명의 실력이 모두 만점 수준은 아닐 순 있겠지만, 그 진심만큼은 묵직하다는 것을 1회와 2회를 통해 증명했다. 기교만큼이나 부르는 이의 감정이 중요한 트로트이기에 진심이 아니었다면 금방 들통났을 터다.

 

일단 출발은 산뜻하다. 금요일 오후 10시부터 무려 3시간에 걸쳐 방송되는 것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트로트의 열풍에 힘입어 거둔 성적표는 아닐 것이다. 다채로운 출연자, 그만큼이나 다채로운 사연들, 사연들보다 더 감동적인 무대 덕분이었을 테다.

 

남은 과제는 보다 정돈된 실력이다. 사실상 예선전과 같았던 1라운드 이후엔 출연진들의 실력 격차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해본다. 과연 ‘보이스트롯’에는 또 어떤 반전의 무대가 펼쳐질지, 트로트 열풍의 정점에 설 주인공은 누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김수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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