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나오는 '왜색 논란' 왜 못 막나?

2020.07.22

'여름방학', 사진제공=tvN

또 ‘왜색 논란’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나영석 PD가 연출하는 케이블채널 tvN ‘여름방학’이 그 대상이다. 호감도가 높은 두 배우인 정유미, 최우식까지 배치했지만 왜색 논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왜색’은 한국 방송가에서 첫 손에 꼽히는 금지어다. 촬영 및 편집 과정에서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최근 SBS 드라마 ‘더킹-영원의 군주’와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을 포함해 세 차례나 불거졌다. 이쯤되니 궁금해진다. 왜색 논란은 안 피하는 것일까? 못 피하는 것일까?

 

#뭐가 문제였나?


‘여름방학’의 경우 배경으로 쓰인 집이 일본의 적산가옥과 유사하고, 전반적인 흐름이 일본 소니의 게임 ‘나의 여름방학’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작진은 "다락과 3개의 마당이 있어 출연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적합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이 느끼실 수 있는 불편함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고, "해당 게임은 알지 못하며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더 킹:영원의 군주’은 포스터 속에 등장한 대한민국 궁궐의 이미지가 일본의 사찰과 몹시 유사했고, 극 중 대한민국의 평행세계인 대한제국의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 또한 일본 왕가의 문양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제작사 측은 포스터 속 2층 목조건물은 일본 사찰의 일부 특징을 사용했다고 실수를 인정한 후 사과의 뜻을 밝혔고, 황실 문양에 대해서는 "국회나 행정부가 황실을 중심으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오얏꽃이 오얏꽃을 감싸는 ‘이중 오얏꽃’ 형태로 디자인됐으며 일본 왕가 문장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왜색 논란은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발목을 잡았다.


지난 6월에는 ‘놀라운 토요일-도레미마켓’은 게스트로 참여한 아역 배우 김강훈이 입고 나온 의상에 쓰여진 ‘大一大万大吉(대일대만대길)’이라는 문구가 도마에 올랐다. 이는 일본 전국시대 이시다 미츠나리의 가문(家紋)이고, 이시다 미츠나리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일으키며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는 주장이었다. 결국 제작진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점 사과의 말씀 드린다"며 "해당 의상은 제작진이 평소 거래하는 의상 대여 업체에서 구한 것이며 출연자 김강훈은 물론 제작진, 대여 업체도 알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더 킹:영원한 군주'서 논란이 됐던 장면 캡처본.

 

#왜 문제인가?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장 가깝고, 최대 한류 콘텐츠 소비국이기도 하다. 숱한 한류스타들이 일본에서 활동하며 일본에 콘텐츠가 수출되길 원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한국으로서 일본을 정서적으로 완전히 끌어안기 어렵다. 일본이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여전히 극우 세력은 일본군 위안부가 강제 징용이 아니라 자발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동해를 일본해라 주장한다. 이런 정치적, 역사적 대립은 일본 문화와 민족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한 방송 관계자는 "일본에 대해서는 적정선을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한류 시장 측면에서 봤을 때는 공생 관계지만, 생산자 입장에서는 콘텐츠 속에 왜색을 드러내는 것이 치명적이기 때문에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 왜색 논란에 휩싸인 콘텐츠들의 경우 불거진 시점이 좋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국내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이뤄지고 있고,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아베 정부가 마스크 사용을 적극 수용하지 않아 확진자가 속출하게 만드는 등 이미지가 극도로 좋지 않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경험하는 속에서 일제 강점기를 경험하지 않은 신세대들에게도 반일 감정이 커졌다. 결국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문화 콘텐츠가 왜색이 짙은 설정을 걷어내지 못한 것은 치명적 ‘사고’라 볼 수 있다.

 

#왜 반복되나?


최근 왜색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왜색 논란의 경우 이로 인한 대중적 반발을 고려했을 때 프로그램의 존폐를 고민해야 할 만큼 치명적인 오류이기 때문이다. ‘노이즈 마케팅’ 정도로 이용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라는 의미다.


우선 ‘무지’(無知)에서 오는 실수일 가능성이 크다. 건축양식이나 의상의 경우 전문적인 소견이 없다면 표현 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조차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놀라운 토요일’ 제작진이 "현장에서도 의구심을 가지지 못한 채 녹화가 진행됐고 방송까지 이뤄졌다. 해당 제보 글을 뒤늦게 확인했고 필요한 조치 후 댓글 남긴다"며 솔직하게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시인한 것이 대표적 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공공의 전파를 이용하는 제작진이 "몰랐다"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해명이 될 수 없다. 결국 그들의 ‘안일함’이 이 같은 사태를 키웠다고 볼 수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각 방송사들은 극우 사이트인 ‘일간 베스트’(일베) 이미지를 사용해 문제가 된 후 공식 데이터베이스의 자료만 쓰도록 조치하고 있다"며 "이처럼 여러차례 반복되는 논란의 경우 이를 거를 수 있도록 사전 검토하고 조치하는 전문 집단을 배치하는 것이 필요한데 각 방송사들의 이러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최근 이런 논란이 더욱 늘어나는 또 다른 이유는, 대중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늘었기 때문이다. 방송을 지켜보는 이들 중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각종 SNS나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공론화되는 등 언로가 확대된 셈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방송을 지켜보는 대다수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콘텐츠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중 안에는 각계각층의 전문가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그들의 눈을 통해 잘못된 표현이 걸러지고 다양한 SNS를 통해 이런 지식이 공유되고 확산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서 논란이 됐던 장면 캡처본.

 

#막을 방법은 있나?


"왜색 논란을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이 있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콘텐츠가 쉼없이 쏟아지지만 모든 것을 검증하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후약방문이라도, 잘못된 표현이 발견될 때마다 이를 바로 잡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민족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을 맞은 지 어느덧 75년이 됐다. 일제 강점기를 경험하거나 기억하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고, 부지불식간 왜색이 짙은 콘텐츠를 만들 가능성 또한 높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공공의 기능을 갖는 방송이 스스로 왜색 논란을 바로잡으려는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고, 자칫 논란이 불거졌을 경우 이를 본보기 삼아 모두가 왜색 논란에 대해 경각심을 갖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각 방송사들이 내부 심의 과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고 발생 후 잘 수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예방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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