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ㅣ K-좀비를 살아숨쉬게 만든 아주 특별한 공간②

2020.07.14

사진제공=NEW

연극의 4요소는 통상 배우, 무대, 희곡, 관객을 포함한다. 이는 영화도 비슷하다. 희곡(시나리오)을 바탕으로 배우들이 연기해 작품을 완성하면 관객들이 이를 보게 되는 구조다. 여기서 하나가 남았다. ‘무대’. 영화 밖에서 보자면 극장이 무대다. 하지만 영화 속의 개념으로 보자면 주인공이 사는 공간이 바로 무대가 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으며 봇물처럼 쏟아지는 ‘K-좀비’ 영화를 보면 공간의 중요성을 더 쉽게 알 수 있다. 좀비 영화는 그동안 서양에서 숱하게 만들어졌다. 충무로는 여기에 가족 간의 사랑과 같은 한국적 요소를 버무림으로써 새로운 재미를 창출하며 K-좀비라는 수식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K-좀비 영화에는 또 하나 특별한 구석이 있다. 그게 바로 공간이다. 

 

#K-좀비의 시작, ‘부산행’의 기차


2016년 개봉된 ‘부산행’은 충무로 최초로 좀비를 소재로 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부를 만하다. 이 영화는 160여개 나라에 수출됐고, 월드 와이드 흥행 수익 1억4000만 달러(약 1689억 2400만 원)를 달성했다. 이 영화가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하면 제작비 등의 규모가 상당히 작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셈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해외 관객들이 ‘부산행’에 열광하게 만드는 대표적 요소가 바로 기차다.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으로 가는 KTX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좀비의 사투는 공간적 제약을 설정함으로써 긴박감과 몰입도를 높였다.


일단 탑승객들은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기차 밖으로 내릴 수 없다. 이는 자살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각 칸과 칸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를 뚫고 가는 수밖에 없다. 인간과 좀비 간 살과 살이 부딪히는 백병전을 가능케 만드는 요소다.


사진제공=NEW


이런 의미에서 ‘부산행’은 필연적으로 마동석과 같은 남다른 ‘피지컬’을 가진 한국형 히어로를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 칸이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개떼처럼 달려드는 좀비 떼를 막기 위해서 ‘한 방’으로 이들을 날려 보낼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달리는 기차는 좀비를 달리고 협동하게 만들며 더욱 강력한 존재로 각인시켰다. ‘부산행’ 개봉 당시 영국 메트로의 시머스 더프 기자는 "They run and work together"(‘부산행’의 좀비는 달리고 협동한다)라고 평했다. 달리는 기차를 따라잡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이 기차를 멈추게 하기 위해 엉겨 붙으며 협동하는 모습은 ‘기차’라는 공간을 통해 빚어낼 수 있었던 K-좀비 만의 개성이었다.

 

#‘부산행’을 잇는, ‘반도’의 쇼핑몰


배우 강동원, 이정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 ‘반도’는 ‘‘부산행’ 이후 한국은 어떨까?’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다시금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이성이 무너지고 야만성이 지배하는 세상을 바탕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담고 있다.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좀비로부터 생존한 631부대원들이 사는 아지트다. 이 곳은 태국의 버려진 쇼핑몰 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세트다. 물에 잠긴 대형 쇼핑몰에 물고기가 서식하는 모습을 본 제작진은 600평짜리 2층 구조의 대형 세트를 직접 만들었다. 쇼핑몰로 이어지는 지하차도의 경우, 실제 주차장에 폐차 80대와 흙 50톤을 공수해 침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반도', 사진제공=NEW

좀비 영화의 마니아라면 쇼핑몰은 낯설지 않은 공간이다. 좀비 영화의 ‘거장’이자 ‘아버지’로 불리는 고(故) 조지 로메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인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과 ‘시체들의 새벽’ 등에서 이미 인간과 좀비가 대결하는 공간으로 쓰인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퀀스는 미국 자본주의와 현대인의 무분별한 소비 문화에 일침을 가했다는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연 감독은 지난 9일 열린 ‘반도’의 시사회가 끝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쇼핑몰은 조지 로메로 감독 영화 때부터 등장한 클래식이기도 하고 자본주의의 상징이 무너진다는 설정 자체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징이라 생각한다"라며 "조지 로메오 감독을 계승했다고 생각하시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반도’는 공간 창조에 힘을 준 흔적이 역력하다. 좀비떼로 인해 고립된 한국에 4년 만에 돌아온 일행이 마주하는 인천항의 모습을 비롯해 카체이싱이 이뤄지는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제작진은 오래된 아스팔트의 갈라지고 깨진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실내 세트에 50m에 달하는 아스팔트 도로를 제작하고 직접 잡초를 심고 기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가장 안전한 곳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전락한, ‘#살아있다’의 아파트


요즘 대한민국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키워드는 부동산, 그 중에서도 아파트다. 서민이 갖는 평생의 꿈이 남 눈치보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아파트 한 칸 마련하는 것이라는 넋두리 속에, 영화 ‘#살아있다’가 제시한 공간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t살아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살아있다’는 아파트 단지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아파트는 연결이자 단절의 상징이다. 벽 하나를 두고 이웃이 살고 있지만, 정작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주인공은 옆집 사람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어 불안하다. 그리고 쉽사리 문을 열수도 없다. 복도에 좀비가 서성이는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가진 구조는, 알량한 문 하나만 열리면 집안으로 뛰어드는 좀비로부터 피할 길조차 없어지는 외통수다. 물론 창문 밖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3층 아래가 아니라면 추락사라는 절망만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관객들이 마주하는 ‘좀비 in 아파트’는 살풍경일 수밖에 없다.


이를 리얼하게 보여주기 위해 제작진은 3개월에 걸쳐 1000평 부지에 아파트 단지를 거대한 세트로 구축했다. 특히 개방형 구조인 복도식 아파트의 특징에 집중해 실내이자 실외이기도 한 좁은 복도에 좀비들이 들이닥칠 때 느끼는 답답함과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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