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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볼까?" 영화 홍수 속 현명한 영화 선택 법

2020.06.22

사진제공=jtbc

대한민국 사람들이 유난히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세간에 알려진 영화, 개봉을 앞둔 영화에 대해 제법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막상 일 년에 영화 몇 편을 보느냐고 물어보면 할 말은 없다. 그나마 띄엄띄엄 영화관에 가긴 했지만 그나마 코로나19로 인해 발길을 끊은 지 오래.

 

나의 영화에 대한 지식은 모두 영화 소개 프로그램 덕이다. 이쯤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인지, 영화를 콘텐츠로 다루는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것인지 헛갈린다. 닭과 달걀과의 관계보다 더욱 복잡미묘한 이 주제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일단 내가 즐겨보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부터 나열해 보기로 한다.

 

MBC ‘출발비디오여행’은 1993년 방송 시작 당시부터 지금껏 거의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놀랍다. 그 세월 동안 우직하게 보고 있는 나나, 방송을 계속하고 있는 방송사와 제작진 모두). 이 프로그램은 결코 놓치지 않고 기다려 본다. 요즘말로 ‘찐팬’이다. JTBC ‘방구석일열’ 또한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KBS2 ‘영화가 좋다’와 SBS ‘접속! 무비월드’는 주로 재방송으로 본다. 그리고 가입자만 볼 수 있는 Btv ‘영화당’까지.

 

그렇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제법 많다. 그런데 특히 공중파 영화 소개 프로그램들을 보는 이들은 누구나 느끼겠지만 매주 소개되는 영화들이 대개 엇비슷하다. 개봉 시점에 맞춰 홍보가 이뤄지기 때문이리라. 인터뷰로 얼굴을 내미는 배우들도 그렇다. 물론 그래도 나는 상관이 없다. 각 방송을 비교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기 때문이다. 홍보사에서 주는 예고 영상이나 보도자료는 같을 텐데 각 방송마다 소개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나같은 시청자를 위해 차별화를 고민하는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감사를). 제작진의 노고는 개봉 영화가 아닌, 다른 코너에서 빛을 발한다. 수작임에도 널리 알려지지 못한 작품을 발굴해 소개하고,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영화 관련 사실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보여준다.

 

영화만큼 취향이 많이 작용하는 장르도 드물다. 우리 가족은 다섯 명인데 선호하는 장르가 제각각이다(그래서 같이 영화 한 편 보려다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아무리, 모든 사람이 좋다, 재미있다, 감동적이라고 해도 본인이 끌리지 않으면 보기가 쉽지 않다. 내가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인 듯하다. 편식을 막아준다는 것. 스스로는 고를 리 없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볼 자신이 없는 영화들을 알차게 편집해 해설까지 곁들여주니 어찌 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

 

선택 장애를 해결해 주는 것도 이 프로그램들의 장점이다. 주말, 시간이 나면 주로 넷플릭스나 Btv에서 영화를 본다. 정확히는 영화를 보고 싶다. 그런데 선택을 못한다. 당황스럽다. 그렇게 수많은 영화들이 있는데 고르지를 못한다니! 전문가에게 상담이라도 받아보고 싶은 이 심정을 다른 이들은 알까. 풍요로운 영화의 향연 속에서 어쩔 땐 헤매다 헤매다 결국 포기하고 말 때도 있다. 소중한 두 시간 남짓을 재미없는 영화로 망쳐버리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너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럴 때 방송에서 소개해 준 영화 제목이 눈에 띄면 얼마나 기쁜지!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한 편을 시작부터 끝까지 꼼꼼히 보는 것이리라. 책도 마찬가지. 모든 작품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아예 보지 않는 것보다는 일부분이라도 보는 것이 낫다는 것이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장편 소설을 다 읽고나면 막상 나중에 기억나는 것은 단편적인 장면이나, 짧은 문구일 때가 있다(대개는 ‘완독’이라는 목표를 향해 사유와 괴리된 채 눈으로만 활자를 훑었을 때의 결과지만). 그런가 하면 잠시 우연히 펼쳐진 단 한 페이지만 봐도 그 속에서 평생 기억될 감동으로 남는 구절을 찾을 수 있다. 산다는 것도 그런 거니까. 정말 우연한 기회와 인연으로 생각하지 못한 길로 빠져들고 상황에 맞닥트리는 것. 주로 슬픈 결말이 많다고…느껴질 수도 있지만. 덕분에 미처 몰랐던 보다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이렇게 쓰고 보니…그렇다. 전까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나는 사실 영화보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출발 비디오여행’과 ‘방구석일열’, ‘영화당’이 없는 일상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 얄팍하고 인내심 없는 영화팬을 위해, 부디 이 프로그램들이 오래오래 장수하기를 바란다.

 

이현주(칼럼니스트/플러스81스튜디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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