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 일상의 불안을, 오늘의 긍정으로

9년 만에 한국 공연! 브로드웨이 감성 그대로

2020.06.18


“'렌트'는 지금까지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구식으로 만들었다.” 


1996년 브로드웨이에 '렌트'가 소개되었을 때의 평이다. 오페라 '라 보엠'을 1990년대 뉴욕의 가난한 예술가의 이야기로 가져온 '렌트'는 에이즈와 마약, 동성애 등 당시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고민들을 록 음악에 담아내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은 젊은 층에게 인기 없는 장르였지만 '렌트'의 공연장 앞에는 저렴한 티켓을 구하기 위한 젊은이들의 행렬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불안한 미래 속에서도 오늘을 긍정하는 메시지는 젊은이들을 위로했고, 조나단 라슨의 혼신을 갈아넣은 록 음악은 그 자체로 충분히 위안이 되었다. 작품의 작곡가이자 작사가이며 작가이기도 했던 조나단 라슨은 '렌트'의 오프 브로드웨이 첫 공연을 앞두고 대동맥혈전으로 생을 마감했다.

 

'렌트'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2000년이다. 브로드웨이 최신 히트작을 시차 없이 국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되었다. 파격적인 소재로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의 2000여 석을 연일 가득 메워 추가 공연을 하는 이례적인 상황까지 발생했다. 2011년 이후 한동안 국내에서 공연되지 않았던 '렌트'가 9년 만에 막을 올렸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렌트'는 스몰 라이선스로 국내 창작진이 우리 식으로 해석한 작품이었다. 이번 '렌트'는 미국 공연에서 엔젤로 참여하고 오리지널 연출가 마이클 그라이프와 작업한 앤디 세뇨르 주니어가 내한해 원작에 가까운 정서를 담아냈다. 철재와 합판으로 표현한 허름한 뉴욕의 건물들은 오리지널 공연의 시크함을 유지하면서도 조금 화려해지고 따뜻해졌다.

 

'렌트'의 배경은 1990년대 초 가난한 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이다. 무명 작곡가 로저, 밤무대 댄서 미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마크, 행위예술가 모린, 그의 애인이자 변호사인 조앤, 복장도착자 엔젤, MIT 공과대 교수 콜린 그리고 그 상대편에 옛 동료였지만 부자와 결혼해 졸지에 부동산 갑부가 된 베니가 등장한다. 이들은 가난한 예술가거나 동성연애자, AIDS 양성 반응자 중 하나거나 모두 다이다. 로저와 미미, 엔젤과 콜린, 모린과 조앤의 사랑이 극의 중심에 놓여 있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는 불안정한 미래를 안고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의 불안이다. 무엇보다도 에이즈에 대한 공포는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본질적으로 위태롭게 한다. 모티프가 되었던 오페라 '라 보엠'의 예술가 역시 그림을 태워 추위를 이겨야 할 정도로 가난하고 이들 중 몇몇은 결핵을 앓았다. '라 보엠'의 결핵은 예술가의 가난과 궁핍을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장치였다. '렌트'의 에이즈는 보다 실존적이다. 에이즈로 언제 갑자기 덮칠지 모르는 죽음은 젊은 예술가들의 불안을 본질적으로 흔든다.



불안하지 않은 젊음은 없다. 죽음의 공포가 짙게 내려 깔려 있지만 '렌트'의 젊은 예술가들은 좌절 대신 희망을, 침묵 대신 자유를 노래한다. 아지트를 허물고 개발하려고는 개발업자를 조롱하고,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빌려 쓰는 것이므로 집세를 내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불안한 현실에 주눅 들기보다는 보헤미안 정신으로 그것을 가볍게 넘어선다. 초연 당시 젊은 관객들이 현실적인 고민을 다룬 소재에 공감하면서도 위로를 받았던 이유이다. 불안하고 미래를 알 수 없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행동하라는 '렌트'의 정신 ‘No day, but Today(내일은 없어, 오직 오늘뿐)’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위안과 용기를 준다.

 

2020년 '렌트'는 젊고 능력 있는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되어 한국 뮤지컬의 미래를 긍정하게 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공연한 '렌트' 중 원작의 인물을 가장 잘 살려낸 공연이었다. 전체가 노래로만 이루어진 성쓰루 뮤지컬로 유기적인 드라마보다는 노래 하나, 하나의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이번 '렌트'의 배우들은 조나단 라슨의 아름다운 노래를 음악적으로나 드라마적으로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로 보여주었다. 같이 마음껏 소리 지르고, 손가락 까닥거리며 관람하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누르고 정좌하고 봐야 했다. 코로나가 풀려 좀 더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8월 23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박병성(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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