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구름과 비', 코로나 시대 묘하게 와닿는 메시지!

탄탄한 이야기에 배우들의 열연 더해져 호평 이어져

2020.06.10
사진제공=TV CHOSUN

요즘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TV조선 주말극 ‘바람과 구름과 비’(극본 방지영, 연출 윤상호)는 ‘세상이 바뀌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구나’를 느끼게 한다. 세월이 흘러도 세대불문 관심을 받는 명리학과 요즘 한창 드라마 소재로 떠오른 사이코메트리가 어우러진 ‘바람과 구름과 비’는 조선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늘 앞날이 궁금한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이야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무지 끝이 나지 않는 코로나 정국은 사람들을 불안이라는 깊은 심연에 빠지게 하고 있다. 그에 앞서서는 4차산업혁명이라면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시대정신이 돼 우리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는 이야기로 도배가 되면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이들의 화두가 됐다. 내 삶과는 무관하다고 애써 모른 척해도 이미 물밀 듯 밀려온 디지털의 시대가 나의 생업을 위협한다고 느낀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정답을 찾느라 마음이 분주했다. 담보되지 않은 내일에 대한 상념이 늘 우리를 동요하게 했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은 더욱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하면서 고민을 깊게 만들고 있다.

‘바람과 구름과 비’를 보면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다. 병약한 철종의 후계를 걱정하는 대비나 종친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항간에 내로라하는 무속인들의 말에 기대어 자신들의 세력을 지키려 한다. 굳이 그렇게 지체 높은 분들이 아니어도 결혼이 늦은 처녀가, 과거에 계속 낙방하는 한량 등이 점집을 찾는다. 모두가 앞날이 불안해서다. 장동 김문의 세도정치로 시름이 깊은 조선은 조금 후면 근대사의 회오리에 빨려들어갈 것이다. 불안과 변화의 시대 앞에서 고민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그 중심에는 남녀주인공 최천중(박시후)과 이봉년(고성희)이 있다. 과거시험에서 장원 급제하는 등 전도유망했던 최천중은 아버지가 역모를 했다는 누명으로 숨어지내다가 명리학에 통달한 점바치가 돼 세상에 돌아왔다. 이봉년은 철종의 딸로 옹주라는 귀한 신분인 동시에 무녀의 딸로서 물건을 만지면 물건 주인의 운명을 내다보는 등의 신묘한 영력을 지녔다. 이들이 자신들의 남다른 능력을 이용해 앞으로 새로운 왕을 세우는 킹메이커가 된다는 게 이 드라마의 주요 골자다.

사진제공=TV CHOSUN


여기서 최천중이 그 새로운 왕의 재목으로 흥선군(전광렬)의 둘째 아들을 지목했다는 점이 드라마를 더 흥미롭게 한다. 단명한다는 자신의 사주에도 불구하고 최천중은 ‘끊어진 곳에 다시 길을 만들라’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 하는데, 그 운명을 흥선군과 그의 아들에 걸었다. 흥선군이 대원군이 되는 조선 왕조 역사의 기본 틀을 흔들지 못하는 탓이겠지만, 주인공이 결국에는 조선이 망하고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기는 근대사가 되는 선택의 당사자가 된다는 사실은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한다.

우리가 운명을 알 수 있다면,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하게 되는데, 이 드라마는 궁극적으로 그 반대를 예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서 과거에 연신 낙방한 한량은 최천중의 예언대로 또다시 과거에 낙방하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분풀이를 하며 어머니와 누이를 가두고 집에 불을 지르는 악행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미래를 안다고 한들 더 나은 선택을 하고 더 잘 사는 건 다른 문제라는 걸 보여준다.

이처럼 초반뿐이지만, ‘바람과 구름과 비’는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만큼이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사와 의미들로 보는 재미를 높인다. 최천중은 지난 10년간 불운으로 과거에 낙방했다는 한량에게 오히려 그때가 어머니와 누이의 헌신 덕분에 호의호식했던 길운이었다면서 앞으로의 불운에는 길운이었을 때 최선을 다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길운이었던 10년간 최선을 다했으면 불운이 와도 중간은 갔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덧붙였다. 요즘 시쳇말로 정말 뼈 때리는 말로서, 한량에게뿐 아니라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든 이를 반성하게 하는 메시지였다.

이같은 ‘바람과 구름과 비’는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돼 10권의 단행본으로 엮어진 이병주의 동명의 대하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탄탄한 원작이 있어서 지금 같은 통찰력과 완성도를 보이는 드라마가 됐구나 싶은 동시에 살아있는 역사의 교훈은 어느 시대에 빗대어도 손색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당시 유력지에 3년간 연재됐다는 건 그만큼 인기가 높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게다가 이 소설은 1989년부터 1990년까지 KBS에서 50부작으로 드라마화된 바 있다. 40년 전 인기소설은 30년 전에도 드라마로 리메이크됐고, 오늘날 또다시 새로운 드라마로 세상의 빛을 보고 있다. 세월을 관통하는 이야기의 힘을 증명한다.

사진제공=TV CHOSUN

원작에 힘입어 김종학 프로덕션에 몸담고 MBC ‘태왕사신기’를 통해 사극에 대한 노하우를 쌓기 시작한 윤상호 PD의 연출에 날개가 달린 모습이기도 하다. SBS ‘비천무’, MBC ‘탐나는도다’, SBS ‘사임당, 빛의 일기’, MBC ‘이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사극으로 경험치를 높인 게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남다른 연출로 구현되는 모습이다. 조명과 미술 등에 이르기까지 디테일한 연출이 고급스러운 장면들을 만들어내며 눈을 즐겁게 한다. 

배우들의 호연들도 한몫하고 있다. 박시후와 고성희 두 배우는 오롯이 캐릭터로 보이게 만들며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흥선군이 된 전광렬은 호랑이의 눈을 가지고 발톱을 숨긴채 후일을 도모하면서도 장동 김문 앞에서는 비굴하게 몸을 낮추는 극과 극의 연기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이루는 대비가 점찍은 왕위 계승 후보로서 야심을 드러내고 있는 이하정 역을 안정적으로 그리며 가수가 아닌 연기자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오랜만에 TV로 만나는 웰메이드 사극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즐겁다. 또한,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인생의 고민을 덜어주는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작은 기대감에 주말을 더 기다리게 된다.

조성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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