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욱의 델리게이트

'슬의생'이 알려준 '슬기로운 우정 유지법'

2020.06.03

사진제공=tvN


기나긴 인생길에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친구 하나가 주위에 있다면 이 세상 무엇도 두려울 게 없다. 평생을 함께할 친구란 인생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쳇바퀴 도는 일상에 빠져 지내다 주위를 둘러보면 곁에 서 있는 친구가 얼마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세월의 흘러 삶의 교집합이 줄어가면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의 순리. 사는 곳이 멀어지고 생활수준이 달라지고 공통화제가 줄어들면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에서 ‘영원한 친구’란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최근 시즌1이 막을 내린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극본 이우정, 연출 신원호)의 인기를 이끈 가장 큰 원동력은 여러 개가 있지만 가장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건 다섯 주인공 ‘99즈’ 이익준(조정석) 김준완(정경호) 안정원(유연석) 채송화(전미도) 양석형(김대명)의 우정. 대학시절부터 죽고 못 살던 동기 친구들이 같은 직장에서 일하며 공통된 취미인 밴드활동을 함께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모두가 꿈꾸지만 현실 생활에선 이루기 힘든 판타지기에 더욱 대리만족감을 느끼게 하며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


그러나 12부 내내 이들의 관계들을 지켜본 시청자들은 알 것이다. 5인방이 나름 얼마나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지를. 한 번 친구가 됐다고 가만히 있어도 영원히 친구일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이들에겐 없다. 끊임없이 배려하고 존중하며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우정을 상위 순위에 놓는다.


사진제공=tvN


살다보면 친구관계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게 사실. 그러나 이들은 이 관계에 시간과 돈, 감정을 소비하는 걸 결코 아까워하지 않는다. 이런 력의 과정도 냉소적인 사람들에게는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착한 이들만의 세상’으로 폄훼되며 판타지로 보일 수 있는 대목. 그러나 소중한 걸 갖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고 양보해야 한다. 이런 부분이 다소 부족한 현실성을 배가하며 공감대의 폭을 넓혔다. 인생을 살아본 사람들이 보기엔 참 현명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제작진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는 이들이 20년지기로 지낼 수 있는 우정의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캐릭터 설정부터 기본 값을 설정해놓았다. 다섯명 개성과 성격은 다 다르다. 그러나 공감대를 이루는 부분이 많다. 우선 다섯 명 다 자신의 일을 엄청 사랑하고 의사라는 직업에 투철한 사명의식을 갖고 있는 본투비 워커홀릭 의사다. 수술대 앞에선 냉철한 의사지만 환자를 대할 땐 인간미를 결코 잃지 않는다. 또한 이익준은 간담췌외과, 안정원은 소아외과, 김준완 흉부외과, 양석형 산부인과, 채송화 신경외과 다섯 명이 전공과목이 다 다르다 보니 경쟁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과 넘나들 여지가 없으니 서로 아무 부담 없이 애환과 고충을 나눌 수 있다. ‘찐’친구가 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무리 친해도 같은 직장에서 매일 얼굴 보며 지내면 트러블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친구라는 명목하에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를 안 지킬 수 있기 때문. ‘99즈’의 우정이 이리도 탄탄할 수 있는 건 서로 장난치며 티격태격하지만 결코 ‘선’을 넘지 않기 때문. 무엇을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서로의 사생활은 존중해주고 지켜봐준다. 20년간 수없이 싸우고 화해하며 서로 간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우정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드라마 초반 채송화의 전 남자친구가 바람 피우는 걸 안 김준완이 직접 알려주지 않고 뒤에서 경고하는 모습은 이들이 얼마나 서로를 배려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안정원이 신부가 되기 위해 의사를 그만두려 하는 부분에서도 직접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안정원에게 종교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분인 걸 아는 것. 친구가 현명한 결정을 하기를 조용히 지켜봐주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사진제공=tvN


음악이란 공통적인 취미도 이들의 우정을 20년간 지켜준 효자. 사람의 삶과 죽음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양산할지는 드라마 한 회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99즈’가 일주일에 한번 밴드 활동을 통해 추억의 명곡을 연습하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결속력을 다지는 모습은 처음에는 생경하게 다가왔지만 나중에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밴드 연습을 통해 오랜만에 들을 수 있는 추억의 명곡 ‘아로하’,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내 눈물 모아’ 등은 시청자들에게 추억을 되돌아보게 하며 드라마의 인기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99즈’의 우정이 감동을 선사한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은 아쉽게도 막을 내렸다. 주인공들의 러브라인도 궁금하지만 보기만 해도 힐링을 선사한 ‘99즈’의 아다운 우정도 벌써 그리워지는 느낌이다. 시즌2에서 한 살 더 먹어 더욱 성숙해진 이들의 우정의 역사를 지켜보는 건 시청자들에게 큰 즐거움이 될 듯하다.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걸 아까워하지 않아야 하고 아무리 친해도 선을 지킬 줄 알아야 하며 서로를 배려하며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공통된 취미 하나는 갖고 있어야 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알려준 ‘슬기로운 우정 유지법’은 시즌2를 기다리며 곱씹어볼 대목이다.


최재욱 기자 jwch69@iz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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