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웰컴 투 ‘취존’ 시대

2020.05.25

영화 '레동' 스틸.


오랫동안 내 헤어스타일은 숏컷이었다. 딱히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대학 때 어깨 넘어까지 길었던 머리는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단발이 됐고, 취업하고서부터 점점 짧아지기 시작해 언젠가부터는 계속 숏컷이었다.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대개 “숏컷이 참 잘 어울리시네요!”라고 했다. 과연 진짜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첫 만남의 어색함을 그런 식으로 해소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여자로선 드문 ‘매우 짧은’ 머리가 누구에게나 낯설고 독특하게 보였다는 뜻일 게다. 어쨌거나 주변의 반응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고(하긴 누가 대놓고 ‘당신 머리 너무 이상하오’라고 하겠는가만), 무엇보다 별다른 손질이 필요 없이 간편했기에 스타일을 고수해왔다.

 

10년이 한참 넘도록 내 딴에는 이렇게도 잘라보고 저렇게도 잘라 보고, 매달 변화를 주며 숏컷을 유지해 왔다. 물론 그래봤자 남들이 알아챌 리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이 주기적으로 병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단발병’이다.

 

약 2년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 병은 내겐 고질병이다. 이 병이 시작되면 어디를 가든 여자 연예인들의 상큼한 단발머리만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남자들의 긴 머리까지도! 그런 순간이 오면 나름 시크하고, 개성있어 보인다고 만족했던 내 짧은 머리는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숏컷을 해본 이는 알겠지만, 짧은 머리를 기르기란 쉽지 않다. 이도저도 아닌 짧은 머리가 어엿한 단발이 되기까지는 헤어스타일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고, 거지처럼 지내야 한다. 흔히 헤어스타일에 있어 엄연히 ‘거지존’이 존재하지만 그건 내겐 해당조차 안 되는 허락되지 않는 사치의 단계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거지존은 이미 귀를 넘는 길이부터 시작하므로. 그러니 긴 머리는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귀 반쪽이라도 덮을 수 있는 ‘단발’까지만 어찌어찌 꿈꿔 보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물론 머리를 기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의지의 문제’다. 그러나 누구보다, 같이 사는 가족의 악플은 무엇보다 큰 장애물이다. “머리 좀 어떻게 하지?”, “머리 이상해.” 결정타는 남편의 말이다. “예쁘지도 않고, 감각도 없어보이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대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감각’은 내가 결코 마지막까지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자존심이다. 조금만 참아주면 될 것을. 단발까지 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이 같은 최측근의 악플에 나는 번번이 굴복하고 다시 헤어숍에 가, 정말 이렇게 짧게 잘라도 될까 망설이는 디자이너에게 “괜찮으니까, 아주 짧게요!”를 외치곤 했던 것이다.

영화 '시동' 스틸.

 

그런데 이번만은 달랐다. 나는 참아냈다. 무수한 악플과 주변의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견뎠다. 내 스스로 남이 아닌 나의 만족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계시처럼 가슴에 새기고, 극복해낸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의 헤어스타일은 ‘단발’이다. ‘카모메 식당’의 미도리 같던 시기를 지나 영화 ‘시동’의 거석이형처럼(차마 어여쁜 ‘단발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레옹'의 마틸다 같다고는 못하겠다. 나도 양심은 있으니).


언젠가 누군가 쓴 말이 좋아 일기장에 옮겨 적은 적이 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요지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개인의 취향은 얼마든지 존중되야 한다’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면 우리는 취향의 차이에 대해 매우 너그러운 지성인들이다. 그런데 진짜 그런가. 나와 다름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이해하는가.

 

사실 나부터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아이들이 ‘내가 보기에’ 말도 안 되는 복장으로 집밖에 나선다고 했을 때, ‘내가 보기에’ 하나도 좋아 보이지 않는 물건을 사달라고 했을 때. 나는 엄마라는 귄위를 이용해 무마시키곤 했다. 물론 가족이 아닌 경우 겉으로 표현하진 않는다. 그러나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나와 다름’은 수시로 내 이성을 자극하고, 결국 어느 지점에 다다라선 ‘이해 불가’로 규정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 대상과 결코 좁힐 수 없는 거리와 넘기 힘든 선입견의 벽을 만든다.

 

‘우리나라는 취향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아!’라고 속상해했던 적이 있다.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 매장에서 롱스커트를 찾기 힘들고, 폭이 좁은 넥타이가 유행하면 넓은 넥타이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 립스틱 하나가 뜨면 모두가 같은 색 입술을 하고 다녔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많이 달라졌다. 다양한 개성으로 저마다의 즐거움을 찾는 젊은 세대를 보면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다해!”라고 응원하고 싶다. 눈치 좀 보지 말고, 누가 뭐라 하든 하고 싶은 대로.

 

꿋꿋이 머리를 기르며, 타인의 취향에 대한 평가를 될 수 있으면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함께 쇼핑을 나가 “이거 너무 예쁘지 않아?” 하고 동의를 구하는 딸아이를 향해, 정말, 당최, 어느 부분이 예쁘다는 건지 모르겠어도, “오, 그래. 그렇구나. 너의 취향을 존중해”라고 얘기한다. 사람의 취향이 어찌 다 같을 수 있는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인 인생, 본인이 좋은 것을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오랫동안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본 적 없었기에) 오늘 나는 한 줄기 불어오는 바람에 이다지도 행복하다.


이현주(칼럼니스트, 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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